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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30 제목 : 하나님의 영광(榮光) 성경 : 고전10:31-33 본문
20040530
제목 : 하나님의 영광(榮光)
성경 : 고전10:31-33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1. 인생의 허무를 말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신자들은(동양적 자연주의 가치관의 소유자) 신앙이, 기도가, 하나님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한다. 자연적으로 왔으니 자연적으로 살다 자연적으로 가면 그 뿐이라 한다. 자연주의 인생관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필요하고 그 원리대로 운영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하나님도, 기도도 필요 없고, 더구나 종교는 당연히 필요 없다고 한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인생을 살고 보니 이런 일 저런 일이 있는 것이고 고난도 즐거움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전도서(3장 1-22절)에도 그러한 말이 나온다.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의 고백이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인생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악착같이 살지 말고 몸 편히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2. 그러나 허무한 인생이 아닌,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자연스레 산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 그리고 정몽주의 어머니의 백로가에서 배웁시다.
하여가 - 이방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단심가 - 정몽주 -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 포은 정몽주의 어머니 영천 이씨 -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세울세라(시샘한다)
청강에 좋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이성계와 이방원
공양왕 4년, 왕세자 석이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이성계는 황주까지 마중을 나갔습니다. 하루의 여유가 있어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놀란, 이지란, 남은, 정도전 등은 정신마저 잃은 이성계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정몽주는 9공신의 한 사람으로, 친명파 거두이며 대학자였습니다. 그는 덕망이 높아 백성들이 우러렀습니다. 정몽주는 전부터 권신들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왕 때부터 권세를 잡았던 이인임, 최영이 없어지자 결국은 이성계 일파가 정권을 휘두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정도전 같이 학문을 닦는 자들도 이성계에게 빌붙어 있으므로 정몽주는 세상 돌아가는 것이 마음에 맞지 않았습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병문안을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정몽주를 경계하였습니다. 정몽주가 와서 간단한 병문안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정몽주는 이성계가 장차 고려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왕이 될 야심이 있는지, 그것을 떠보기 위해 다녀갔습니다. 이성계는 이성계대로 정몽주를 자기편에 끌어 놓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몽주만은 잘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방원은 정몽주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떠보려고 그를 자기 집에 초대하였습니다. 정몽주는 주저하지 않고 초대에 응해 갔습니다. 정몽주는 돌아오는 길에 전부터 지주 들렸던 술집으로 갔습니다. 때는 고양왕 4년 4월 4일. 정몽주는 마루에서 일어나 말을 탔습니다. 무심한 말은 정몽주를 태운 채 선지교(뒤에 선죽교로 고쳐짐)를 향해 뚜벅뚜벅 걸었습니다. 시커먼 괴한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중에는 판위위시사 조영규도 끼어 있었습니다. 정몽주는 선지교 돌다리 위에서 피를 쏟으며 숨졌습니다. 만고의 충신 정몽주는 이렇게 해서 66살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정몽주는 충신인가 혁명가인가?
고려말 공민왕을 비롯한 왕들의 최후는 비참하고 볼품없지만, 최영을 비롯한 몇몇 신하들의 죽음은 후대에 많은 교훈을 준다. 왕조 교체의 격랑에서 이성계와 대척점에 섰던 정몽주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위화도회군, 최영 제거, 창왕 제거 등 고려 멸망이 기정 사실화되는 속에서 정몽주는 언제나 이성계 편이었다. 그러다 별안간 반(反)이성계 진영의 기수가 되었고, 이에 걱정하던 이방원이 그를 선죽교 위에서 죽였다. 많은 사람들은 정몽주가 고려 멸망을 막으려고 마지막 몸부림하다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과연 정몽주가 고려를 위하여 죽었던 것인가?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자 이성계는 이방원을 크게 나무랐다. 기실 정몽주는 낡은 고려 사회를 지키려는 보수의 거두로서가 아니라, 고려의 새로운 내일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즉, 그의 죽음을 "충신"이라는 표현으로 단정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그는 "고려적"인 질서를 그다지 기꺼워하지 않았고, 역성혁명파인 이성계와 맞서다 죽었기보다는 권력을 확보하려던 이방원 일파에 의해 정치적으로 암살된 인물이었다.
정몽주는 고려 충숙왕 6년(1337년) 섣달에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자 "몽란(夢蘭)"이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그의 어머니가 임신 중에 난을 안고 있다가 떨어뜨린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라면서 몽룡(夢龍)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이 역시 어머니의 꿈에 배나무 위로 시커먼 용이 기어오른 후에 고쳐 부른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름 없는 선비였으나, 아들 교육에는 지성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교육열도 남달랐다. 어머니는 어린 정몽주에게 언제나 겉은 푸른 색, 안은 붉은 색의 천으로 저고리를 해 입혔다. 이웃들도 궁금해했고 아버지도 이상해서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우리 아이를 기르는 제 뜻을 나타낸 것입니다. 몽주야, 너도 들어라. 에미가 네 옷을 한결같이 입히는 뜻이 있다. 대개 사람이란 마음속에 붉은 정(丹心)을 품어야 하고 겉으로는 푸른 굳셈이 있어야 한다. 저 새빨간 해가 얼마나 뜨겁더냐! 저 푸른 바닷물이 얼마나 차고 담담하더냐! 너의 겉과 속도 이러해야 한단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정몽주에게 노래를 지어 주었는데, 그것이 유명한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올셰라/청강에 고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라는 시조이다. 이 글은 정몽주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여 1360년 문과 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정몽주는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대단히 강직했다. 1362년, 스승 김덕배가 홍건적 토벌에 공을 세우고도 권신들의 무고(誣告)로 처형되어 머리와 시신이 거리에 버려졌다. 아무도 처벌이 무서워 이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정몽주는 스승의 무죄를 호소하며 장사할 것을 왕에게 청했다. 그의 진심이 왕에게 전해져 스승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고, 스승의 무고(無辜)가 밝혀지면서 정몽주의 용기는 칭송되었다.
