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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0주일낮예배 제목 : 의식과 영혼의 이생과 저생 성경 : 마태복음 13장 10-17절 본문
20131110주일낮예배
제목 : 의식과 영혼의 이생과 저생
성경 : 마태복음 13장 10-17절
얼마 전 이란사람이 마약 밀반입 죄로 사형 선고를 받고 12분 후 의사가 사망을 확인했는데, 시체보관소에 옮겨진 시체가 가족에게 인계되면서 살아있었다.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다. 물론 착오일 수 있다.
이란 북부의 코라산주에서 3년 전 마약 밀반입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알리레자(37)는 수감 중이던 교도소에서 이달 초 교수형에 처해졌다. 형 집행 12분 뒤 참관 의사는 사망을 확인했고, 교도관들은 그의 신체를 교수대에서 분리해 시체보관소로 옮겼다. 다음날 오전 교도관들이 시신을 가족들에게 인도하기 위해 보관소에 갔을 때 기절초풍할 광경이 펼쳐졌다. 시신 보관함을 열자 분명히 사망 진단을 받은 알리레자가 의식을 회복해 두 눈을 뜨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란 관영 일간지 잠이잠에 따르면 그의 부인과 두 딸은 ‘기적’이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환희의 순간은 잠시뿐이었다. 교수형을 선고했던 법원은 재집행을 명령했다. 판결이 번복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알리레자는 병원에서 교수형 집행에 따른 심신미약 증세로 치료받는 중이다. 이란 법에 환자들은 치료가 된 뒤에 형장으로 보내져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접한 영국에 본부가 있는 국제적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알리레자에 대한 구명운동에 돌입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이란은 사형 재집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놓았다. 이 단체의 중동·북아프리카 지부장 필립 루터는 “사형의 고통을 이미 다 당한 사람에게 다시 형을 치르게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하고 반인도적인 처사”라고 주장했다. 사형제 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 단체는 이번 사례가 이란 정부와 사법부가 사형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뜻도 밝혔다. 이란은 미국·중국과 더불어 사형이 많이 집행되는 나라다. 국제앰네스티 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에서는 312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이 일은 이란에서 종종 이뤄지는 투석 처형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도 논란이 되고 있다. 흔히 강간·간통 등의 죄를 지은 피고인들이 받는 투석형은 목 부위까지 신체를 땅에 파묻은 뒤 주민들의 돌팔매를 맞게 하는 징벌이다. 거의 모두 사망에 이르지만 목숨을 부지하는 경우에는 재집행을 하지 않고 풀어주는 게 관행이다. 드물지만 형 집행 뒤에 살아난 사형수를 살려준 경우도 있다. 1803년 호주의 조셉 새뮤얼스는 강도죄로 교수형에 처해졌으나 줄이 두 차례 끊어졌고, 세 번째 시도 때는 발이 땅이 닿았다. 이를 지켜보던 주지사는 집행을 중단시켰다. 이후 진범이 붙잡혀 그는 석방됐다. 1650년 영국 옥스퍼드에서는 이번 이란 사례처럼 사망 진단 뒤 ‘부활’한 경우가 있었다. 유아 살해범 앤 그린은 교수형에 처해졌고, 사망이 확인됐다. 그 뒤 의학 연구를 위해 시신을 해부하려던 의사가 그녀가 살아 있음을 발견했다. 그녀는 석방돼 아이를 셋 둔 어머니가 됐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는 2009년 약물에 의한 사형 진행 과정에서 의료진이 2시간 동안 주사할 정맥을 찾지 못해 집행이 중단됐다. 주정부는 재집행을 명령했으나 인권변호인들이 나서서 이를 막았다. 그에 대한 처분 문제는 미국 연방법원에서 심의 중이다.
이븐 알렉산더는 신경외과 전문의다. 과학자다. 임사체험을 믿지 않고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임사체험이라는 것은 죽음 직전의 경험이다. 그런 그가 2008년 11월 10일- 11월 25일 박테리아 대장균성 뇌막염으로 뇌사상태에 있었다. 혼수상태였지만 사실상 죽었었다. 그 기간 동안 천국을 보고 왔다고 그의 책 “Proof of Heaven”(우리말 책 제목 “나는 천국을 보았다”)에서 증언한다. 미국 언론의 최대 관심사여서 오프라 윈프리의 쇼 슈퍼 소울 선데이, ABC뉴스 나이트라인 등에서 인터뷰되었다. 천국은 있고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경험이 결코 의식이 살아있는 상태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여러 가능성을 가지고 분석하며 증명한다. 명백히 죽어서 경험한 것이라는 것이다. 의식을 넘어서는 영혼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의식은 현세를 위한 뇌의 작용이어서 죽은 후에는 사라지는 것이지만 의식을 넘는 영혼은 죽지 않고 사후 세계에서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혼은 의식 이상으로 현세에 존재할 뿐 아니라 사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영혼으로 인하여 사후 경험을 하고 기억하여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며 사는 것이고, 하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비록 한계가 있는 이 세상, 뇌의 작용에 의하여 이생과 저생이 경계가 되어 걸러져 우리는 현세에서 갇힌 삶을 사는 존재지만!
