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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5주일낮예배 제목 :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자녀 성경 : 누가복음 6장 35-36절 본문

설교

20150315주일낮예배 제목 :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자녀 성경 : 누가복음 6장 35-36절

필명 이일기 2018. 12. 1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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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5주일낮예배

제목 :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자녀

성경 : 누가복음 635-36

35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36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제 : 빛을 이해하자.

구조

, 바람은 불지만 햇살이 따뜻하다. 햇살은 빛이다.

인간은 인식(의식) 능력이 있다. 알아차린다는 개념이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식은 인간의 본성이다. 의식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빅뱅에 의하여 우주가 만들어 졌다고 말한다. 빛으로 우주와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때문에 의미에 있어서 신=인간=의식=빛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신의 빛이라면 무능력자라도 인간은 존중되어야 한다. 내 욕망과 기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아서 하게 존중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다.

갈등할 때, 이해되지 않을 때 침묵하라. 평화가 온다. 더구나 사랑하면 평화가 온다.

대접하라. 더없이 높으신 분의 자녀 된 삶을 살라. 존중하는 것이다. 나와 상대를 빛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식하는 것이다.

 

봄 햇살이 따뜻하다. 빛이다. 모든 것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 있는가? 성경 창세기는 흙으로 만들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흙과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태고적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지식수준에서 이해한 것이다. 때문에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식수준에서는 인간은 분자 원자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실제 아인슈타인 등에 의하여 빛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지식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빅뱅에 의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천체물리학에서는 우주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다중 우주론을 주장한다.

거대한 우주에 관해서 말하기보다 우리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생각해보자. 답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아직까지 말하고 있다. 성경은 창세기의 흙을 말하면서도 또한 빛을 말한다. 빛이 세상에 왔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 같은 말은 인간이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피터 러셀이라는 사람은 과학에서 하나님으로라는 책에서 인간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암시한다. 물론 창세기의 흙을 분해하면 분자 원자 입자가 되어 쿼크까지 간다. 그 이상은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 쿼크로 이루어진 입자는 불확정적이어서 진동하고 있고 실체를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에너지, 곧 빛이라고 한다. 결국 인간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특히 인간 각각은 의식이 있는데 나라는 자아는 의식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러셀은 말한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이고 그 생각은 의식이라는 것인데 뇌에 존재하고 그것이 세상을 이해한다고 하며 세상을 만들어 간다고 말한다. 주관적인 입장이다. 아무튼 인간은 빛이고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결국 하나이며 신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곧 신은 의식이고 빛이라는 말이다. 그 의미는 인간은 하나님과 같다는 것이다. 어찌 하나님과 같기야 하겠는가마는 뜻은 하나님처럼 인간은 존귀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한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모든 만물이 다 그렇다고 말한다. 의식은 돌멩이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하여간 인간은 존귀한 존재라는 것이고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 자신을 알면, 참 나를 알면 신을 아는 것이다. 신은 마음에서 빛나는 의식이다. 의식 능력은 의심할 수 없는 진리다. 신은 진리다. 그러므로 의식은 신이다. 나의 존재는 나의 의식이다.

의식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영원히 존재한다. 의식은 근원이고 창조주다. 본성을 깨닫는 것은 신성과 관련된 특성이다. 마음이 고요할 때 참 자아에 이른다. 이를 경험할 때 평안이 이루어진다. 이때 가진 것이나 하는 일과 같은 외적인 것에 좌우되지 않고 평온해진다. 만족이다. 신의 평화다. 외적인 것으로 걱정하지 말라. 그러면 평화가 찾아온다.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은 재산이나 외모나 직업과 같은 외적인 데 관심을 두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과 물질에 의하여 우리가 좌우된다고 믿는다. 의식이 물질계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믿는 것이다. 과학적 세계관이다. 의식이 시간과 공간과 물질로 구성된 세계에서 나온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 상태가 그러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내가 기대한 대로 다른 사람이 행하지 않을 때 상황이 바뀌길 바라거나 걱정하거나 화내지 마라.

그리스어 용서 아페시스는 내버려둠이다.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의식적 사고방식은 신성한 빛이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가 그 빛에 의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용서는 우리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면 분노와 슬픔의 근원이 사라진다. 나쁜 감정은 자신에게 더 피해를 준다.

 

인식의 변화가 의식의 변화이다.

내 안의 깊은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통하여 의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세계가, 다른 사람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내 사고방식에 신이 개입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두려움이나 판단이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온다.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다. 외모, 예절, 지성, 몸매, 재능, 성격, , 습관, 신념, 가치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기대와 욕망에 부응하는 사랑은 덧없다. 허무하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다른 사람의 속성이나 행위에 좌우되지 않는다. 바람, 욕구, 희망, 두려움과 같은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두려움, 평가, 판단이 사라질 때 솟아난다. 이는 마음 한 가운데 있다.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본성에 있다. 순수한 의식이다. 순수한 사랑이다. 참된 본질인 내는 사랑이다.

 

우리는 존중받기를 바란다. 사랑을 받고자 하면 사랑을 주어야 한다. 사랑받기는 어렵다. 상처받으면 우리는 공격한다. 악순환이다. 자신을 더 사랑하게 하려고 하다 상처를 받는다. 끝내야 한다.

사랑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사랑을 주어라. 상대가 사랑받고 배려 받고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하라. 기독교용어로 이타적 사랑이다. 표현하기 어렵다면, 모른다면 친절과 애정이 생길 때까지 침묵하라.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이다. 이는 우리 안에 빛나는 의식의 빛이 신성함을 깨달을 때 발생한다. 우리는 성스럽기에 서로 존중함으로써 신을 존중한다. 의식의 변화를 통하여 사랑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사고방식을 바꿔서 삶을 바꿔라. 사랑하라. 존중하라. 자비하라. 더없이 높으신 분의 자녀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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