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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8설교 제목 예수의 흔적 성경 갈라디아서 6장 11-18절 주제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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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8설교 제목 예수의 흔적 성경 갈라디아서 6장 11-18절 주제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자

필명 이일기 2018. 12. 1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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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8설교

제목 예수의 흔적

성경 갈라디아서 611-18

주제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자

 

1. 사람들이 살아왔던 시대를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나눈다. 선사시대 (인류 탄생에서 약 1만 년 전 이전 석기시대, 기원전 1천년까지 철기시대), 고대시대 (기원전 1000년경부터 서기 500년경) 1500여년간, 중세 (500년경부터 1500년경) 1000여년간, 근대 (1500년경부터 제1차 세계대전 1914-1918년까지) 500여년간, 현대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39-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 이어 현재까지) 100여년간.

이러한 5000여년간 시대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인 자연과 인간과 세상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알고자 했다. 그 결론에 따라 사람들은 때로는 봉건 군주나 왕, 오늘날에는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살아왔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은 과학적으로 빅뱅에 의해 우주가 생겼고,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빛으로 만들어졌으며,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원리가 세상에 존재하여 그에 의하여 움직이고 살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사실 그 근본 원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인간 현실의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떤 인생살이에 대한 고민을 한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어떤 길이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의 욕망에 따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대한다. 이러한 이기적 관점은 상대와 마찰을 겪게 할 뿐이다. 상대도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2.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변화된 인생관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갈라디아 교인들은 어떠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배경은 이방인 선교를 담당했던 바울 자신이 이미 이방인들에게 할례는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는데, 그에 반하는 야고보와 요한이 보낸 할례주의자들에 의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11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직접 이렇게 큰 글자로 적습니다.

12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3 할례를 받는 사람들 스스로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여러분의 육체를 이용하여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14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15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16 이 표준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

17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

18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바울은 율법(육체의 할례 행위인 자기 자랑)과 복음(성령에 의한 예수를 믿는 믿음인 자기 십자가)의 차이, 곧 그 대비를 통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을 설득한다.

결론은 예수 믿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으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삶이란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3. 르네상스 이후 인간 이성을 중요시하는 풍조가 근대의 핵심 사상이었다. 이후 인간 이성은 인간 주체로 인간 주체에서 보이는 물질인 경제로 결국 돈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이러한 인간의 문제점을 인간의 이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왔다고 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합리적 판단 도구인 이성을 그들은 도구적 이성이라고 했다. 도구적 이성의 본질은 인간의 욕망에서 판단하는 목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곧 인간의 지배적 욕망은 히틀러로 대표되는 전체주의로, 세계대전으로 이어져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을 중요시하는, 인간의 완전성을 중요시하는 인본주의 사상이 오히려 인간을 무참하게 죽였던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 간 전쟁의 참화를 불러온 것이다. 자기 안보가 중요하다고 자기 정권의 안보를 위하여 또는 사람들의 안보를 위하여 전쟁이 난다면 그것은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다. 전쟁은 안 된다.

 

국가 간에서만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완전하다고하고 옳다고 생각하며 자기 욕망을 내세우는 자기존중은 상대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것은 결국 갈등과 싸움을 초래하여 인간관계의 파괴를 가져온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자존심은 자기 욕망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친구관계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진정한 친구나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을 믿지만 현실은 상대가 어떤 욕망과 자존심을 가졌는지 파악하기 못하면 소외당할 수 있어 자신의 자존심도 상하게 된다. 믿었던 사람이 자기중심으로 나를 대하면 나는 혼자가 된다. 외로워진다. 사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같을 수도 하나가 될 수도 없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각각 자기를 위하여 자기 삶을 사는 것이다.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다. 호연심리상담클리닉 대표 한기연의 책,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우리시대 가족의 심리학에서, 그녀는 완벽하지 않은 가족 안에서 우리는 누구나 서로 싸우고, 상처 입고,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혹은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맞닥뜨리기도 하면서, 항상 문제와 함께 살아간다. 우리가 완전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 혹은 어머니의 사랑도 경우에 따라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하늘같은 부모의 은혜불완전한 사랑밖에 받지 못했다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가족 관계도 큰 틀에서 보면 결국은 인간관계라고 했다. 그녀의 주장은 가족 간의 친밀함통제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 될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믿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나 자신이나 다 한계가 있는 사람임을 인식한다. 상대도 자신도 부족한 존재고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상대가 문제가 있고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모자란 부분이 있다고 인식하고 더구나 나 자신도 그렇다고 한다면 상대를 지배하려 하거나 억압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한계가 있다. 부족한 상대와 자신을 인식하하면 평화가 올 것이다.

바울은 할례주의자들이 율법을 지키지도 못하는 자신들임을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을 얽매는 그들의 인생사는 방법을 비판하며,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짐을 말하고, 자신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흔적, 곧 예수 믿는 믿음을 새로운 창조의 삶이라고 했다.

 

4.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문제가 있음을, 온전하지 못함을 인식한 믿음으로 살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자.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고 살자.

상대도 나도 부족함도 인정하며, 서로를 위하여 한 걸음 떨어져서,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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