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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6주일낮예배 제목 : 두렵고 떨림 성경 : 창세기 22장 1-19절 주제 :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것에 대하여 근심하고 두려워할 것이 없다. 본문
20090826주일낮예배 제목 : 두렵고 떨림 성경 : 창세기 22장 1-19절 주제 :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것에 대하여 근심하고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필명 이일기 2018. 12. 10. 00:1220090826주일낮예배
제목 : 두렵고 떨림
성경 : 창세기 22장 1-19절
주제 :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것에 대하여 근심하고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임하며 불신의 위협을 이겨내라.
1. 두려움의 반대말은 용기, 자신감, 당당함, 믿음, 확신이다. 비슷한 말은 무서움.
사람들은 병들거나 건강하지 못하거나 죽음에 직면하면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그 두려움을 가장 못견뎌한다. 그런데 그 두려움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긍정적인 것으로 선한 것, 즉 하나님의 위엄에 두려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것인데 악한 것, 즉 사단의 위협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두려움(무서움, 떨림)은 하나님에게 또는 사단에게 느끼는 인간의 감정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경외할망정 두려워하지 않는다. 감사하고 용기를 갖게 되며 확신에 차서 활기가 넘치나, 하나님 앞에 범죄 한 자,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는 그 반대의 인식과 삶을 산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단의 위협에 굴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단의 위협에도 두려워한다. 불신자는 하나님도 사단도 두려워 할 수밖에 없다.
두려움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두려워하지 않음이라고 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나 그러나 구체적으로 두려움의 반대말은 용기, 자신감, 당당함, 믿음, 확신이다. 비슷한 말은 무서움이다. 두려움은 자신감을 빼앗아 우리를 위축시킨다.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사람을 두려워하고 상황을 두려워하며, 실패를 두려워하고, 남의 평가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강해질 때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불안하고 초조한가? 끊임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연약하고 무력할 뿐이다. 인간은 혼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 쉴 새 없는 근심, 걱정, 계획 등을 다 내려놓아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의 탁월한 통치 안에서 평안을 얻으라. 그러면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할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라. 그를 경외하라. 그래서 믿음의 확신 가운데 용기백배한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2. 본문 -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시다
1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니, 아브라함은 "예,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 그는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그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5 그는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6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챙긴 다음에, 두 사람은 함께 걸었다.
7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그가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브라함이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삭이 물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8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
9 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곳에 이르러서,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제 자식 이삭을 묶어서,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그는 손에 칼을 들고서,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다.
11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예, 여기 있습니다."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14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1)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2)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히, '아도나이 이레(주님께서 준비하심)'또는 '주님께서 산에서 친히 보이신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서,
16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친히 맹세한다. 네가 이렇게 너의 아들까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9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브엘세바 쪽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3. 키에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
키에르케고르의 생애
1813년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그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종교적인 관습을 익히며 자라났다. 그러나 목사가 되기 위해 코펜하겐 대학 신학부에 입학한 그는 아버지의 간섭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즈음 그의 7남매 중 5명이 차례로 죽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는데 키에르케고르는 이를 부친의 죄 때문에 신께서 내린 저주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자신도 형제들처럼 될 것을 두려워하여 집을 뛰쳐나왔고 그 이후로 짧지 않은 향락생활이 이어졌다. 24세에 이르러 레기나 올슨(Regina Olsen)이라는 여성과 약혼을 하였으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약혼을 파기하였다. 이후에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키에르케고르는 기성교회를 비판하고 공격하기를 거듭하며 종교적 실존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두려움과 떨림」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개념의 간접전달 방식 중 하나이다. 이 저서에서 그는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실존체험에 대하여 세 가지 의문점을 제기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세 단계의 실존, 신앙, 신앙의 역설 등의 개념을 전달하려고 하였다.
아브라함과 신앙의 기사(knight of faith)
키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이 신앙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설명한다. 아브라함이 한 일의 위대함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귀한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음이라고 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아브라함의 결단은 윤리적인 의무와 모순되는 것이있고 그곳에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결단을 아브라함은 한 가지 신념을 가지고 행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이삭을 요구하지 않으실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은 절대복종에서 더 나아간 신앙(faith)으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은 합리적으로 생각될 수 없으며 오직 비합리적인 열정(passion)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고 하고 이러한 신앙의 소유자를 신앙의 기사(knight of faith)라고 했다.
신앙의 역설(Paradox of Faith)
'목적론적 관점에서 비윤리적 행위가 허용되는가'에 대하여 헤겔의 합리적인 입장에서 보면 아브라함의 행동은 비판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합리적 보편에 우선하는신앙의 역설(paradox of faith)을 말한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목적을 위해 보편 윤리의 선을 넘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오직 신과 자신을 위해서 행동을 한 것이다. 그의 행동은 보편에 앞서는 역설적 신앙이라는 근거에 의해서 즉 목적을 위하여 비윤리적 행위가 허용된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눅 14:26]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을 들어 키에르케고르는 이를 역설로 이해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미워하라고 시키는 것은 이기적이고 바보스런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의 소유자 기사는 절대적인 의무의 이행을 위해서 윤리가 허락하지 않는 것도 행한다는 것이지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아브라함의 아들에 대한 증오로 해석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브라함은 진정 아들을 희생(sacrifice) 시키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신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는 그를 지극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역설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키에르케고르는 숨기는 것은 심미적 단계, 말하는 것을 윤리적 단계로 보고 있다. 윤리적 실존으로서는 말을 하고 보편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윤리적 실존은 윤리적 책임을 수반하는 보편으로 되어 보는 단계이다. 그러나 종교적 실존의 숨겨진 문제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어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으며 언어로 표현된다고 해도 제대로 전달 될 수 없기 때문에 실로 표현된 것이 아니다.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아브라함이 보여준 종교적 실존으로의 비약은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주체자가 되는 유일하고 진실한 길이다. 실존은 심미적, 윤리적 단계를 거치면서 보편이 되었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보편을 넘어서는 무엇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약의 과정은 자기 자신을 떠맡음이며 신과의 독대(獨對)이다. 이 때 실존이 느끼는 감정은 다름아닌 두려움과 떨림이다고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책에서 말한 것이다.
4. 하나님 곧 전도에 대한 진리를 알면 불신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요한복음 14장 15-31절
진리의 영인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을 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진리를 알면서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알지 못한 것이다. 진리는 행하게 되어있다. 알면 행할 수 있다.
전도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 없음 그리고 전도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믿음과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면 전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사는 사람은 사단의 위협을 이겨낸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 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절망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광야로 되돌려 죽게 하셨다. 상황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 때문에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어떤 이유이든 두려워하면 안 된다. 자신을 지으시고 사랑하시는 분이 계심을 믿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이신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확신을 가져라.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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