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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181007설교 선한 양심 베드로전서 3장 8-16절

필명 이일기 2018. 12. 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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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7설교

선한 양심

베드로전서 38-16

 

1. 살다보면 애매한 때가 많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요즈음은 더 그렇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갈피를 못 잡는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살다보면 감이 잡힌다. 잣대가 보이기 때문에 애매할 수가 없다. 진리 안에 살면 확실하게 살 수 있다.

 

마가복음 223-28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내기 위해 밀 이삭을 자름을 보고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다고 하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다른 인식의 예수님은 굶주린 다윗이 아비아달 제사장 때 제단의 빵을 먹은 예를 들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고 했다. 율법적 논리로는 답하기 어렵고 애매한 부분이었지만 예수님은 명확한 답을 한 것이다. 진리를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020-26 어떻게 해서라도 민심을 거스르지 않고 예수를 잡으려 한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염탐군을 시켜서 세금을 황제에게 바치는 것이 옳은지 예수님께 질문한다. 옳다고 하면 민심에 거스리고 옳지 않다고 하면 로마체제에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한 것이었다. 어느 한쪽으로 답을 하기에 애매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확실하고 분명하게 답하신다. 데나리온 한 잎을 보여달라고 하고 이 돈에 누구의 얼굴상과 글자가 새겨져 있느냐 묻고 황제의 것이라고 하니 황제의 것이면 황제에게 바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리라고 한 것이다. 민심의 백성들 앞에서 그들이 마음으로는 로마체제에 반대하지만 현실 정치 체제를 거스릴 수 없음을 분명하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체제를 넘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말한 것이다.

 

요한복음 81-11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잡아다 모세의 율법대로 처단해야 한다고 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예수님은 명쾌한 답을 한다. 현실을 사는 인간을 생각하고 위로하며 하나님을 인식하고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살라고 한 것이다.

 

2. 각자의 입장과 상황에 대한 결의론

이러한 애매한 세상살이에서 예수님처럼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역사에서 정리된 논리가 있다. 결의론이라는 것인데 결의론은 애매한 경우 인간 양심적인 것들을 기독교 신앙의 잣대로 인식하여 판단하는 것이었다. 애매한 경우 양심적으로 판단하되 무자비한 엄격주의를 피하고 최소한의 윤리법 적용과 최대한의 관용주의를 취하는 것이다. 윤리법의 근본정신은 사람을 살리려는 데 있는 것이지, 죄인 판정을 하려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느슨한 융통성 있는 것으로 인하여 해이주의의 부작용이 발생하기는 한다. 그래서 파스칼은 엄격해야 한다고 했다. 상황에 따라 기준이 왔다 갔다 하여 이언령 비언령 이지만 결국 인간의 절대적 가치 기준은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결국 어떤 것이 진리인가가 문제가 된다.

 

3. 진리의 이원론

이율배반은 논리적으로나 사실적으로 동등한 근거로 성립하면서도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두 명제 사이의 관계다. 칸트(I. Kant)"세계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한정된 것이다""세계는 시간적·공간적으로 무한하다"고 하며 모순된 두 명제가 모두 허위이거나 또는 일면에 서만 진실일 경우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진리는 반드시 드러난다.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이방인 로마인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여 십자가에 죽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임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그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된 것이다.

빛은 어둠으로 밝다. 선은 악으로 드러난다. 어둠 속에서는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한다.

4. 빛이신 하나님 안에 사는 삶

한일장신대 차정식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환각 상태에서 유체이탈 경험 중 명증의 하나님 음성 들었다고 한다. 이후 죽음의 문제를 항상 가까이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잘 죽으려면 죽기 전 미각에 의미를 두고 그것에 대한 마지막 욕망임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항상 하나님 안에 살며 죽는 마지막 순간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인생사건 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개인적으로 양심의 확신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은 무지하고 나약한 인간에게 위로와 보장이며 기쁨이고 행복이며 즐거움으로 의미 있는 삶이 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5. 본문 베드로전서 38-22확실한 믿음의 잣대를 가지고 선한 양심대로 살자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한 마음을 품으며, 서로 동정하며, 서로 사랑하며, 자비로우며, 겸손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여러분으로 하여금 복을 상속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10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혀를 다스려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며, 입술을 닫아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여라.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평화를 추구하며, 그것을 좇아라.

12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주님의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그러나 주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서는 얼굴을 돌리신다."

13 그러므로 여러분이 열심으로 선한 일을 하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14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15 다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16 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답변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17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18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자비롭게 살라고 한다. 죄 사함을 위하여 고난 받고 죽으신 예수님처럼 어려운 상황에도 선한 양심으로 살면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신다.

사람들이 우리를 모르거나 무시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확실한 믿음의 잣대를 가지고 선한 양심으로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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