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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9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 #욥기 19:25 본문
20251109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
욥기 19:25
고난과 혼란 속에서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서론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가?”, “나를 기억하고 계신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는 내 삶의 괴로움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고자 하는 깊은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순히 존재의 유무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철학적 의문이 아니다. 고통 속에서 터져 나오는 절규다.
이러한 질문은 일찍이 욥기에서 욥의 고난을 통해 다루어졌다. 다윗과 초대교회 성도들의 고난도 마찬가지로 신구약 성경에서 다루어졌다. 억울함과 고통, 혼란의 한가운데서 그들은 고난에 관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결국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야말로 우리를 붙들어 주는 힘이다.
본론
1. 욥기 19:23-27
욥기는 내용상으로는 기원전 2000-1800년경 아브라함 이삭 야곱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 기록은 지혜문학(잠언 전도서 등)이 등장하던 시기인 기원전 1500-500년 경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대략 4000년 전 이야기를 3000년 전에 기록한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 역사로 이해하면, 기원전 2333년경(지금으로부터 대략 4300년경) 단군 왕 이야기(환웅이 세상에 내려와 신의 도시(환곰은 하늘의 신 환웅(桓雄) 에게 “사람이 되고 싶다”고 빌었고, 환웅은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이것만 먹으면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곰은 참아내고 여자가 되어 ‘웅녀(熊女)’라 불렸다. 즉, 곰이 사람이 된 이름은 ‘웅녀(熊女)다. 이후 웅녀는 환웅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단군왕검(檀君王儉이다. 그 단군이 대동강 근처(아사달)에 고조선을 세워 다스렸던 지역)는 구전으로 전해져 1300년경 삼국유사에 처음 기록되었던 것과 같다. 물론 주제는 다르다.
오늘 본문과 관련하여 말하면, 고대 이스라엘 지혜문학 중의 하나인 욥기는 고난의 의미와 하나님의 정의를 묻는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에 관한 질문이다. 욥은 이유 없는 고난 속에서 친구들의 비난을 받으며, 하나님께 왜 의인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항변을 하는데, 그 항변이 바위에 새겨지길 바랄 만큼 간절히 외친다. 그러나 그 절망의 한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는 놀라운 고백을 한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고난과 고통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과연 신이 존재한다면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결국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분이 우리 삶을 관장하고 계신다는 말인데, 그것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전하여 사람들의 고민이다.
23 아, 누가 있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기억하여 주었으면!
24 누가 있어 내가 하는 말을 비망록에 기록하여 주었으면! 누가 있어 내가 한 말이 영원히 남도록 바위에 글을 새겨 주었으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 하며, 욥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 자신의 말이 영원히 기록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절규다.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 것이다.
25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 구원자가 살아 계신다.(히브리어 고엘 גֹּאֵל은 법적으로 가족의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자다. 욥은 하나님을 자신의 ‘고엘’로 고백하며,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을 뵐 것이라는 신앙을 드러낸다.) 나를 돌보시는 그가 땅 위에 우뚝 서실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26 내 살갗이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내 육체가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나는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27 내가 그를 직접 뵙겠다. 이 눈으로 직접 뵐 때에, 하나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내 간장이 다 녹는구나!
이 고백은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붙드는 신앙의 절정이다.
암 투병 중인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다”고 느끼지만, 그러나 “내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체험을 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이 믿음을 붙들어야 한다.
2. 시편 17:1-9
본문은 다윗이 억울한 상황(사울에게 쫓기던 시절이나 압살롬의 반역)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보호를 간구하며 드린 기도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하나님께 공정한 판결을 요청한다.
1 주님, 나의 진실을 변호하여 주십시오. 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거짓 없이 드리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2 주님, 친히 "너는 죄가 없다"고 판결하여 주십시오.(히브리어 체덱 צֶדֶק는 단순한 무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주님의 눈으로 공평하게 살펴보아 주십시오.
3 주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시험하여 보시고, 밤새도록 심문하시며 샅샅이 캐어 보셨지만 내 잘못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내 입에서 무슨 잘못을 발견하셨습니까?
