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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9 제목 : 루디아의 오이코스 성경 : 사도행전 16장 11-15절 본문
20061029
제목 : 루디아의 오이코스
성경 : 사도행전 16장 11-15절
1. '오이코스(oikos)란 본래는 집(house)과 그 집안에 거주하는 가족, 친척, 고용인, 방문객까지도 포함하는 확장된 가정을 뜻하는 헬라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더 확장되어 가족, 친지, 이웃, 친구, 직장동료, 클럽회원 등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는 친밀한 인간 유대 관계로 해석한다. 물론 오이코스는 다스리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2. 한국의 문화 전통은 가족과 친족 중심의 씨족문화 중심이면서 부족 중심이었다. 가문이 중요했다. 그러나 신문화가 들어온 이후 오늘날은 가족이 중심이 되었다. 가족간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문화인 것이다.
요즈음 가정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해졌다. 사람들이 가정에 관심을 갖게 된 사회적 분위기가 한 목한 것도 사실이지만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친 결과다. 세상이 너무 바쁘고 사람들이 세상 따라 사니까 하나님 믿고 살도록 가정으로 환원시키는 것이고 세상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야겠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 집사는 사업관계상 집에 늦게 들어간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한다. 왜 그런가? 밤늦게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 치고 세상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밤에 사람은 쉬어야 한다. 전등불빛이 환하니까 또는 할일이 많으니까 밤에도 일하거나 사람들 만나는데 사람은 밤에는 쉬도록 만들어져 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이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따라서 밤에 일하지 않고 쉬도록 해야 한다. 젊었을 때는 집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시내를 헤매다가 늦게 집에 들어간다. 그러나 신실한 사람은 저녁에 일찍 들어가 가족과 함께 쉰다. 가족간의 친밀한 유대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그 가정을 위하여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써 건실한 삶을 사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가족이 가족인 것은 왜 그런가? 부모의 핏줄을 타고 낳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한 핏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핏줄의 관계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타인과의 구별 도구이고 관계한 가족들을 관심 갖고 돌보고 사랑한다는 뜻을 갖는 것이다. 헌신하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가족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중 가정이 포함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이 죽을 때 슬퍼하지 않고, 우리와 관련된 사람이 죽으면 또는 불상사를 당하면 슬퍼한가? 결국 나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단절되기 때문 아닌가? 그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나와 친밀한과 아닌가 또는 나와 관계가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부부관계라는 것은 칼로 물 베기라 했다. 아무리 칼로 물을 베어야 바로 연결되는 것이 물이다. 전혀 남남이 부부가 되면 이와 같이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한편 부부관계를 말하는 것 중 돌아서면 남이다는 말이 있다. 이는 부부관계란 등 돌리면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라는 말과 남남이라는 말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엄청난 것이다.
하나님이 맺어주신 부부관계를 잘 영유하시는 여러분 되시라. 하나님이 맺어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되시라. 가족간에 하나님이 정해준 관계를 영유하시기를 축원한다.
오늘 우리들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특별히 구속주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믿음의 자녀인 관계를 영유하시기를 축원한다.
3. 오늘 본문이 있는 사도행전 16장은
1-5절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가다
6-10절 바울이 환상을 보다
본문 11-15절 루디아가 믿다
16-40절 바울과 실라가 갇히다
그러니까 16장에서 등장인물들이 많은데 특별히 세사람을 드러내고 있다. 디모데, 루디아, 간수가 그 인물이다. 그런데 디모데에 관한 언급 이후 나머지의 문제는 바울 일행이 루디아를 만나고 그를 믿게 하고 세례를 주고 그 집을 구원한 후 그 집에서 믿음의 한 식구가 되어 행한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11 우리는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고,
12 거기에서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첫째가는 도시이고, 로마 식민지였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며칠 동안 묵었는데,
13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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