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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9주일예배 제목 : 의의 생명 성경 : 로마서 5장 12-21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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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9주일예배 제목 : 의의 생명 성경 : 로마서 5장 12-21절

필명 이일기 2018. 12. 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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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9주일예배

제목 : 의의 생명

성경 : 로마서 512-21

 

1. 재미있는 기사 하나 소개한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휴대폰만[조인스]

죽을 때 가장 갖고 가고 싶은 물건은? 정답은 휴대폰이다. 상조회사 보람상조가 9~20일 수도권 성인 남녀 375명을 대상으로 무덤까지 갖고 가고 싶은 부장품을 조사한 결과다. 1위 휴대폰(36.8%)에 이어 2위는 TV(21.9%)가 차지했다. 의류 엑세서리 등 패션 소품(20%)과 자동차가 뒤를 이었다. 부장품으로 핸드폰을 택한 이유로는 죽어서도 이승에 남을 가족들과 통화하고 싶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휴대폰이 일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이기 때문에라는 의견 등이 뒤를 이었다. TV를 가져가고 싶은 이유로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고 싶어서죽어서도 드라마를 계속 보고 싶어서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현재 국내의 장례 현실에서 부장품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고인이 생전에 입었던 옷이다.

또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세계일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2.5%가 세계일주를 꼽았다. 이어 이성과의 진한 연애’(7.5%), ‘어릴적 살던 곳부터 현재까지의 발자취를 돌아보기’(5.4%), ‘원없이 돈을 펑펑 써 보기’(4.4%) 순이었다. 연예인 되기’, ‘수억 원짜리 수퍼카 몰아 보기’, ‘호랑이 사냥등의 대답도 있었다.

 

상조회사가 죽음에 관련하여 조사한 것이다. 재미있는 조사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죽는 것으로 인하여 직업도 있고 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람 죽는 것처럼 허망하고 슬픈 일인데 세상은 사람이 죽는 것을 이용하여? 돈벌이도 한다. 그런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 세상은 인간의 감정과 생각 이상의 세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휴대폰을 갖고 죽고자하는 이유가 가족과 통화하려고 한다고 조사되었고 그것도 1위로, TV를 가져가고 싶다는 이유가 2위인데 죽어서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 알고 싶어서, 죽어서도 드라마 계속 보고 싶어서라니 참 재미있는 조사고 기사다. 어처구니가 없다. 사람은 죽으면 이 세상과 단절되고 또한 육신은 흙으로 또는 재로 사라지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집착이다. 계속 살아 있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 이러한 사람들의 소망과 바람을 무참히 단절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잔혹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사람들은 자고이래로 이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찾고자 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집단들이 제시했으나 그러나 아직까지 그 어떤 해답도 확증하여 모든 인간이 공인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각자의 확신에 따라 자신들의 가치관을 믿을 뿐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인식을 하고 믿고 있는가? 오늘 본문이 답이다.

 

2. 본문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13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죽음은 죄로 말미암는 것이란다. 그런데 그 죄라는 것도 우리 자신이 행한 범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모든 인류가 죽게 된 죽음이라는 것을 초래하게 한 죄라는 것은 사실은 율법이 있기 이전에는 죄로 여겨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 까지 죽음의 지배를 받았다고 말한다. 단순히 모세까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범죄의 유전적 성격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 죄로 인하여 죽음이 왔다는 것을 말 하고자 한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범죄 해왔다는 말이다.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해하지 않으려고 할 텐데,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해할 수밖에 없다.

죄를 범한 사람을 그냥 놔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의 잘못과 범죄에 대하여는 백배 벌 줘서 혼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 심한 말로 하면 죽여 버려라 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한 인식과 감정을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죄가 죽음을 초래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기독교의 죄에 대한 인식이 올바른 것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육신은 죽음 이후는 흙으로 재로 사라진다고 말하는 것이고 영은 죽을 수 없는 것이기에 구별된 심판의 결과 즉, 천국과 지옥으로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나라, 그의 다스림이 있는 나라에서, 그의 자녀로 영원히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는 자는 사단에 의하여 지배되는 사단의 나라에 살게 된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다.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생각하며 무지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신이 아닌 우리 아둔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정도는 생각할 수 있다. 세상에 살면서 어떤 사람은 온갖 무례한 짖을 하고, 어떤 사람은 착하게 살았는데, 똑같이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렇지 않는가! 만약 악인이나 선인이나 똑같이 대우를 받는다면 누가 자기 욕심에 따라 살지 않겠는가!

결론적으로 죄의 삵은 사망이다. 로마서 623절 말씀이다.

15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16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범죄에서는 심판이 뒤따라와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마는,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17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18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었으나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용서하시는 은혜의 결정체요 계획과 섭리와 뜻에 의하여 예수로 말미암아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되게 하는 일이 발생되었다는 말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인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면 곧 하나님을 멀리하고 자기 고집과 자의식과 자기주장으로 자기가 잘났다고 하던 인간이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었던 죄인들이 죽어 지옥 갈, 사단의 지배 속에 살 수 밖에 없던 인간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가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하여 자기를 낮추어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천국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 되는 삶을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다.

 

20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21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이 끼여 들어와서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의식하게 만들고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게 하였지만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반항하고, 배반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자기주장을 하고, 자의식 속에 살아왔지만, 하나님의 참으시고 참으시는 가운데 은혜로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어려우면 집나간 아들, 용서받은 아들을 예로 들면 쉽다. 아버지 집에 살다가 제 맘대로 살겠다고 유산 가지고 나가 허랑방탕(虛浪放蕩)하게 살다가 돈 다 날리고, 먹을 것이 없어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받아주며 용서하는 것은 아버지의 은혜다.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그 자체로 인하여 아버지의 분노를 서운함을 갖게 한 것이고,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몹쓸 자식이고 불효자고 잘못하는 것이고, 극단적으로 범죄한 것이다. 그 죄인을 조건 없이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디 그 아들의 공로나 노력이나 잘남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는 심지어 아들이 그렇게 된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책하고 자신이 벌을 대신 받고자하고 그렇게 실행하는 것이다.

 

한사람 하나님 자신이면서 이 땅에 자기를 낮추 하나님의 아들이 성부 하나님께 그의 뜻과 섭리와 의지와 계획에 순종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죄를 대신 한 것이고 그것으로 사람들은 의인으로 인정되어 하나님 집에 살게 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의로운 행동이고 그 의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살게 하는 생명을 가져다 준 것이다.

 

3. 존 비비어의 책 순종

권위에 복종하라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실 순종하라 또는 복종하라 하면 사람들은 거부 반응부터 나타낸다. 왜 그럴까? 자신의 생각대로 하고자하는 인간의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다. 그리고 배우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의 노하우를 배우고자 한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는 자 자신이 하나님 보다 능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자는 하나님께 순종한다. 그 반대만이 순종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데 그것을 부인하고 거리감을 갖고서 자기주장대로 살려고 자기 나름대로 살려고 한다. 그것이 불신이다. 믿음으로 살기를 축원한다. 순종이 생명을 줄 줄로 확신한다. 순종함으로 복을 누리는 한님의 은혜를 받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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