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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8 #빛과 소금 #이사야 58:6 본문
20260208
빛과 소금
이사야 58:6

서론
지난주 기업들의 기부금이 늘었다는 것과, 여성 노인들은 여전히 가난과 차별 속에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기업 기부금 15% 늘었다…한전·한수원·SK하닉이 '앞장'
지난해 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을 위해 내놓은 기부금이 전년 대비 10%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이 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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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생애 차별이 쌓여 여성노인 절반 ‘빈곤’
여성노인 연금 수급액, 남성노인 절반도 안 돼…불안정한 노동이력, 성별연금격차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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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부자로 잘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가난한 사람이 공존한다. 이 기사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우리가 믿는 믿음은 어떠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주와 더블어 오늘도 믿음은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눈다.
본론
1. 이사야 58:1-12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이사야 58장은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성전 예배와 금식은 회복되었으나, 사회적 불의와 약자 억압은 여전한 배경을 반영한다. 회복된 종교 제도가 오히려 자기만족에 급급하고 형식적이었다는 예언의 말씀이다. 종교 비판이었다. 백성들은 금식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1 "목소리를 크게 내어 힘껏 외쳐라. 주저하지 말아라. 너의 목소리를 나팔 소리처럼 높여서 나의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알리고,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려라.
2 그들이 마치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않는 민족이나 되듯이,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을 알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무엇이 공의로운 판단인가를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를 즐거워한다고 한다."
3 주님께서 보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금식을 합니까? 주님께서 알아 주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행을 하겠습니까? 너희들이 금식하는 날, 너희 자신의 향락만을 찾고, 일꾼들에게는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4 너희가 다투고 싸우면서, 금식을 하는구나. 이렇게 못된 주먹질이나 하려고 금식을 하느냐? 너희의 목소리를 저 높은 곳에 들리게 할 생각이 있다면, 오늘과 같은 이런 금식을 해서는 안 된다.
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겠느냐? 이것이 어찌 사람이 통회하며 괴로워하는 날이 되겠느냐?" 머리를 갈대처럼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깔고 앉는다고 해서 어찌 이것을 금식이라고 하겠으며, 주님께서 너희를 기쁘게 반기실 날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히브리어 헤르초트 레솨(רְשָׁעוֹת)로, 구조화된 악을 뜻한다.)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금식은 배고픔을 연출하는 행위가 아니라, 억눌린 관계를 풀어내는 삶이다는 말이다.
7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네 의를 드러내실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9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 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버린다면,
10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11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12 너의 백성이 해묵은 폐허에서 성읍을 재건하며, 대대로 버려 두었던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를 두고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 이라고 부를 것이다.
믿음은 개인적 경건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연륜이 쌓일수록 더 깊은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보이는 믿음이 아닌 남는 믿음이다.
2. 시편 112:1-10 – 복 있는 사람의 삶
본문은 지혜 시편으로, 포로기 이후 “복 있는 삶”의 기준을 재정립할 필요에 의한 말씀이다.
1 할렐루야. 주님을 경외하고(히브리어 야레(יָרֵא, 야레)는 두려움이 아닌 경외와 존중을 뜻한다.) 주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의 태도)은, 복이 있다.
2 그의 자손은 이 세상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며, 정직한 사람의 자손은 복을 받으며,
3 그의 집에는 부귀와 영화가 있으며, 그의 의로움은 영원토록 칭찬을 받을 것이다.
4 정직한 사람에게는 어둠 속에서도 빛이 비칠 것이다. 그는 은혜로우며,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사람이다.
5 은혜를 베풀면서 남에게 꾸어 주는 사람은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다.
6 그런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의로운 사람은 영원히 기억된다.
7 그는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주님을 믿으므로 그의 마음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8 그의 마음은 확고하여 두려움이 없으니, 마침내 그는 그의 대적이 망하는 것을 볼 것이다.
9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나누어주니, 그의 의로움은 영원히 기억되고, 그는 영광을 받으며 높아질 것이다.
10 악인은 이것을 보고 화가 나서, 이를 갈다가 사라질 것이다. 악인의 욕망은 헛되이 꺾일 것이다.
