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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00216설교 새봄을 기다리며 예레미야서 10장 23절

필명 이일기 2020. 2. 1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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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설교

새봄을 기다리며

예레미야서 1023

"주님,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이제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 못한다는 것도, 제가 이제 알았습니다.

 

0. 지난 한 주는 날씨가 따뜻했다가 오늘은 비,눈이 오고, 이번 주는 다시 추워진다. 하지만 얼 마 안 있으면 새봄이 온다. 새봄을 준비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1. 초등학교 다니던 어렸을 때, 한학이나 공부했지 신식교육을 받지 못한 우리 부모님과는 달리 친구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하루는 동네에서 그 친구와 같이 놀다가 그 친구가 아버지랑 같이 집안 청소해야 한다며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서운했다. 이해가 안 되었다. 무슨 집안 청소를 한다고? 우리 집은 그런 것을 본 적 없었는데! 봄이 되기 전 겨우내 집안에 쌓였던 먼지 공팡이 등을 걷어내야 한단다. 자기 아버지가 그랬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 집처럼 우리 집도 청소를 해야 했다. 겨울철이라 문도 잘 열지 않았고 그래서 습기가 차서 집안에 곰팡이들이 날라 다니고 그것들이 건강을 해치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그 아빠는 배운 분이라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집과 우리 집의 수준 차이였다. 아들에게도 가르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새봄을 따뜻하고 건강하게 살려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간절기에 집안 대청소를 했던 것이다. 지혜있는 삶이고 최선의 삶이다.

 

2.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대체 방식에 중국과 대한민국의 차이는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산다. 일본과 한국은 같은 선진국이라도 전염병에 대한 집단 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중국에 있었으면 전염병에 걸려 죽을 수 있지만 대한민국에 있었으면 살 수 있었다. 실제 우한 교포 중에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다.

 인생의 운명을 다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개인의 운명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수준 높은 나라고 지혜로운 삶을 살고 있는 나라며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는 나라다.

 

3.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에 산다. 인간 운명이 시간과 공간에 의해 좌우된다.

  또한 인간의 운명은 인간이 어떻게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하는 가에 달렸다.

  좀 더 잘 알고 그에 대처할 수 있는 인간의 인식이 그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

  이것은 문명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문명의 사전적 의미는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사회조직적인 발전이다. '미개'와 대응된다.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도시는 큰 역할을 했으며, 그중 기술의 발전은 현대문명을 구성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다.”로 나와 있으나, 간단히 문명은 글월에 밝을자로 글에 밝음에서 온, 발전된 세상 또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글은 아는 것이다. 잘 아는 사람이 더 문명적인 삶을 살고 건강한 삶을 산다.

 

4. 말씀 준비를 위해 지난 저의 지금까지 보관해둔 설교 1200개 이상 중 검색을 해보았다. 예레미야서 1023절과 관련하여 말씀 나눈 것이 14번 있었다. 최근에는 지난 해 1215일 주일에 전광훈 목사와 관련된 말씀을 했다. 가장 눈에 띠는 말씀은 용케도 오늘과 같은 달 같은 날짜, 지금부터 17년 전 2003216일 주일에 한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임레 케레스의 운명”, 정확히는 운명 없음이라는 책의 내용을 소재로 삼았다. 저자가 히틀러에 의해 유대인 학살 포로수용소에서 무참히 태워 죽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난 경험, 그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그래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견뎌내며 희망의 삶을 살았던 이야기를 쓴 인간 운명에 관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예레미야서 1023절을 본문으로 한 이들 설교 말씀들은 인간의 운명과 자유,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것들이었다. 오늘 말씀도 이들에 더한 것인데, 현재의 상황과 관련한 것이고, 우리들의 현재 삶과 관련한 것이다.

 

5. 여러 번 말씀 나눴지만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침략 당하고 있는 위기의 상황 하에 반이집트 친바빌로니아 입장이었기 때문에 결국 궁중 신하들에게서 피살당었다. 이스라엘의 운명이 남의 나라의 지배하에 있었고 왕과 그 수하들은 친바빌로니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자기로써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모든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현실적인 예레미야 자신의 입장이었고, 그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반대편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예레미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니 현실에서 어느 쪽 말씀이 하나님 말씀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맑은 눈과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고 하면 세상에 역행하는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6. 서두부터 지금까지의 말씀은 인간은 어떤 상황의 운명에 처해있지만 인간으로써 행한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이고, 자기 노력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관한 것이었다. 인생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인간에게 운명이 있으나 인간으로써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알 수 없는 인생사이고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것이지만,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허송세월하지 말고 인간으로써는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최선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믿으며 차분히 대처하며 살자는 말이다. 그러면 오늘 본문처럼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우리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주장하신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7. 운명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역행의 길이라 할지라도 최선의 삶을 살자.

 추운 겨울이 가고 있다. 그러면 새봄이 온다. 새봄을 위하여 최선의 준비를 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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