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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2 #죽음 부활 영생 #요한복음서 11장 25-27절 본문
20200412
죽음 부활 영생
요한복음서 11장 25-27절
1. 부활은 사망이 전제된다.
우리는 지금 기독교 최대의 절기인 부활절 예배를 드린다.
오늘은 부활에 대한 기독교 교리 말씀을 다시 비춰보자.
부활의 전제 조건 사망
부활을 말하려면 반드시 사망, 곧 죽음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죽음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있는 한 현상인 것만 가끔씩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죽음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전통적으로는 심장의 동작이나 호흡이 멈췄을 때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가사 상태에서도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현대 의학에서는 뇌사 상태에 이르게 되었을 때 죽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다. 미국의 신경외과 의사 이븐 알렉산더(Eben Alexander)가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을 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그가 쓴 책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나는 천국을 보았다'을 읽고 여러분에게 말씀 나눈 적이 있다. 당시 54세의 나이인 2008년 11월 10일 '대장균성 박테리아 뇌막염'이라는 휘귀병에 걸려 7일간 뇌사상태에 빠져 임사체험을 통해 사후의 세계를 보았다고 하는 경험담이다. 의사들에 의하여 뇌사 상태였다고 판정받았다고 했다. 천국에 갔다 왔다고 간증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살고 있으므로 뇌사 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죽었다고 할 수 없다. 뇌사 상태가 현재까지 죽음을 정의하는 가장 최신 이론이지만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죽음을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다. 다만 사전적으로 죽음은 살아있는 유기체의 생물학적 기능의 중지다.
한편 죽음의 형태는 특별한 문제 없이 노화로 인하여 죽는 경우 자연사, 병으로 인해 죽으면 병사, 사고로 인하면 사고사, 스스로 자결하는 경우 자살, 타인에 의한 죽음을 타살이다.
종교가 말하는 죽음과 영생
아무래도 죽음에 관해서는 종교들의 주장을 살펴봐야 한다. 오랜 전통 가운데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윤회 사상을 말한다. 사람은 다른 물체로 변화하며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죽음도 현생에서 다른 생으로의 변화라 한다. 인간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하는 개념이다.
유교는 효 사상에서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은 죽으면 혼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입장이나 부모 자식 간에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은 조상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며, 자손들에게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로마서 5장 12절에 죽음에 대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원인이 죄라는 말이다.
2. 부활과 영생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부활 개념은 영원히 산다는 영생이라는 개념도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
죽음과 다시 살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
사람들이 죽고 싶을 때가 있다. n번방 조주빈처럼 자신의 범죄가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 드러날 때 너무 치욕적이고 살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다. 또는 회복 불가능이라 판단할 때도 죽고 싶을 것이다. 그 외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최악의 상황에 있다 해도 자신을 부정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다시 태어나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은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거나 다시 살고 싶다는 것은 자신이 문제가 있어서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죽기 때문이다. 죽어서 영원히 없어져 끝나버리는 인생이 아니라 현생의 삶을 다 살고도 죽고 난 후에도 계속 살고 싶다는, 확장하면 영원히 살고자 하는 소망을 포함한 개념이다. 백세 시대라는 말이나 수백 년을 살다가 죽은 구약시대 사람들을 언급하는 것은 오래 살고자 하는, 아니 영생하고자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들의 소망을 담은 것이다.
영생에 대한 인간의 이중성
어떤 사람들은 8, 9십을 살아도 인생이 지겨울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암울하기는 해도 자연스럽게 죽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더구나 만약 영원히 산다면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자연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며 영생에 대해 부정적이다.
죽음이 있고 끝이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슬프게 만든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이르기는 하지만 속마음은 영원히 살고 싶어 한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렇다.
죽음 없는 영생은 기독교 영생 개념이 아니다.
현재까지 죽은 사람의 육신을 썩지 않게 미이라를 만들 수는 있어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게 하는 인간의 지식과 기술, 곧 과학은 없다. 미래에 인간 뇌의 정보를 보전하여 썩지 않는 기기에 담아두는 영생하는 기계가 나올 수는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것이 과연 그 사람이 영생하는 것이라고 아직은 확답할 수 없다. 만약 그러한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여 영원히 산다는 것은 죽음 없는 영생 개념이다. 그것은 죽었다가 다시 사는 영생 개념이 아니다. 기독교의 부활과 영생 개념과는 다른 영생 개념이다.
3. 기독교 부활의 개념과 영생
나사로를 통한 예수 부활 예표적 증언
요한복음 11장은 병을 앓고 있던, 예루살렘 가까이 베다니에 살았던 나사로와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등장한다. 병을 앓다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여주고 있다.
4절에서 나사로가 죽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예수님 자신이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한다.
11절에서 예수님은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인식했다.
15절에서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믿게 될 것이다고 하면서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을 수 있도록 제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16절에서는 도마를 등장시켜 제자들의 오해를 말하고 있다.
중요한 구절은 25-27절이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부활이고 생명이니 자신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생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믿는가 하고 마르다에게 묻고 마르다는 당신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말한다.
28-37절에서 예수님은 마리아가 우는 것을 보고 마음이 비통하여 괴로워 하시고 우셨다고 하고 있다. 그 광경을 동네 사람들이 보고 어찌 앉은뱅이를 살린 능력이 있는 예수가 나사로는 왜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냐고 의문을 품었다고 표현했다.
38-44절에서는 죽은지 4일 된 나사로를 살리고 이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낸 것을 무리들이 믿게 하려는 것임을 다시 반복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사로를 살린 사건을 통하여 믿게 되었다고 요한 저자는 표현하고 있다.
45-57절에서는 대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예수를 죽일 음모에 관하여 언급한다.
로마서 5,6장으로 가보자
[로마서 5:21]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로마서 6:5]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 6:9] 우리가 알기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로마서 6:17-18]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 여러분은 전해 받은 교훈의 본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써, 죄에서 해방을 받아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기독교의 부활과 영생
기독교의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영생하고자 하는 소망 개념이 아니다. 극악 범죄하면 사형당하는 것과 같이 범죄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예수의 대속 은혜로 죽었다가 다시 사는 개념이다.
사람들의 죄를 없애버리는 예수의 대속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의로운 자로 여겨져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된다는 기독교 핵심 영생 교리다.
그러니 예수를 구세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예수 믿어 영생하라고 한 것이다.
바울의 신앙
바울은 예수 믿어 구원받으라고 설파했다. 신앙의 중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믿든지 안 믿든지는 자유다. 매번 말씀 나누지만 믿는 것이 이익이다. 최소한 인류 역사에서 공인된 예수를 따르는 것은 인생을 위해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4. 오늘 부활주일예배는 죽어도 부활하여 영생하게 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기념한 것이다.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갖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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