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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6 #하나님 앞에 #누가복음 18장 13-14절 본문

설교

20251026 #하나님 앞에 #누가복음 18장 13-14절

필명 이일기 2025. 10. 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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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6
하나님 앞에
누가복음 18장 13-14절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自意)를 버리고 겸손히 신뢰하며 나아가는 길

서론

 우리는 현재 자기를 자랑하는 SNS PR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게 인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 나 스스로 옳다는 확신, 다른 이와 비교하며 우월감을 갖는 것들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린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그런 우리를 향해 “겸손하라, 그러나 담대하라”라고 말한다.
 오늘 네 본문의 역사적 배경과 기록 목적을 살펴보고,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와 구절을 원어로 알아보며, 각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살피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본문을 함께 읽어보자.

본론

1. 예레미야 14:7-22

  남유다 왕국 말기, 가뭄과 기근이 극심했다.
  백성은 영적으로 타락하고 우상 숭배에 빠졌다.
  거짓 예언자들이 진리를 왜곡했다.
  예레미야는 백성을 대신해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렸다.
  그는 회개 없는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구했다.

 
7   "주님, 비록 우리의 죄악(히브리어 아온 עָוֹן은 의도적 죄악, 굽은 행위, 왜곡된 마음의 상태로, 단순한 실수가 아닌 하나님을 거스르는 고의적 죄)이 우리를 고발하더라도(히브리어 아나 ‘ענה’로, 죄가 스스로를 고발한다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는 죄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선처해 주십시오. 우리는 수없이 반역해서,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8   주님은 이스라엘의 희망이십니다. 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할 때에 구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행하시고, 하룻밤을 묵으러 들른 행인처럼 행하십니까?
9   어찌하여,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처럼 되시고, 구해 줄 힘을 잃은 용사처럼 되셨습니까? 주님, 그래도 주님은 우리들 한가운데에 계시고,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이 아닙니까? 우리를 그냥 버려 두지 마십시오."

주님의 대답
10   주님께서 이 백성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은 이리저리 방황하기를 좋아하고, 어디 한 곳에 가만히 서 있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나 주가 그들을 좋아하지 않으니,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히브리어 자카르 זָכַר는 단순한 기억이 아닌, 약속을 기억하고 행동한다는 뜻), 그들의 죄악을 징벌하겠다."

거짓 예언자
11   주님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바이요메르 야훼 엘라이 וַיֹּאמֶר יְהוָה אֵלַי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음을 나타내며, 거짓 예언자들과 대비된다. 직통계시를 받았다는 말인데,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보편적으로 객관화시키는데 조심해야 한다. 단, 집단과 공동체가 문제없다고 받아들이면 객관화될 수 있다. 그때 권위를 갖게 되고 인정받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시로 인정된다. 그것들은 구체적으로 성취된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고 드러난다. 일테면 성경이나 교회 같은 것은 계시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인정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인간 자기 과시와 자랑, 교만에 의한 거짓 계시, 예언, 환상, 점괘, 사람의 마음에서 꾸며낸 거짓말에 의한 것이다.
 그러니까 계시 여부 기준은 공동체적 수용과 역사적 성취 여부에 따른다고 할 수 있다.
1. 예레미야의 예언과 바벨론 포로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침공과 포로 생활을 예언했다.
  당시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평화를 약속했지만, 예레미야의 예언만이 실제로 성취되었다.
  이후 그의 메시지는 공동체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고 성경에 포함되었다.
2. 사도 바울의 계시와 초대 교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개인적 계시를 경험했다.
  그의 사역과 가르침은 초대 교회 공동체에 의해 검증되고 수용되었다.
  바울의 서신들은 교회 전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아 신약 성경에 포함되었다.
3. 다미선교회는 1992년
개인의 환상과 예언을 근거로 종말 날짜를 주장했다.
  이들은 성경보다도 노스트라다무스나 에드가 케이시 같은 인물의 예언을 신뢰했고, 공동체적 검증 없이 계시를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공동체의 신앙을 혼란에 빠뜨린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너는 이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나에게 기도하지 말아라.

12   그들이 금식을 하여도, 나는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겠다. 또 그들이 번제물과 곡식제물을 바쳐도, 나는 그것을 받지 않겠다. 나는 오히려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전멸시켜 버리겠다."
13   그래서 내가 아뢰었다. "그렇지만 주 하나님, 저 예언자들이 이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근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께서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화를 주신다' 합니다."
14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예언자들은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예언자로 보내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명하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이 백성에게 예언하는 것은, 거짓된 환상과 허황된 점괘와 그들의 마음에서 꾸며낸 거짓말이다."
15   주님께서 그 예언자들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은 내가 보내지도 않았는데,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였다. '이 땅에는 전쟁과 기근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한 예언자들은 전쟁과 기근으로 죽을 것이다.
16   그 예언을 들은 이 백성도, 기근과 전쟁에 시달리다가 죽어서, 예루살렘 거리에 내던져질 것이며, 그들을 묻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내들과 아들딸들도 그와 같이 될 것이니, 이것은 내가 그들 위에 재앙을 퍼부을 것이기 때문이다."
17   "너는 이제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내 눈에서 밤낮,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릴 것이다. 처녀 딸, 내 사랑스러운 백성이, 참혹하게 얻어맞아 죽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8   들녘으로 나가 보면, 거기에는 칼에 찔려 죽은 사람들이 있고, 도성으로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기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뿐이다. 그렇다. 예언자도 제사장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로 온 나라를 헤맬 뿐이다.'"