남은 인생에서는 무엇을 움켜쥘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가 더 가치가 있다.
3. 고린도전서 2:1-16 –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지난주에 말씀 나눈대로 고린도는 철학과 수사학을 중시하는 도시였다. 교회 안에서도 말 잘하는 사람이 더 우월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바울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말했다.
바울이 사막에서 깨우친 예수님에 괸한 입장이 선교지에 전해졌고, 그것들이 모아져 복음서가 작성되었고, 기독교를 형성한 것인데,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으로 전하다
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3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약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5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으로 계시하시다
6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멸망하여 버릴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닙니다.
7 우리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한 것과 같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바토스(βάθος, 바토스)는 인간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뜻한다.)까지도 살피십니다.
11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15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분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믿음은 뭔가를 설명하려 하기보다, 맡기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
4. 마태복음 5:13-20 – 세상의 소금과 빛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반, 제자 공동체가 형성되던 시기에 주어진 말씀이다. 예수님 사후 생겨난 마태 공동체는 (성서학계에서 마태복음 공동체는 유대교적 전통과 새로운 기독교 신앙 사이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민했다.
1. 공동체의 위치: 수리아 안디옥 (Antioch in Syria)
마태복음이 기록된 장소이자 해당 공동체가 거주했던 곳으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지역은 수리아의 안디옥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언어적 배경: 유대교적 전통(히브리어/아람어)과 헬라어(그리스어) 문화가 공존하는 대도시였다.
* 초기 기록: 초기 교부 이그나티우스(안디옥 주교)가 마태복음을 인용한 흔적이 있어 이 지역과의 연관성이 깊다.
* 사회적 맥락: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살며 갈등과 조화를 이루던 곳으로, 마태복음의 서사 구조와 잘 맞아떨어진다.
2. 마태복음 공동체의 주요 특징
마태복음 공동체는 크게 세 가지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① 유대교적 배경과 갈등 (유대 기독교인)
이들은 유대교적 전통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 율법의 완성: 예수님을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으로 이해했다.
* 바리새파와의 대립: 당시 유대교 주류였던 바리새파(랍비 유대교)와 "누가 참된 유대교의 계승자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② '새로운 이스라엘'로서의 정체성
마태 공동체는 자신들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참된 이스라엘'이라고 믿었다.
* 예수 = 제2의 모세: 산상수훈(5~7장)을 통해 예수를 새로운 율법을 선포하는 모세와 같은 권위자로 묘사한다.
* 교회(Ekklesia) 강조: 복음서 중 유일하게 '교회'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며 공동체의 질서와 치리를 중요하게 다뤘다.
③ 이방인 선교에 대한 개방성
유대적 색채가 짙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폐쇄적이지 않았다.
* 지상 명령: 복음서 마지막에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선교적 사명을 강조하며 이방인을 향해 문을 넓혔다.
보편주의: 동방박사의 방문이나 백부장의 믿음 등을 통해 이방인이 구원의 역사에 동참함을 보여준다.
요약하자면,
마태 공동체는 "유대교의 뿌리를 지키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까지 포용하는 보편적 교회로 나아가려 했던 과도기적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유대교와의 긴장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소금”과 “빛”이라고 했다고 한 말씀을 기록했다. 소금은 히브리적 사고에서 부패를 막는 상징이고, 빛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했다.
소금과 빛(막 9:50; 눅 14:34-35)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율법에 대한 교훈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율법의 완성은 폐기가 아니라 삶으로의 성취다.
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가운데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아주 작은 사람으로 일컬어질 것이요, 또 누구든지 계명을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일컬어질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는 관계적 올바름을 뜻한다.)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빛은 어둠을 밝힌다. 믿음은 빛으로 드러난다. 노년의 믿음은 말보다 태도로, 가르침보다 본으로 전해진다.
결론
이사야 58장: 하나님은 금식보다 억압을 풀어 주는 삶을 기뻐하신다.
시편 112편: 복 있는 사람은 재물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나누는 사람이다.
고린도전서 2장: 성령은 지혜가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깨닫게 하신다.
마태복음 5장: 신자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
참된 믿음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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