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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8 제목 : 오직 믿음 성경 : 로마서 14장 17 - 23절 본문

설교

20071028 제목 : 오직 믿음 성경 : 로마서 14장 17 - 23절

필명 이일기 2018. 12. 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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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8

제목 : 오직 믿음

성경 : 로마서 1417 - 23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1. 요즈음 언론에 대선에 관한 보도가 빠지지 않는다. 국가적 대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민들 관심이 많을 것이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나 그러나 현대사회로 갈수록 선진 사회로 갈수록 선거에 관심이 멀어진다. 자기와 직접적 관계가 아니면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국가적 대사에 국민들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비록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잘 생각해보면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우리 아이들 입시와 교육에 관하여 당이 다른 후보자들의 교육정책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아이의 상급학교 입학에 관한 입장을 정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오늘 벌써 두 번째 대통령 선거에 관련한 말씀을 드리지만, 후보마다 자신의 정책과 자신의 입장이 옳고 지당하며, 상대방은 문제가 있고 잘못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흔히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과 싸움에서 이기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온다. 그러나 사실 세상사라는 것은 어느 일방이 전적으로 옳고 다른 한쪽은 일방적으로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다른 입장이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바라보며 자신과 다르면 상대방이 틀리다고 말한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입장일 뿐인데도 말이다. 상대가 틀리고 자신이 옳다고 하면서 자기가 더 잘 안다고 말하고 자신이 더 잘 낫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세상은 제 잘난 맛에 산다. 이렇듯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진정 삶이란 바른 길이 있고 옳은 길이 있다. 옳은 길을 선점하는 사람이 옳은 길을 걷는 사람이 인정받고 인정되는 사회가 바른 사회다.

 

2. 현대인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건강을 위한 음식에 대하여 채식으로 해야 하느냐 육식으로 해야 하는가의 논쟁이 있다. 채식 또는 육식이 더 좋다는 사람이 각각 있으나 어떤 의사는 채식 위주의 한국 사람들은 육식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한다. 실제 힘 있게 살려면 육식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니 육식을 많이 하는 방향으로 오늘날 식단이 바뀌어 가고 있는 서구화된 상황에서는 살이 찌는 것으로 인하여 각종 성인병을 앓게 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식사 습관인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라고 권하는 의사들이 많아졌다. 채식이 좋은가? 육식이 좋은가? 많이 먹는데도 살이 안찌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형편과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과식하지 않는 적당량의 채식과 육식을 겸해야 좋을 것이라고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논지가 호소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종교에 귀의한 많은 구도의 길을 가고 진실한 종교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유사 이래로 채식을 선호하고 그것이 사람에게 좋다고 인식하 그렇게 살도록 권유해왔다.

오늘 본문에도 건강과 같은 주제는 아니지만, 채식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육식을 해야 하는가의 논쟁이 있다. 전통적으로 특히 육식을 해왔던 이방인 신자들에 대한 입장과 채식을 해왔던 유대인들 신자의 입장에 대한 논쟁이다. 두 부류 모두 믿는 사람들이었지만 전통적으로 다른 삶과 문화 속에서 식생활이 달랐던 것이다. 그 식생활에 대한 믿는 자들의 입장이란 어떠해야 하는 문제였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전통적으로 율법의 육식 음식에 대한 금령들을 따라 이방인들의 식습관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갈등하였던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채소를 먹는 것이 건강한 것이고 종교적이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고기를 먹는, 덜 종교적인 사람 사이에서 음식에 관한 믿는 사람들의 자유와 그 목적 즉,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 - 화평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며, 믿음으로 모든 일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결론은 23절로,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의 관계에서 행동의 원칙과 기준은 믿음이다는 것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과의 내면적인 개인적 결단 속에서 하나님과 자신만의 관계를 말한다.

채소 먹는 사람과 고기 먹는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입장에서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바울은 채소든 고기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공동체의 화평이 더 중요하고 공동체의 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믿음 안에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에서는 다른 가치관과 길이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덜 아는 사람을 이해해줄 수 있는 공동체는 일반적 양식이다. 그러나 그 일반적 양식은 각자의 입장만 있을 뿐 원칙적으로는 하나 될 수 없는 일방적 양보이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는 혼연의 일체를 이루는 공동체를 형성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혈육관계의 형제 자매간의 관계는 부부가 결합한 하나의 핏줄에 의하여 형성된 가정의 한 몸에서 출발한 다른 지체들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대속함을 입은, 구원받은 우리는 한 몸의 다른 지체이다. 때문에 다른 입장에 있다하더라도 믿음 안에서 하나인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다른 존재요 다른 입장에서 갈등하며 살아가지만 그러나 믿음이 약한 고기 먹는 사람이나 채소 먹는 사람이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믿음 안에서는 한 형제요 자매인 것이다. 다른 지체로 살아가고 은사가 다르지만 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때는 한 입장만 있을 뿐이다. 믿음을 위한 행동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믿음을 위하여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떠해야 하는가? 바울은 약한 자에게 배려하고 양보하고 인내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령이 이 일을 주관한다고 말한다. 의와 평강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을 위하여 구원을 위하여 강한 자가 음식에 관하여 채식이든 육식이든 율법의 금령에서 자유로운, 복음에 순종하는 강한 자들이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에서 살아온 약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믿음을 위하여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그 사람의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에 순종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곧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들이냐 그렇지 않느냐가 달려 있다고 말한다. 믿음이 기준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믿음은 사람 구원인데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는 행위는 불신이고 죄라는 것이다.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다. 하나님이 섭리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인간 구원을 위하여 율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된 복음을 믿는 신자들이 강한 자들이 율법에 매여 있는 약한 신자들이나 자신들의 문화에 매여 있는 약한 신자들에게 결코 강요를 통하여 부담을 주어 그들이 구원의 반열에 못 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구현해야할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성령이 역사하는 인도하는 옳음의 의와 화평의 평강을 이루는 성취를 해야 한다고 바울을 권유하고 있다. 믿음을 따라 행하지 않고 곧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행위를 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이나 편리만을 위하여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믿음이 없는 행위이며 죄가 된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자라온 배경이 다르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안식일과 절기들과 월삵 등등의 날을 지키고 좋아하지만, 이방인들은 그들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그들의 좋은 날을 지켜왔다. 이제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유한 복음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이들에 대하여 강요하는 것으로 그들이 믿음의 길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을 믿음이 아니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의요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것이다. 오직 믿음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어느 음식이 좋은가, 어떤 날이 좋은 날인가 논쟁할 것이 아니다. 사람이 구원받아 자유로 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자녀로 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문제요, 죄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전주시내 여러 교회에서 분쟁이 있었고, 지금도 몇몇 교회는 진행 중이다. 그 원인과 과정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과연 이들 교회와 교우들이 주 안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세상 논리와 똑같은 주장을 편다. 이해관계에서 말이다. 1618,19,20

 

3. 세상에서는 입장이 다를 때, 살아가는 상황이 다른 때 경쟁하며 싸우며 살지만, 믿음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의와 화평을 그리고 종국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성취를 위하여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갈등은 다른 입장과 다른 생각의 주장과 공격으로부터 발생한다. 세상에서는 서로 경쟁하며 자기만 살아남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버둥치지만,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싸울 수밖에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인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선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곧 의와 화평이다. 나아가 불신자들까지도 사랑하며 믿음 안에 살아가도록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이 복음이다. 믿음이 우리들의 기준이다. 1625-27절 말씀으로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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