정몽주는 야전사령부의 서기관으로 여진족 토벌에 앞장서기도 했다. 1368년 중국에서 명이 일어나자 정몽주는 기울어져 가는 원과 결별하고 명과 수교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명의 사절단으로 가서 명태조 주원장(朱元璋)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귀국 길에 태풍을 만났으나 국교문서를 품에 간직한 채 부서진 뱃조각에 매달려 혼자 살아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 공로로 그는 뒷날 성균관 대제학의 지위에 오른다. 그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왜구를 설득시켜 포로 700여 명을 되찾고 왜구를 토벌하는 이성계군에 참여하여, 글로써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기발한 전략으로 무공을 세웠다.
이렇게 정몽주와 이성계는 친명파로 분류되고 전쟁에서 역할 분담을 하는 등, 겉으로는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정몽주가 무장으로 실력을 갖춘 이성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학식이 없고 거친 이성계를 경멸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최영의 요동정벌이 있기 전, 정몽주는 명의 사신으로 활약했는데 그의 숭명(崇明) 논리가 "철령위"사건을 초래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정몽주는 처음부터 요동정벌에 반대했다. 그러나 무관이 아니었기에 전쟁에 직접 참가할 수는 없었다. 이성계가 개경으로 돌아와 궁궐을 점령하자, 제일 먼저 달려와 수습책을 제시했던 사람이 정몽주였다. 수습책이란 최영은 공신이니 죽이지 말고 유배할 것, 왕의 정책이 잘못되었어도 왕을 처벌하지 말 것 등이었다. 이성계는 처음에는 정몽주의 의견에 따랐으나, 부하의 강권으로 왕을 유배시키고 나중에는 죽였다.
정몽주는 이성계가 우왕을 죽이고 창왕을 쫓아낸 후 공양왕을 옹위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성계가 전제 개혁을 서두르며 보수파 척결에 나섰을 때, 정몽주는 언제나 중립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급속한 개혁에는 반대했다. 그 동안 정몽주는 법제를 정비한다든지, 경리사무를 정확히 하거나 향교를 세우는 등에 노력했다. 이러한 정몽주의 활약은 반 이성계 세력을 결집할 수 있었고, 정치적 헤게모니를 획득할 야심을 갖게 했다.
이렇듯 공양왕 단계에는 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이성계와 정몽주가 겉으로는 온화한 친교를 맺으면서도, 내면적으로 상대를 탐색하는 긴장 상태가 연출된다. 이성계는 문관들의 신망을 모으고 있는 정몽주를 함부로 할 수 없었고, 정몽주는 이성계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이성계는 전제 개혁을 실시한 뒤, 불교와 사원에 대한 배척을 통하여 반 이성계 진영을 무력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왕이 직접 이성계에게 자중할 것을 명하여 정몽주의 정치적 승리로 끝났다.
게다가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일어나 벽란도 근처의 촌락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정몽주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는 이성계 일파인 정도전, 남은, 조준을 탄핵했다. 탄핵의 이유는 "가풍이 부정하고 가계가 불명확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이성계의 수족을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몽주의 힘을 알고 그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던 이방원이 아버지의 귀경을 재촉한 다음, 계획은 무산되었다. 기회를 잃은 정몽주는 이성계의 동정을 파악하기 위해 병문안을 핑계로 이성계를 방문했다. 이 때 방원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하여가"에 답하여 "이 몸이 죽고 죽어..."라는 "단심가"를 불렀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의 죽음 후에도 이성계 일파는 그의 지조를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몽주를 기회주의자로 생각했고, 때문에 이성계 일파에 동참할 것을 거절한 이상, 정적으로서 없애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방원은 심복에게 쇠망치를 건네며 정몽주가 지나가면 살해하라고 명했다. 정몽주는 집을 나올 때 만일의 사태를 예상한 듯, 식구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한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 그는 사내들의 습격을 받아 절명했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그후, 선혈로 얼룩진 이 다리 위에 대나무가 피어났다 하여 이 다리의 이름은 "선죽교"가 되었다.
정몽주가 죽은 지 3개월 후에 이성계는 공양왕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다 살해된 정몽주는 성리학을 치국이념으로 내건 조선에서, 신하의 절개를 상징하는 인물로 환생하여 5백여 년 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다. 고려의 혁명가가 조선에 와서 충신이 되는 일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성계의 야욕에 의한 정권 탈취의 속내를 안 정몽주는 같은 배를 탓지만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고려가 말엽에 문제가 많아 개혁되어야 했지만 야심에 의하여 정권 탈취를 목적을 가진 이성계에게 협력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진정성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인생을 하여가와 같이 살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조선 왕조는 왕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합리화했습니다. 이방원의 하여가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자연주의 인생관으로 표시되는 하여가와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진정성이 없음을 정몽주는 파악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삶은 자연주의 삶이 아닌 목적이 있는 삶인 것입니다. 목적이 있다해도 야욕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대자연과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인생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시다.
본문말씀은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먹는 문제에 대하여 즉, 우상 제물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3절(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榮光)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은 사람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장 23절(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靈光)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으로 바꾼 사람도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5장 2절(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믿는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멘 해야 됩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榮光)을 돌리게 되느니라)은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안에서 가능하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 죄 사하신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을 아멘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靈光)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말씀하고,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靈光)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은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靈光)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했습니다.
믿음으로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 그 안에 사시기 바랍니다.
4. 자연주의 인생보다는 자연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인생관, 목적이 있는 인생관을 갖고 살아야 겠습니다. 목적도 사람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믿음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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