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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월 1일 주일 낮 예배 본문
1998년 3월 1일 주일 낮 예배
제목 : 파벌(派閥)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 1장 18-25절
주제 :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전한다.
구조
1. 엘리뇨와 라니냐의 현상
2. 요즈음의 파벌싸움-야와 여의 싸움-국민을 위하여야 한다.
3. 고린도교회의 파벌싸움-바울,아볼로,게바,그리스도-인류를 위한 구원
4. 바울이 전한 예수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기뻐 하신다.
서론)
날씨에 관한 이상 현상 중에, 그 원인을 기상학자들은 엘리뇨 현상으로 인한 것 이라고 말합니다. 칠레
(태평양)앞 바다의 해수 온도가 올라가는 것으로 인해 발생하 는 이상 기후 현상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세계기상기구는 최근 회원국 기상 자료를 검토한 보고서를 내고 “지난 해부터 전세계적인 기상
이변을 일으킨 엘리뇨가 오는 5월쯤 소멸한 뒤, 한파와 폭 우를 몰고 올 라니냐 현상이 뒤따를 가능성
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라니냐란 엘 리뇨와는 반대로 태평양의 해수온도가 평균치 이하로 내려가는
현상으로, 통상 엘 리뇨에 뒤따라 발생한다고 합니다.
라니냐가 닥치면 우리 나라의 경우 올 여름엔 비가 많이 내리고, 내년 겨울엔 한 파가 올 가능성이 있
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제껏 우리가 날씨가 이상할 때마다 듣던 엘리뇨라는 말은 들어 가고,
라니냐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자주 등장하 게 되겠지요.
정확한 결론은 아니지만, 지구에 있는 엘리뇨나 라니냐 와 같은 현상은 학자들에 의하면, 환경의 영향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들이 환경을 오염시켜 그런 현상이 나타 나는게 아닌가 추측하는 것이지요. 사람들
이 자연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기에 오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욕심에 사로잡혀 자연을 오용
하는 것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는데도 일부 당이 욕심에 사로잡혀 정부가 출범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것은 국민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본론)
바울 사도 당시 고린도지역에 설립된 교회에도 몇몇 분파들의 욕심 때문에 사람 들이 서로 나뉘어 지
고, 불신이 생겨 서로 싸우고 불란이 나서 교회가 바로 서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파는 바울의 전도에 의하여 개종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바울만을 옹호 하였습니다.
아볼로파는 지성적인 고린도 교인들을 이었습니다.
게바파는 베드로를 지도자로 섬기려던 사람들이었고,
그리스도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만 중요시하 였던 파였습니다.
이들 각파는 자신들이 추종하던 파의 입장과 욕심에 따라 행동 했습니다. 그것으 로 인하여 고린도 교
회에 갈등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혼란스러 워 했고, 나뉘었으며, 결국 하나님의 복
음이 바르게 자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곧 교회에 문제가 생겼던것 입니다.