묘 하게도 그 기간 동안 그의 가족과 지인들은 그가 살아나기를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 기도가 임사중에도 연결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기도는 현세에서 영적 능력이 있고 사후와도 연결됨을 믿기를 바란다.
임사체험이라는 것은 죽음 직전의 경험이지 죽음을 넘어선, 소위 요단강을 넘어간 체험은 아니다. 은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로, 1000만명 중에 한 명이 발병한다는 급성 대장균성 뇌막염에 걸려서 7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급성 대장균성 뇌막염은 생존률이 아주 낮은데다가 대체로 인간들의 고차원적인 의식을 주관하는 대뇌 신피질의 기능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저자는 혼수상태였던 그 7일간 아주 뚜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시 의식이 돌아온 저자는 그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지만, 그 이미지는 너무나 또렷했다고 이야기 한다. 그를 치료했던 의사들, 전문가들은 알렉산더가 혼수상태에 있던 동안은 대뇌의 신피질이 도저히 작동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가능성은 한 가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의식이라는 것이 대뇌에 의존적이라 뇌가 죽으면 우리의 의식도 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라는 것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참의식(확장된 의식)” 은 뇌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참의식은 "영혼"의 다른 이름이다... (알렉산더는 죽음 체험 후에 우리가 소위 말하는 “의식” 이라는 것은 우리의 확장된 의식이 뇌의 의해서 단순화 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즉 뇌는 우리가 살아가기에 적절하도록 정보들을 심플하게 만드는 처리 기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참의식, 즉 육체라는 한계를 벗어난 확장된 의식인 영혼이 죽음 이후를 경험한 것이다. 그가 경험한 것을 그의 진술에 따라 간단하게 묘사를 해보면 이렇다...“내 육체에서 벗어나 있던 동안에 나는 거칠고 추악한 지렁이 시야의 세계에 속한 진창같이 어두운 지역에서부터, 푸르게 빛나는 목가적 분위기의 관문을 지나, 경이로운 천국의 중심근원에까지 이르기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천사로 생각되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동행한다. 그녀가 그에게 보여준 많은 것들은 결국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함이다. “그대는 사랑받고 있고 소중히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대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대가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은 없습니다.” 그는 이를 간단히 정리하여 “그대는 사랑받고 있습니다.”로 표현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그 어떤 어휘도 구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그 메시지는 바람처럼 그를 통과했고 그는 그것이 진실임을 즉시 깨달았을 뿐이다. 이심전심을 이를 두고 말하는 것 같다. 책에는 알렉산더의 출생의 비밀, 그리고 입양되기 전 친부모와의 재회와 관계 회복, 그가 7일간의 혼수상태를 경험하는 동안 가족들이 그를 향해 보여준 애틋하고 헌신적이었던 사랑의 이야기들이 구구절절하게 나오지만 이 글은 그의 7일간의 체험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일단 그는 죽음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 땅의 3차원적인 시공간성에서 벗어난다. 지렁이 시야의 세계에 속한 진창같이 어두운 지역이라고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첫 번째 경험은 마치 일반적인 임사체험자들의 증언의 경우와 같이 처음에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경험과 비슷하다. 이때는 나의 자의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왠지 모를 불쾌감, 곧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두려움과 그리고 심지어는 기대감까지 느끼게 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푸르게 빛나는 관문 - 출입구(gateway) - 으로 상징되는 두 번째 경험은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너무나 밝고 환한 빛을 경험하는 임사체험과 일치한다. 그는 그 경험을 마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경치가 좋은 목가적인 풍경으로 기억한다. 여기서부터는 자신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자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경험하는데 그는 심지어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사실 조차도 망각한 의식으로 존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이끌어주던 천사와 - 이름 모를 여인... 그 여인은 자신이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죽은 누이였다 - 말의 한계를 넘어서 의미로 대화를 하게 된다. 그녀를 통해서 그가 배우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완전하며 자신이 어떤 거대한 사랑에 의해 완전히 용납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자신을 이끌어 주던 천사를 따라간 천국의 중심 근원에서 “신성한 어둠”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중심 근원은 더 없이 밝으면서도 또한 더 없이 어두운 아주 묘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도덕경에서 道의 玄妙함을 이야기 할 때 이 “玄” 자가 바로 신비한 어두움을 이야기하며, 반야심경에서도 ‘그 “한 빔” 속에는 어두움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어두움이 다하여 없는 것도 아니고’ (空中... 無無明 亦無無明盡) 라는 표현과도 묘하게 와 닿는다. 