예레미야의 기도
19   "주님은 유다를 완전히 내버리셨습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진정으로 시온을 미워하십니까?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우리가 낫지도 못하게 이렇게 심하게 치셨습니까? 우리가 기다린 것은 평화였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상처가 낫기만을 기다렸는데, 오히려 무서운 일만 당하고 있습니다.
20   주님, 우리는 우리의 사악함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지극히 겸손한 태도다)
21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라도(히브리어 르마안 쉼카 לְמַעַן שִׁמְךָ는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명예(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근거로 용서를 구하는 즉, “우리의 공로 아니라 당신 자신의 영광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바람)우리를 박대하지 마시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보좌가 욕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히브리어 알탄니헤누 אַל־תַּנִּיחֵנוּ는 놓다, 버리다’라는 동사 נוח (nûaḥ)에서 온 형태로, 하나님 임재의 자리에서 완전히 떠나지 말아 달라는 간청) 주님께서 우리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히브리어 자카르 זָכַר 단순히 “기억하다”가 아니라, 약속을 기억하고 행동한다는 뜻), 그 언약을 깨뜨리지 말아 주십시오.
 단순한 탄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언약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도
22   이방 사람이 섬기는 허황된 우상들 가운데 비를 내리는 신들이 있습니까? 하늘인들 스스로 소나기를 내려 줄 수가 있습니까? 주 우리의 하나님, 그런 분은 바로 주님이 아니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께만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 나눴지만 예레미야의 예언은 실제 모두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은 바빌로니아에 망하고 지도자들은 사로잡혀가 포로 생활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예언과 고백과 하나님과의 대화는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반면 교만하면 하나님이 무시된다. 거짓말하게 된다. 거짓 선지자들이 대표적이다.
 
 요약하면, 예레미야는 백성의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간청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방황과 거짓 예언으로 인해 징벌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름과 언약을 붙들고, 오직 하나님께 희망을 두며 구원을 간절히 기도했다.

2. 시편 84:1-7

 본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성전을 떠나 도망하던 시기에 지은 시로 추정된다. 
 기록 목적은 낮은 자 피해자 다윗의 성전을 향한 갈망과 하나님 임재의 복됨을 노래하기 위한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의를 드러낸다.
 
1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3   만군의 주님,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참새도 주님의 제단 곁에서 제 집을 짓고, 제비도 새끼 칠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4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합니다. (셀라)
5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메실라 מְסִלָּה는 대로(大路), 큰길, 넓은 길을 의미한다.
 자연적으로 생긴 길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잘 닦인 길을 뜻하며, 들어 올리다, 높이다는 뜻의 히브리어 '살랄'에서 유래했다.
 시온 순례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시온)으로 가기 위해 걷던 길이다.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단순히 물리적인 길을 걷는 것을 넘어,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열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인생의 순례길을 걷는 자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받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자기의를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소망을 가진다.

3. 디모데후서 4:6-18

 본문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순교 직전 기록한 마지막 편지다.
 감옥의 괴로움 속에서 믿음의 경주를 마친 자의 확신과 후계자 디모데에게 복음의 고난을 감당하라는 권면이다. 
 
6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부어드리는 제물은 그리스어 스펜도마이σπένδομαι로, 제물로 드려지는 포도주처럼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다. 죽음을 헌신의 표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9   그대는 속히 나에게로 오십시오.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가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가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그대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십시오. 그 사람은 나의 일에 요긴한 사람입니다.
12   나는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습니다.
13   그대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두고 온 외투를 가져오고, 또 책들은 특히 양피지에 쓴 것들을 가져오십시오.
14   구리 세공 알렉산더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15   그대도 경계하십시오. 그가 우리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16   내가 처음 나를 변론할 때에, 내 편에 서서 나를 도와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허물이 돌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17   주님께서 내 곁에 서셔서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통하여 전도의 말씀이 완전히 전파되게 하시고, 모든 이방 사람이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내셨습니다.
18   주님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구원하셔서 그분의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4. 누가복음 18:9-14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기 의에 빠진 자들을 향해 주신 비유다.
 겸손한 회개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는 길임을 말한 것이다.
 
9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자 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헬라어 힐라스테티 ἱλάσθητί로, 속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간구하는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결론

  예레미야처럼 자신을 낮추고 문제를 의식하며 죄를 자각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
  시편 기자처럼 갈망하며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바울처럼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야 한다.
  세리처럼 겸손히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이 아니라 눈물을 흘려야 한다.
  계산이 아니라 헌신해야 한다.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져야 한다.

축원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의의 면류관이 함께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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