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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본문
바울은 1차 선교여행 중 터키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 그를 회심하게 하고 기독교인이 되게 한다. 2차 선교여행 중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하고 드로아, 베뢰아, 데살로니가, 고린도 등지에서 함께 동역자로 선교한다. 3차 선교여행 중에도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선교했으며, 에베소, 마게도냐, 고린도에서 디모데를 자신의 대리인 역할을 하게 한다. 바울이 60년경 로마 감옥에 처음 투옥되었을 때 디모데는 같이 있었다. 62년경 석방된 바울은 스페인 선교를 하고, 일루리곤으로 가 2년여 선교한다. 64년경 초봄 마케도니아를 거쳐 자신과 관계가 좋지 않았고, 디모데가 있던 에배소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지만, 에배소교회를 통제하지 못하는 디모데를 대신하여 자신이 관리하였으나, 에배소교회에는 언제나 바울에 대한 반대자들이 있었기에 철수하여 64년경 겨울을 밀레도에서 보낸다.
64년 6월 19일 로마 시르쿠스 막시무스 근처의 한 가게에서 시작된 화재는 9일간 14개 도시를 태웠다. 네로(54-68년)는 피해당한 사람들 집을 짓기 위해 로마 중심부의 50.5 헥타르의 개인 소유 땅들을 수용한다. 그 수용당한 사람들에 의해 대화제 발생 책임이 네로 자신에게로 돌아오자 네로는 65년경 봄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의 소행으로 몰아 기독교인들이 핍박한다. 이 소식이 그리스와 아시아에 있던 바울이 세운 교회들에게 전달된다. 그들은 로마 성도들의 끔찍한 죽음을 생각하고 아연실색한다. 바울은 로마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에배소에 두기고를 파송하고, 아픈 드로비모를 드로아에 두고,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보내고, 65년경 초여름이나 초가을에 로마에 도착한다. 바울은 로마 교우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야 했지만 로마 교회들은 황제가 기독교인들에게 관심 쏟는 것을 원치 않았고 바울이 자신들의 충고를 귀 기울이지 않아 바울과 거리를 두었다. 따라서 상습범으로 구속된, 곧 로마 공권력을 이용한 유대주의자들의 모함에 의하여 구속된 바울을 로마 교인들은 방문하지 않았고, 에배소에서 찾아온 오네시보로만이 바울과 함께 하였을 뿐이었다. 더구나 오네시보로도 사고로 죽고(?), 데마는 데살로니가로 가고, 그레스게는 고울/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떠나고, 누가만이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처음 로마에서 감금되었을 때와는 달리 석방될 희망이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드로아의 가보 집에 남겨 두었던 외투와 두루마리 책 등을 가져오라고 하며,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는 디모데를 타이르기 위하여 마가를 데리고 오라며 디모데를 로마로 부른다. 67년경 마지막 사분기 때 바울은 네로의 기독교인은 사형에 처하라는 선례에 따라 치안 판사에 의하여 교수형 처리가 되었을 것이다. 바울이 처형되기 전 가을에 디모데후서를 썼을 것이고(?) 두기고가 전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최후를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인생의 무거운 짐, 달려갈 길을 다 갔다고 생각하고, 에베소 근처에서 있는 약한 동료 디모데를 위하여 지금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과 같이 고난을 이겨내고 인내하라고 디모데후서를 쓴 것이다. 자신을 떠나가는 외로움과 자신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이 있지만 주님께서는 항상 함께 계셔서 힘이 되시고 그분의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이니 디모데도 어려움 가운데 자신을 본받아 직무를 완수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