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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주일낮예배 제목 : 복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 : 시편 1편 1-6절 주제 :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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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주일낮예배 제목 : 복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 : 시편 1편 1-6절 주제 :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자

필명 이일기 2018. 12. 13.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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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주일낮예배

제목 : 복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 : 시편 11-6

주제 :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자

 

오늘 말씀은 시편 말씀이다. 시는 일반적인 글과 함께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한다. 인간의 감정은 노래로 잘 나타낼 수 있다. 물론 화를 내거나 근심 걱정 슬픔 즐거움 기쁨 환희 그 모든 것을 시로 표현할 수 있고 노래로 표현하는 인간이다. 시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로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시편

우리말 책명 시편(詩篇)은 본래 히브리 성경의 하나님을 찬양하라 라는 할렐루야(hallelujah)에서 나온 형태의 하랄(halal)에서 파생된 테힐림(Tehillim), 그리스어 번역본 70인 역의 수많은 시편에 대한 전문 명칭인,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라는 히브리어 미즈몰(mizmor)을 헬라어로 옮긴 프살모스(Psalmos)의 복수형 프살모이(Psalmoi), 영역본은 쌈스 또는 쌀터(Psalms, 또는 Psalter)의 번역이다.

시편은 찬송시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이고 노래라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시편을 살펴보면, 각 편들이 다윗, 고라, 아삽, 모세, 헤만, 에단, 솔로몬, 여두둔 등의 이름으로 나와 있다.

11-41편에서 보면, 한 예로 3편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쫒길 때 지은 시라 했으니 다윗이 쓴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다윗의 이름으로 다윗의 상황을 안 사람이 쓴 시라 할 수도 있다. 그 외 다윗의 시 또는 노래 등등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실제 다윗이 쓴 것도 있지만 다윗의 이름으로 불리는 시편이 대다수다.

242-72편에서 보면, 42, 44-49편은 고라 자손의 노래, 50편은 아삽의 노래라 하고 그 외 대부분이 다윗의 시 등으로 나와 있다.

373-89편 중 73-83은 아삽의 시, 84,85,87은 고라 자손의 시, 88헤만의 마스길, 89에단의 마스길, 86은 다윗의 기도로 나와 있다.

490-106편 중 90모세의 기도, 101, 103다윗의 노래, 그 외는 편명이 없다.

5107-150편 중 108, 109, 110, 122, 124, 131,133, 138, 139, 140, 142, 143, 144, 145은 다윗, 127솔로몬, 그 외는 성전 올라가는 노래, 할렐루야 등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각 편명은 다윗이고, 고라의 자손, 아삽, 솔로몬 등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에스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학개 등에 의해 작곡되고,  바빌로니아 포로귀환 후 에스라, 느헤미야 또는 그들 후 몇몇 서기관들에 의해 최종 편집되었을 것이다.

물론 학자들은 시편의 역사를 가나안 정착 이전에서부터 모세, 다윗, 포로귀환 후 시대까지,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기원전 160년경 마카비 시대까지 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시편의 역사는 성경이 정경화되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 전반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편이 이스라엘 전 역사를 담고 있다는 의미는 구약성경을 전체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구약성경을 축약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약성경 전체를 읽으면 좋지만, 전체 구약성경의 배경을 담은 시편만이라도 읽으면 구약성경 전체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인간의 말 성경

요약하면 시편은 5권 최소 7명의 이름으로, 어떤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되어, 특정 편집자에 의하여 편집되었고, 수세기 동안, 최소 다윗 때부터 바빌로니아 포로 이후 400년경까지만 산정하더라도 600여년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여 정경화 되었다.

이러한 인간의 말과 기록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있다. 그 이유는 시편 저자들이 자신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쳐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편 3편은 압살롬의 추격에 도망치던 다윗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 다윗은 어찌 이리 나를 죽이려는 인간들이 이렇게 많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질문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방패요 자신의 영광이고 자신의 머리를 들게 해주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하면서 도움을 구할 때 도와주시라고 말한다. 적들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은 그들을 물리쳐 주실 분이기에 자신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해주시고 백성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한다.

다윗은 자신의 상황에서 하나님이 구해주실 것이라고 믿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존재하고 자신의 상황에 개입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편 3편은 비록 다윗의 이름으로 또는 다윗이 쓴 시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믿고 있고 그러한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과 관계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인정하고 공인화 되어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전달되는 것이다.

 

물론 시편은 문학적 양식 등에 따라 찬양, 탄식, 감사, 역사, 지혜, 대관 등등의 시로 분류할 수 있고, 인간 곤경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한 찬양이며, 그 핵심 주제는 1장의 하나님의 말씀(율법)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이 복된 삶이다는 것이다.

 

한편 시편의 주제는 구약 성경 전체의 주제가 되기 때문에 구약 성경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며 살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다. 핵심 단어는 하나님의 말씀(율법)대로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전제 되어있는 것이고, 그의 말씀이니, 그의 말씀을 따라 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앙이고, 그가 하는 말씀을 따라 살라는 말이다.

복된 삶이란 복을 받는 삶으로 대부분 인식하는데, 그러나 그 근본 뜻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이 거부되거나 부정되지 않고 인정되는 삶을 말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이 영역을 거부하는 사탄의 조정을 받는 것이다.

 

사탄의 조정을 받는 사람들, 무신론 과학자들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꿀벌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을 쏘아 자기 동료들을 보호한다. 한 번 쏘면 침이 자기 내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장이 파열되어 죽는다. 그럼에도 자기가 죽는 것을 무릅쓰고 동료를 보호하는 것이다.

자신보다 큰 생물에게서 피를 빨아 먹어야 생존하는 흡혈박쥐는 60시간 동안 피를 먹지 못하면 굶주려 죽는다. 박쥐는 자기 식구가 아니라도 자신이 필요로 한 양 보다 많은 양의 피를 먹고 동료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들은 보상과 처벌이라는 체계에 의하여 생존한다. 이것을 생물학자들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이타주의라고 부른다. 자연에는 이러한 이타주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인간에게도 유전적으로 이러한 꿀벌이나 흡혈박쥐와 같은 이타주의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도 유전적으로 이타주의가 새겨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에 있는 이타주의는 일반적으로 유전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교육이나 의지와 같은 것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킨스가 말한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심지어 인간의 이타주의도 사실은 이기주의라고 말한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 사랑하는 것도 사실은 이기적 목적에서 그런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람들을 위한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기독교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다. 본래 인간은 유전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교리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부정한다.

 

그런데 신학자들은 유전적인 이타주의와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의 이타주의와는 다르다고 한다. 유전적 이타주의는 본능에 의한 행동이고, 인간의 이타주의는 인간 의식에 의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물론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은 유전적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인간 의식을 통하여 행동하기 때문에 인간 이타주의는 유전적이라기 보다 사회와 문화 속에서 배워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의 이타주의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고,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이타주의라고 신학자들은 말한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고, 예수님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결국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차이는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느냐에 따른다. 좀 더 일반화시키면 의식과 본능에서 의식이라는 부분을 좀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본성과 의식이 사실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마음과 정신 곧 인간의 뇌에 한편 유전적인 능력으로 새겨져 있고 한편 외부 곧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오는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이 신앙인이다. 그렇지 않는 사람은 불신앙인이다.

 

구약성경의 시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고 그의 말씀에 따라 살라고 했다. 하나님 안에 우리 인생이 존재함을 고백하고 믿는 사람은 복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인생에서 평생 고난이나 잘못이 있어도, 그리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도, 더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해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사람은 복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신앙하며 그의 말씀에 희망을 걸고 그 길을 걷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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