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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9주일낮예배 제목 : 믿음과 증거 성경 : 히브리서 11장 1-3절 주제 : 믿음은 증거다. 증거 속에 믿음이 존재한다. 본문
20090809주일낮예배 제목 : 믿음과 증거 성경 : 히브리서 11장 1-3절 주제 : 믿음은 증거다. 증거 속에 믿음이 존재한다.
필명 이일기 2018. 12. 10. 11:2220090809주일낮예배
제목 : 믿음과 증거
성경 : 히브리서 11장 1-3절
주제 : 믿음은 증거다. 증거 속에 믿음이 존재한다.
1. 진화론과 믿음의 증거
교수: 자네는 기독교인이지? 학생: 네, 교수님.
교수: 그래, 자네는 신을 믿는가? 학생: 물론입니다, 교수님.
교수: 신은 선한가? 학생: 그럼요.
교수: 신은 전능한가? 학생: 네.
교수: 내 동생은 신께 고쳐달라고 기도했지만 암으로 죽었네. 대개의 사람들은 누군가 아플 때 도와주려 하지. 하지만 신은 그러지 않았네. 이런데도 신이 선한가? 음? (학생은 침묵한다.)
교수: 대답을 못하는군. 그럼 다시 묻지, 젊은이. 신은 선한가? 학생: 네.
교수: 그럼 사탄은 선한가? 학생: 아닙니다.
교수: 사탄은 어디서 태어났지? 학생: ... 하나님에게서 ... 부터지요..(하나님은 루시퍼라는 천사를 만드셨다, 후에 타락하여 사탄이 된...)
교수: 그러면 말해보게, 세상에 악이 있는가? 학생: 네.
교수: 악은 어디에나 있지, 그렇지 아니한가? 그리고 신은 모든 것을 만들었지. 맞는가? 학생: 네.
교수: 그렇다면 악은 누가 만들었는가? (학생은 대답하지 않는다.)
교수: 세상에는 아픔, 부도덕, 추함 등의 추악한 것들이 존재하지, 그렇지? 학생: 그렇습니다,
교수: 그렇다면 누가 그것들을 만들었나? (학생은 대답하지 않는다.)
교수: 과학은 사람이 세상은 인지하는데 5가지 감각을 사용한다고 하지. 그렇다면 대답해보게 신을 본적이 있는가? 학생: 못 봤습니다.
교수: 그렇다면 신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학생: 아니오, 교수님.
교수: 그렇다면 신을 느끼거나, 맛보거나, 냄새 맡은 적도 없는가? 신을 어떠한 감각으로도 인지한 적이 있는가? 학생: 아니오, 없습니다. 교수님.
교수: 그런데도 아직 신을 믿나? 학생: 네.
교수: 과학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논증으로 신이 없다고 말하네. 자네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생: 저는 단지 믿음이 있을 뿐입니다.
교수: 그래, 믿음. 그게 과학이 가지지 못한 것이지.
학생: 교수님, 세상에 따뜻하게 하는 열이란 것이 있습니까? 교수: 물론이지.
학생: 그러면 차가움이란 것도 있겠지요? 교수: 그렇다네.
학생: 아닙니다. 교수님. 그런 것은 없지요. (강의실은 이 반전에 순간 적막이 흘렀다)
학생: 교수님, 많은 열, 더 많은 열, 초열, 백열, 아니면 아주 적은 열이나 열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가움이란 것은 없지요. 영하 273도에서 열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이하로 만들 수는 없지요. 차가움이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가움이란 단어는 단지 열이 없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지 그것을 계량할 수는 없지요. 열은 에너지이지만, 차가움은 열의 반대가 아닙니다. 교수님. 그저 열이 없을 뿐이지요. (강의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학생: 그렇다면 어둠은 어떻습니까, 교수님? 어둠이란 것이 존재하나요? 교수: 그렇지. 어둠이 없다면 밤이 도대체 왜 오는가?
학생: 그렇지 않습니다, 교수님. 어둠 역시 빛이 없기 때문에 생기지요. 아주 적은 빛, 보통 빛, 밝은 빛, 눈부신 빛이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아무 빛도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둠이라 부르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제로 어둠이란 것은 없지요. 만약 있다면 어둠을 더 어둡게 만들 수 있겠지요, 그럴 수 있나요? 교수: 그래, 요점이 뭔가, 젊은이?
학생: 교수님, 제 요점은 교수님이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교수: 잘못되었다고? 설명해 줄 수 있겠나?
학생: 교수님, 교수님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하는 두가지로 분류하여 생각하는 이분법적인사고를 하는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생명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선한 신이 있으면 악한 신이 있다는 논지이지요. 교수님은 하나님을 유한한, 우리가 측정 가능한 분이라 보고 계십니다.
교수님, 과학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다는 점조차 설명을 못합니다. 전기와 자기를 말하지만, 볼 수는 없지요.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건 물론이구요. 죽음을 생명의 반대로 보는 건 죽음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죽음은 생명의 반대가 아니라 당지 생명이 없다는 것일 뿐이지요. 교수님은 사람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가르치십니까?
교수: 자연 진화 과정을 말하는 거라면 그렇다네.