4 남들이야 어떠했든지, 나만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랐기에, 약탈하는 무리의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5 내 발걸음이 주님의 발자취만을 따랐기에, 그 길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습니다.
6 하나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귀 기울이셔서, 내가 아뢰는 말을 들어 주십시오.
7 주님의 미쁘심을 크게 드러내 주십시오. 주님께로 피하는 사람을 오른손으로 구원하여 주시는 주님, 나를 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8 주님의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 주시고, 주님의 날개 그늘에 나를 숨겨 주시고,
9 나를 공격하는 악인들로부터 나를 지켜 주십시오. 나의 생명을 노리는 원수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눈동자’는 가장 민감하고 소중한 부분이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지켜주시기를 간구한 것이다.
이 기도는 단순한 호소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서 나오는, 신뢰의 표현이다.
부당한 평가나 억울한 상황 속에서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정의로 응답하신다.
3. 데살로니가후서 2:1-17
본문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오해와 이단의 미혹을 바로잡기 위해 기록되었다.
초대교회 교우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오해와 이단의 미혹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에게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한다. 그는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불법의 세력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교우들에게 진리 위에 굳게 서라고 권면한다.
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일과 우리가 그분 앞에 모이는 일을 두고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2 여러분은, 영이나 말이나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에 속아서, 주님의 날이 벌써 왔다고 생각하게 되어,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3 여러분은 아무에게도 어떤 방식으로도 속아넘어가지 마십시오. 그 날이 오기 전에 먼저 믿음을 배신하는 일이 생기고, 불법자 곧 멸망의 자식이 나타날 것입니다.
4 그는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나 예배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에 대항하고, 그들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인데,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5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이런 일을 여러분에게 거듭 말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6 여러분이 아는 대로, 그자가 지금은 억제를 당하고 있지만, 그의 때가 오면 나타날 것입니다.
7 불법의 비밀이 벌써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억제하시는 분이 물러나실 때까지는, 그것을 억제하실 것입니다.
8 그 때에 불법자가 나타날 터인데, 주 [예수]께서 그 입김으로 그를 죽이실 것이고, 그 오시는 광경의 광채로 그를 멸하실 것입니다.
9 그 불법자(헬라어 아노모스 ἄνομος는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는 자로,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다.)의 나타남은 사탄의 작용에 따른 것인데, 그는 온갖 능력과 표징과 거짓 이적을 행하고,
10 또 온갖 불의한 속임수로 멸망을 받을 자들을 속일 것입니다. 그것은, 멸망을 받을 자들이 자기를 구원하여 줄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미혹하게 하는 힘을 그들에게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하십니다.
12 그것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기뻐한 모든 사람들에게 심판을 내리시려는 것입니다.
훈시
13 주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를 믿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처음부터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14 이렇게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복음으로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15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든든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16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세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오늘날에도 가짜 뉴스나 잘못된 종말론이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러나 말씀에 굳게 서서 진리를 분별해야 한다.
4. 누가복음 20:27-38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사두개인들과의 논쟁 중 부활에 대한 진리를 가르치신 장면이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정하며 예수님께 논쟁을 걸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눅 20:38)라고 말한다. 천국은 단지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삶을 견디게 하는 현실적 소망이다는 말이다.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 가운데 몇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물었다.
28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남겨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형수를 맞아들여서 뒤를 이을 아들을 자기 형에게 세워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형사취수제”(레위기 25장 참조)는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자손을 잇게 하는 제도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얻어서 살다가 자식이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고,
31 그 다음에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일곱 형제가 다 그렇게 하였는데,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니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서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지만,
35 저 세상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는다.
36 그들은 천사와 같아서, 더 이상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부활의 자녀들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37 죽은 사람들이 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보여 주었는데, 거기서 그는 주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38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 천국은 현실보다 더 분명한 소망이다.
결론
고난 속에서도 (욥기), 억울함 속에서도 (시편), 혼란과 미혹 속에서도 (데살로니가후서), 죽음 앞에서도 (누가복음)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고 말하고 있다. 이 믿음이 우리를 살리고, 흔들리지 않게 한다. 오늘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붙들며, 그분의 위로와 그분을 향한 소망을 갖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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