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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19-22절
1. 세상에 한 번 보고 다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상세하게 보고, 자주 보고, 오래 보고 살펴야 한다. 시, 작곡, 미술, 문학 작법의 기초다.
그러면 제대로 이해하여 자신이 즐겁고, 타인에게도 제대로 전달하여 세상이 즐거워진다.
최근 운동 겸 산책하기 위하여 자전거 타고 만경강을 자주 가본다. 본래는 신창진이었는데 넓은 경작지 논들이 있는 만경현 지역 강이라 부른 만경강에는 만경 8경이 있다.
계절마다 가 볼 때마다 다르다. 넓게 흐르던 옛날과 다르게 지금은 모래와 흙들이 몰려 물줄기가 좁아져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풀들과 꽃들과 새들과 물고기들이 놀고 있다. 그 위를 바람이 분다. 거기에 사람들이 드나든다. 우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운동과 놀이, 공연과 관찰 시설들도 준비되어 있다.
만경강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볼수록 오래도록 상세히 보고 또 보고 싶은 강이다. 그럴수록 아름답고 멋있고 애정을 느낀다. 그것들 너머에 그것들 존재의 기반이고 그것들을 초월한 하나님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눈이 된다면 상상을 초월한 황홀감을 느낄 것이다.
(참고로,
만경강은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밤샘에서 발원하여 동상저수지, 대아저수지, 완주, 전주, 김제, 익산, 군산 대야 등을 거쳐 서해바다로 흐른다.
전라북도를 흐르는 강은 만경강을 포함하여 동진강, 섬진강, 금강 4대 강이다. 동진강과 만경강은 전북 내에만 흐른다.
동진강, 정읍 산내면 여우치마을 빈 시암, 내장산 까치봉의 까치샘에서 발원하여, 부안에서 서해바다로 흐른다.
섬진강은 진안군 백운면 원신암마을 상추막이골 천상데미(더미=봉우리)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임실, 순창, 남원, 전남 구례, 곡성, 광양을 지나 경상도와 접하며 남해로 흐른다.
금강은 장수 뜬봉샘에서 진안, 무주, 충청도 대전으로 올라갔다가 세종, 공주, 부여, 익산 강경, 웅포를 지나 군산 나포에서 서해로 흐른다.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에 있는 금강 발원지 뜬봉샘은 이성계가 봉황이 날아 올라가는, 뜬, 조선 건국 계시 꿈꾸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 신명기 4장 15-19절, 하나님을 보지 못하여 우상을 보다.
15 주님께서 호렙 산 불길 속에서 당신들에게 말씀하시던 날, 당신들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십시오.
16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당신들 스스로가 어떤 형상이라도 본떠서, 새긴 우상을 만들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상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 부패하는 것입니다.
17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나, 하늘에 날아다니는 어떤 새의 형상이나,
18 땅 위에 기어 다니는 어떤 동물의 형상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물고기의 형상으로라도, 우상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19 눈을 들어서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들, 하늘의 모든 천체를 보고 미혹되어서, 절을 하며 그것들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천체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다른 민족들이나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 사람들이 하나님 형상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어떤 형태인지 세상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하나님을 자기 맘대로 보았다고 또는 하나님이 어떤 다른 말을 하였다고 해서는 안된다고 경계한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주장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보지 못했기에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자기 목적과 이기적인 입장에서 하는 자기주장은 인정될 수 없다는 말이다. 모르면서 안다고 하거나 아는 체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한 자신임을 성찰하라는 말이다. 야훼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고 말씀(설명)하실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세상에 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들은 신이 아니니 그것들을 신으로 만들어 섬겨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그것들 너머에 진짜 신을 볼 수 있다면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 것들에 매료되어 그것들을 신으로 착각한다.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울은 이점을 밝힌다.
3. 로마서 1장 19-22절 어리석은 사람이 되다.
19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21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22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3-7절
3 우리의 복음이 가려 있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가려 있는 것입니다.
4 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
6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본래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속성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했다. 그렇게 본래 하나님을 알면서도 묘하게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원죄론이다. 인류의 타락 이후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었으면서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자연신학이 부정되고 계시신학만 인정되게 된다. 접촉점 논쟁이다. 신학자 바르트는 인간이 타락하여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길이 없다고 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간의 죄를 대신한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 접촉점은 없고 복음만이 접촉점이라는 말이다. 예수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물론 에밀 브루너는 인간이 타락했어도 창조 시 부여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자연에 존재하기에 그 자연과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다. 일반(자연)과 특수(예수) 계시다.
어떻든지 분명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름길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 구체적으로는 성경이다. 복음은 예수를 전한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기독교 주장은 명백하다.
4. 국민의힘 당대표 이준석 현상
우리 나이로 37살인데 당 대표가 되어 정치 꼰대들에게 획기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 전주에 방문해 젊은 사람들이 서로 같이 사진 찍으려고 아우성이었다. 이름하여 이준석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 정도 나이면 어린 나이도 아니다.
이준석 현상으로 가짜 뉴스가 판치고 흐려진 세상과 사회가 제대로 보지 못해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정치인들 세상이 바뀌기를 바란다. 좀 더 상식이 통하고 합리적인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가 시간이 지나도 어떤 구습과 구태에 묻히지 않기를!
사람들이 제대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여 그가 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결과적으로 세상이 바꿔지기를 기대해본다.
5. 세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거꾸로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해야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대충 보거나 주위 산만하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깨달을 수 없다.
제대로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제대로 보는 것은 한 번에 안된다.
자주 보고 오래 보고 상세하게 봐야 한다.
모든 것을 제대로 보고 이해하여 삶이 즐겁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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