학생: 그렇다면, 진화의 과정을 눈으로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교수님? (교수는 논리가 성립되어 감을 보고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학생: 아무도 진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목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을 증명하지도 못했으니 교수님은 개인의 의견을 가르치시는군요. 교수님. 마치 과학자가 아닌 연설가처럼요. (강의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학생: 이 강의실에 교수님의 뇌를 본 사람이 있나요? (강의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학생: 여기에 교수님의 뇌를 듣거나, 느끼거나, 맛보거나, 냄새 맡은 적이 있는 분 계십니까? ... 아무도 그런 적이 없는 것 같군요. 그러면 과학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논증으로 교수님의 뇌가 없다고 말하는군요. 그렇다면 교수님의 강의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습니까? (강의실은 고요했다. 교수는 심오한 표정으로 학생을 응시했다.)
교수: 사실을 믿는 수밖에 없겠군, 젊은이.
학생: 바로 그겁니다, 교수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믿음" 입니다. 그게 바로 모든 것을 움직이고 생명 있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상에서처럼 하나님을 믿고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자기 동생이 암으로 죽자 과학과 진화론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는 인간 5감각으로 경험된 것만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5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2분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러나 믿는 학생은 5감각은 아니지만 인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돌고 마지막에 함성을 지르도록 하였다. 그랬더니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
어떻게 나팔 불고 소리 질러서 성벽이 무너졌을까? 소리 "때문에" 무너질 것이란 말은 없다. 일곱째 날에 백성들이 큰 소리로 외쳐 부르면, 그 때에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믿음의 징표를 보여라. 나를 믿는다고 말하는대로 행동해라. 그러면 내가 성벽 부술 계획은 다 세워놓았으니까 너희 믿음을 증명하는 바로 그 때에 무너지게 해주마 "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기적을, 어떻게 행하실지는 우리가 알려할 필요 없다. 물론 궁금하다. 그러나 집중해야 할 것은 그 방법과 시기가 아니다. 그저 믿음으로 따르면, 제 때가 오면 성벽을 무너뜨리실 하나님이심을 믿기만 하면 승리는 맡아놓은 것이다. 믿음으로 나팔 불고 소리 질러 찬양하는 믿음이 하나님께 닿기를 기도하고, 또 그러리라 믿으라. 그 시기와 장소는 우리가 정할 수 없으니 그저 찬양하고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을 인정하면 이루어 주실 줄 믿으라.
2. 본문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실상, 실체, 보증)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인정)되었습니다.
3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1 Faith makes us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gives us proof of what we cannot see.
믿음은 희망(바라는 것)을 확실히 이루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도 볼 수 있도록 증거를 준다.
믿음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하고, 불확실한 것도 확실하게 한다.
2 It was their faith that made our ancestors pleasing to God.
선조들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은 그들의 믿음이었다.
선조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았다.
3 Because of our faith, we know that the world was made at God's command. We also know that what can be seen was made out of what cannot be seen.
믿음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만들어 졌음을 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졌음도 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안다.
1절 상반절은 믿음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하면 건강하게 살게 된다는 말이다. 부자가 되고자 하면 부자가 된다는 말이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면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1등 하고자 하면 1등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1절 하반절은 부자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 마음 자체가 부자가 된다는 증거다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되도록 하고, 그 믿음 자체가 그렇게 되는 증거라는 것이다. 부자 되고자 하는 마음 자체, 즉 부자 되겠다는 믿음이 부자 되도록 하고, 부자 되는 증거라는 것이다. 믿음이 증거라는 것이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하여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는 말이다. 믿음이 있으면 성공한다는 말이다. 그 믿음이 증거가 된다는 말이다. 믿음 자체가 증거다는 말이다.
그 구체적인 예를 2절에서 말하고 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수 많은 예언자들이 믿음으로 살아서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되었다는 말씀이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34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35 믿음으로 여자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맞이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37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38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3절은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에 의하여 세상은 무(無)로부터의 창조된 것이라는 진리를 알게 된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모든 것이 만들어 졌다고 하는 것이 믿음이다는 말씀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믿음이 진리를 알게 한다는 말이다. 믿으면 진리를,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믿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여러분의 소망을 이루기를 바란다.
3. 증거가 믿음을 낳는다.
로마서 10장 17절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라고 하고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생기고 결국 그 말씀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된다고 한 것이다. 결국 믿음은 증거자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다. 증거가 믿음을 낳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과 증거는 같은 말이 된다. 증거가 있으면 믿음이 존재하고 믿음이 있으면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너희의 믿음을 보여라 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믿고 있는 증거가 무엇인지 말해보라 하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기도하고 있는 것이 증거다. 교회 나오고 있는 것, 찬양, 헌금하는 것이 증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며 그들도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할 때 비로소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내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간증 할 수 있을 때 내가 믿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진정 믿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런가? 답은 명백하다.
4. 결론
신정통주의 신학의 대가 칼 바르트가 택시를 탔다. 마침 택시기사가 성경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바르트는 택시기사가 대견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성경을 아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이런저런 신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바르트의 현학적인 질문에 택시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려운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모릅니다. 성경의 기적과 비논리적인 이야기들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약속의 증표요 우리를 위해 구원을 이루셨고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믿습니다”
이 택시 기사처럼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 때 믿음은 드러나는 것이다. 믿음은 반드시 증거 된다. 믿음은 증거다. 증거 속에 믿음이 존재한다. 여러분의 믿음을 드러내기 바란다.
예수님이 행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믿고 그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성전에서, 제자들과 갈릴리 등지에서, 그리고 십자가 사건에서, 그의 믿음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시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그 믿음이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