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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주일낮예배 제목 : 믿음과 구원과 감사 성경 : 골로새서 2장 6-19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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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주일낮예배 제목 : 믿음과 구원과 감사 성경 : 골로새서 2장 6-19절

필명 이일기 2018. 12. 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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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주일낮예배

제목 : 믿음과 구원과 감사

성경 : 골로새서 26-19

 

인간의 영혼의 무게는 얼마일까?

김용규의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다.

1907년 미국 매사추세스 도체스터에 있는 블루힐 에비뉴 요양병원 던컨 맥두걸 박사가 임종 전 4시간씩 저울 단 침대의 환자의 몸무게를 재고 임종 직후 몸무게를 재니 21g 줄었다는 거, 그로부터 100년 후인 2007년 스웨덴의 룬데 박사팀이 정밀한 컴퓨터 제어장치로 이 실험을 검증했는데 정확히 21.26214g이었다. 물론 영혼은 물질이 아니다. 따라서 죽기 전후의 무게를 달아 그 차이가 21g이라고 영혼의 무게가 21g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죽기 전후의 무게의 차이 일 뿐이다. 영혼은 인간 존재의 원리다.

 

프로클로스라는 신플라톤주의 신학자는 400년대에 이 영혼은 신의 영과 연관된 영과, 인간의 생명과 연관된 혼으로 나누었다. 영혼은 생명을 주관하고 자신을 고양시키고 초월하여 구원(하나님)에 이르게 하는 원리다고 했다.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존재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구원의 지름길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에 나오는 예화다.

젊은이가 걷다가 5달러를 주웠다. 이후 땅만 바라보고 걸었다. 그 결과 29,516개 단추, 54,172개 바늘, 1 센트 동전 12, 구부러진 등뼈, 인색한 성격만 남았다고 했다. 눈부신 햇살, 빛나는 별, 친구들의 가득한 미소, 봄에 핀 꽃들을 그는 보지 못했다. 그의 눈은 길가의 하수구만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본문을 살펴보자.

6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7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8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노획물로 삼을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9 그리스도 안에 온갖 충만한 신성이 몸이 되어 머물고 계십니다.

10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십니다.

11 그분 안에서 여러분도 손으로 행하지 않은 할례, 곧 육신의 몸을 벗어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여러분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13 또 여러분은 죄를 지은 것과 육신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1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15 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뭇 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17 이런 것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18 아무도 겸손과 천사 숭배를 주장하면서 여러분을 비방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자는 자기가 본 환상에 도취되어 있고, 육신의 생각으로 터무니없이 교만을 부립니다.

19 그는 머리에 붙어 있지 않습니다.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각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본문을 세 단어로 표현하면 믿음과 감사와 교만이다.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을 표현한 말이다.

믿는 자로 사는 것은 복을 누리고 사는 것이다. 구원받고 사는 것이다.

죄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불신자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거나 돌아서는 자만하는 자다. 멸망으로 가는 자다.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는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자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다. 구원으로 가는 자이다. 삶의 지향이 180도 다르다. 하나님께 향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다. 현세에서는 불신과 신의 차이인 자기중심적 삶과 가치 중심적 삶(하나님 중심적 삶)의 차이이다.

신앙(믿음)은 자기중심적 삶을 하나님 중심적 삶으로 바꾸어 놓는다. 하나님께 이끌렸다는 거는, 믿음생활 한다는 것이고 구원받은 길이며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의 복이다. 우리 교회에 소목사의 안내에 지금도 따르거나 어떤 분은 다른 교회로 가 거기서 생활해도 어떤 의미가 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런 것이다. 왜 그런지는 다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현재 여러분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소목사와 함께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구원의 길에 있다는 것이고 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고 그렇게 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고 했지만, 우리 믿는 사람은 안젤무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 칼빈 바르트 틸리히 등의 신학자들이 말한 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 Credo ergo sum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특별히 구원받는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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