암튼 저자는 그 중심 근원의 신성한 어둠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견하며 끝없이 용납해주는 사랑과 완전한 앎을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앞의 두 번째 경험까지는 일반적인 임사체험자들이 말하는 것인데, 마지막 세 번 째 경험은 임사체험자들이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즉 임사체험이란 것이 죽음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경험이기에 엄밀히 말하자면 죽음 경험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알렉산더의 체험은 아주 독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알렉산더의 체험이라는 것이 신비영성가들의 체험과도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는 무시무시한 영혼의 깊은 밤을 거쳐서 밝은 빛을 경험하고 그 빛을 따라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체험 말이다. 알렉산더가 경험한 죽음과 영성가들의 신비체험의 공통점은, 우리의 영혼이 경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뇌와 우리의 오감 수준의 체험이 아니란 점이다. 저자는 우리의 영혼은 직관의 통로라고 이야기 한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머리가 아닌 영혼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 예술가들은 자신의 영혼을 통하여 그 궁극의 힌트를 보는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도 또 다른 영성가들이다. 그리고 어떤 큰 깨달음과 발견 또한 직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뇌는 그런 면에서 그러한 직관을 논리적으로 프로세싱하는 컴퓨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몸은 영혼의 감옥이라고 했는데,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뇌야말로 영혼의 감옥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경험이 성서 속의 이야기들과도 묘하게 일치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의 허구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형이 죽고 난 후 형수와 결혼한 나머지 동생들의 예를 들면서 결국 그 형수는 부활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지극히 현세적인 질문을 했을 때, 예수는 부활해서는 결혼하는 일이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아진다는 대답을 하셨다. 그는 또한 하나님은 죽은 이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나님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이야기 한다. 결국 사람이 죽고 새로운 삶의 단계로 접어들 때 현세와는 다른 차원을 경험하게 된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그 때 인간들은 하나님의 일치 속에서 개별성을 넘어선 존재가 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의 이야기에서도 부활을 이야기할 때, 종말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악을 없애버리시고 모든 피조물들을 당신 안에서 하나로 완성하시는 역사를 이야기 하며 종국에는 그리스도 또한 하나님 앞에 굴복하여 만물이 하나가 되는 역사에 참여하게 된다는 진술까지 나온다. 또한 바울은 삼층천 - 그리스인들은 천체를 땅은 둥글고 땅 속에는 음부(하데스), 땅 위에는 하늘(우라노스)이 있는 3층의 구조로 이해했고 삼층천, 즉 하늘은 철학적으로 이 땅을 넘어선 세계, 은폐된 세계를 의미했다 - 의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 삼층천의 경험을 간직한 바울은 하나님의 품으로 가는 것이든 이 땅에서 사는 것이든 어느 것도 다 유익함을 이야기 한다. 마찬가지로 알렉산더도 죽음 이후를 경험하고 난 후, 이 땅의 삶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된다. 마치 텁텁한 고기가 시즈닝을 통해서 풍미가 넘치는 요리가 되듯이... 이 지점에서 신앙에 대해서 힌트를 얻게 된다. 신앙이란 죽음 이후, 더 정확히 말하면 종말에 있을 완성의 미래를 현재로 끌어들여 “지금 여기”의 삶을 의미로 가득한, 즉 사랑과 자유와 정의로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라고 예수께서 기도하셨듯이...
본문은 천국 비유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답하신 내용이다. 왜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냐는 것이다. 그 의도와 뜻이 무엇인지 제자들이 묻고 예수님께서 답하시는 내용이다.
10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했다. "어찌하여 그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해 주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다.
12 가진 사람은 더 받아서 차고 남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사 6:9; 10
15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귀가 먹고 눈이 감기어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내가 그들을 고쳐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으며,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
17 그러므로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싶어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 싶어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믿는 자들은 알게 되고 믿지 않는 자들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고 사후 세계가 존재하고 하나님이 존재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믿는 사람들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소유하시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비록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도 믿음이 은혜고 복임을 깨우치시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믿음생활에 충실한 여러분 되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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