각자의 입장만 주장하거나 자신의 것이 가장 옳다고 말하기 보다는 각자 어떻게 해야 전체를 위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모두를 위하는 것인지를 생각했어야 했습니 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
어 지도록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생활을 했어야 했던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가 생각하는 바요. 그 자신 의 입장이며, 그가 살
아가는 방식이요, 그 자신의 삶이며, 그 자신이 살아 있음을 말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것 을 막는 것은 그 자신이 무시당하여, 그 자신이 표현되지 못하
는 것으로, 그 존재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자신이 살아 있
는 데도 죽어있다는 모순과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고민되고 괴롭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의 어리석음은 바로 나를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요, 그것에 의 한 나의 무능의 노출이
요, 나에 대한 절망의 드러남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리 석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 고, 믿지 못하는 사람
들에게는 정말 미련한 것이되지만, 믿는 우리들에게는 그 믿는 사실로 인하여, 우리가 그 혜택을 입는,
곧 미련하고 무능하고 절망적인 내가, 죄인 인 내가, 소망을 갖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며, 승리하고 축
복받고 기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의 생각으로
보 면, 우리의 욕심으로 보면, 하나님의 역사,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나에 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지 혜는 오히려 우리가 구원 받는 것과
관련이 있는, 참으로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 이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바울은 사람들은 표적을 보이라고 하거나, 어떤 진리를 알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십자가의 도로 말미암
아 본래의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삶을 살고, 영원한 나라에 갈 수 있게 되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
의 도를 증거 한다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에서 모든 사람이 행복을 찾고, 본래의 삶을 알게 되고 ,또
그러한 삶을 살게 되 는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 저런 입장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처한
상황과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어리석은 것입니다. 미련한 것입니다. 어떤 사 람들은 꺼리거나 무
시하거나 안중에도 없고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지만, 믿는 우리는 십자가의 도가 우리를 살린다고
확신합니다. 십자가는 결코 어려움이 아니 며, 문제의 해결이요, 기쁨이며 즐거움이요, 사랑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이요, 비밀 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믿고, 그런 삶을 사는 이에게,
그리고 그것을 증거하는 이에게는 참 진리의 삶을 의미있게 살게 되고, 보람되게 살게 되며, 세상은 이
래서 살맛이 있는 것이구나 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
한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의 복음, 곧 십자 가의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을 얻는 일에 있어서 하나입니다.
결론)
믿는 여러분 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하신 뜻이 우리 안 에 이룩 되기를 기도
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어서 우리 를 부르시고, 우리를 쓰시고, 그것으로 우
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를 일깨우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예화)
요즈음도 정신 못차리고 있는 우리 사회가 아닌가 한다.
변호사와 판사가 돈에 욕심이 생겨 결국 문제를 일으킨 사건,
대학교수직을 돈으로 파는 그리고 대학의 돈과 관련된 비리, 신용금고의 여직원 과 강도, 등등
서양에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수 있으나 단잠은 살 수 없고, 책은 살 수 있으나 두되는 살 수 없다. 돈으로 음식을
살 수 있으나 입맛은 살 수 없고, 화려한 옷은 살 수 있으 나 아름다운 미는 살 수 없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으나 행복한 가정은 살 수 없 고, 약은 살 수 있으나 건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사치품은 살
수 있으나 교양미는 살 수 없고, 오락은 살 수 있으나 기쁨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십자가는 살 수 있으
나 구세주는 살 수 없고, 교회 의자는 살 수 있으나 영원한 천국은 살 수가 없다."
▒감사를 모르는 현대인▒
어떤 사람이 한 달 동안 아주 특이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 실험이란 어떤 마 을의 일정한 구역에 있
는 각집에 매일 100달러씩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 준 다음 그 결과를 관찰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날 집집마다 들러서 현관에 100달러를 놓고 나오는 그를 사람들은 제정신으 로 하는 행동인지 의아
해 하면서도 멈칫멈칫 나와서 그 돈을 집어 갔습니다.
둘째날에도 거의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셋째날, 넷째날이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돈을 직접 사용해 본 결 과 진짜 돈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동네는 날마다 100달러씩 선물로 주고 가는 사람의 이야기로 떠들썩했습니다.
두번째 주쯤 되었을 때는 동네 사람들은 현관입구에까지 직접 나와 돈을 나눠주 는 사람이 언제쯤 올
것인가하고 평소에 그가 오던 쪽을 뚫어지게 바라 보고, 도 이웃마을에까지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세번째 주쯤 되자 이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이상한 사람이 와서 돈을 주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지
않게 되었습니다.
넷째주가 되었을 때쯤은 매일 100달러씩 돈을 받는 것이 마치 세끼 밥 먹고 세 수하고 출근하는 것 같
은 일상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드디어 실험기한이 끝나는 한 달의 맨마지막 날에 그 실험을 계획했던 사람은 평소와는 달리 그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지 않고 그냥 그 골목을 지나갔습니 다. 그러자 이상한 반응들이 터져나왔습니
다. 마을 사람들은 문을
거칠게 열고 현관까지 나와서 성난 목소리로 "우리 돈은 어디 있습니까"
"당신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왜 오늘은 내 돈 100달러를 안 주는 겁니 까?"라고 따져 묻기
까지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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