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블로그
1998. 2. 15 주일 낮 예배 본문
1998. 2. 15 주일 낮 예배
제목 : 믿음의 유익을 전하는 것
성경말씀 : 디모데 4장 7-16절
주제 : 믿음의 유익한 점을 세상에 알리자
서론)
단순히 말로써 사람들의 마음속에 복음을 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효과적
으로 사람들을 믿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에 한번도 안 가봤지만 언어가 안통하는 사람들에게 슈퍼에 가서 음료수 한 병을 들고 가서 그것을
보여 주면서 요구 하면 금방 알아차립니다. 마치 그와 같은 것이지요.
본론)
우리는 전도를 할 줄을 모릅니다.
예수 믿으세요!한다든지, 전도지 뿌린다든지, 교회에 다니세요 하는 것도 한편 의 미 있지만 그것만으로
는 모자랍니다.
오히려 믿음생활을 하면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고 그것을 우리가 경 험하고 그 경험한 것을
전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그분에게 그 유익한 것이 생겨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유념해 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믿음생활을 하는, 교회에 다니는 유익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본문말씀 8절을 보면 경건은 범사에 유익이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말합 니다. 그것을 위하여
바울은 수고한다고 10절에서 말합니다. 11절에는 이것을 명하 고 가르치라고 합니다. 또한 디모데도 그
렇게 하도록 권합니다. 그러면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게 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유익은, 신앙생활을 하는 유익은 바로 사람을 경건하게 한다는 것 입니다. 경건하면 모든
일에 유익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경건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1)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
전기전자 제품, 산업기계, 로봇트 등은 전력 또는 동력이 있어야 움직이고 제 구 실을 합니다. 식물이나
동물들도 먹이가 있어야 삽니다. 사람도 먹을 것이 있어야 살지요. 그런데 사람은 먹을 것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지 못하고 그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세
상의 물질에 모든 것 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매인 그래서 그것만을 위해 다람쥐 체바퀴 돌듯
도는, 영혼을 망하게 하는 삶이나, 쓸데 없는 것에 매여 그것으로 하나의 이상을 품 고 그것을 쫏는 허
황된 것이 경건일까요? 이런것은 모두 경건에 반대되는 불경건입 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지요. 경건
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선한 교훈을 따 르는 것이요, 전기가 공급되어야 전자전기 제품들이 제
구실을 하듯, 하나님으로부 터 그의 말씀을 공급받고 그것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람을 활동하게 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지난번에도 말씀 드린 것처럼 운동 선
구, 뿐만 아니지요 모든 사람 예를 들면 학생, 직장인, 연구하 는 사람, 사업하는 사람 등등
이것이 유익한 것이요. 교회에 다니면, 믿음이 있으면 얻는 유익이 되는 것입니 다.
2) 경건은 사랑입니다.
경건을 사랑없는 율법으로 해석하여,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만 해석하여 경직시 키고 도도하고 생콩이
고, 재미 없으며. 교만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 해지요. 물론 경건한 자는 도덕적으로 윤
리적으로 바른 삶을 삶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리새인들을 경건한 자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과연 그들
은 진정으로 경건했습니 까? 아닙니다.
간음한 여인에 대하여 어떤 모습으로 대하는 것이 경건인가?
간음하지 말라한 것은 율법입니다. 이것을 범하는 자는 죄인이 됩니다. 그러나 왜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
을 용서 하셨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간음은 분명 죄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간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인 바리새인들 은, 자신은 그러한 여인이 되도록 행동하고, 그리고 그 여인
을 돌로 치는 사람입니 다. 그 여인을 이해하지 않고, 자신을 돌이켜 보지 않고, 교만하여 남에게만 잣
대를 대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나 자신이 간음하지 않고, 그 여인은 그럴 수 밖에 없었음 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경건이지요. 왜 바리새인들은 돌로 치려 했습니 까? 그들은 율법과 죄가 무엇인
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죄는 욕심이요, 남을 해치 는 것이요, 남을 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요, 곧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요, 그 말씀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그를 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바리
새인들은 하 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도구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 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경직시켰지요. 그래서 그들 머리 속에는 그 여인은 생각지 않고 그 여인의 행위 자체
만 보고, 그것을 금기시 하여, 그것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자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이 여인을 치라고 한 것입니다. 그 여인을 끌어다 돌로 치려한 자들은 불경건한 자요, 오히려 그를
이해하고 용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경건한 하나님의 행동인 것입니다. 경건은 윤리적 이지
만 결코 윤리자체는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이며, 믿음이지요. 이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며, 용서 받고 구원 받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믿음이 주는 유익입니다.
두 사람을 무자비 하게 죽인 마약 복용자요 어려서부터 버림받고 어렵게 살았던 최근 미국 여 죄수의
사형 집행의 건으로 뉴스가 있었는데 사형제도 폐지 논란. 그 여인은 교도소 생활 중에 신앙인이 되어
있었다. 복음은 이러한 죄인도 사랑한다. 또한 그 복음이 들어 가면 이 여인처럼 평안을 얻고 여느 사람
같으면 불평과 불만 과 발악을 했겠지만 그녀는 죽음도 감내 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죽음은 자신에게
있어서 별 문제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복음은 능력이요 사람에게 유익입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것입니다.
경건은 또한 무엇입니까?
3) 경건은 삶에서 본이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남에게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이 그렇게 살고, 에배소에서 그를 대신
하여 목회하는 디모데에게도 그것을 권했습니다. 또한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어 구원받도록 했습
니다.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 쳐 체험하여 그렇게 살았습니다. 경건은 바로 남에게 외형적으
로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대로 사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남에게 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러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말씀드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잘못 들으면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
하지 마십시오. 당장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라는 말이 아니었 으니까요. 복음을 믿으면 하나님이 여러분
을 경건한 사람으로 만들어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며 사랑하며 그것으로 자연스럽게 남에게 본이 되
도록 하는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을 증거 하십시오. 부족하고 문제 많은 사람이지만 믿
는 여러분은 다릅니다. 여러분의 현재 모습 그대로 의 여러분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 하십시오. 반
드시 하나님이 역사 하시고 그에게 유익하게 만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유익 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사랑하게 되고, 남에게 본이되는 삶을 살게 하 는 경건은 사람들에게
모든 일에 유익한 삶을 살게 합니다. 이 경건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생활이요, 믿음이 주는
유익입니다. 이러한 유익을 우리는 사람 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이러한 유익이 있어서 축복
을 받는다고, 증거할 뿐만 아니라, 나의 삶에서 그것이 나타나, 그것이 불신자들에게 전달, 감지 되어야
진정한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 전도는 무엇입니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요, 복음으로 사는 것이 유익하다 는 것이며, 그것으로
삶을 용기와 소망 가운데 살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러한 유익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이러한 유 익으로 축복으로 감사
한 삶을 사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귀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러
한 복을 받고 여러분의 가정이 이러한 복을 누리며 사실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유익한 믿음으로
사시며 그 믿음을 증거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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