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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6 주술과 신앙 이사야서 48장 17절 본문

설교

20220206 주술과 신앙 이사야서 48장 17절

필명 이일기 2022. 2. 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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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6

주술과 신앙

이사야서 48장 17절

 주, 너의 속량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이르시기를 '나는 주, 네 하나님이다. 네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며, 네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하나님이다' 하셨다.

 

 원시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고, 특히 요즘 대선시기 모 후보로 인해 언급되는 무속의 주술(呪術)은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비로운 힘을 빌려 여러 가지 현상을 일으키어 인간의 길흉화복을 해결하려고 하는 기술이다.

 

 원시시대 인류 선조들은 주술과 연관하여 어떻게 살았는지 사무엘기상을 읽어보자. 

 사무엘기상 1-3장은 사무엘 출생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엘가나의 두 부인 중 아이를 낳지 못했던 한나는 실로에 있는 성전에서, 어떤 측면에서 보면 원시적이며 주술적인 기도를 통하여 사무엘을 낳았다. 사무엘은 사사이자 제사장이었던 엘리에게 보내져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란다.

엘리의 탐욕적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행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과 원한도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들에 대한 벌을 들은 사무엘의 예언이 이루어질 것임이 묘사된다. 사람들 괴로움이 하나님의 문제로 처리된 것이다. 사무엘은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다는 내용도 서술된다.

 

 사무엘기상 4-5장, 이스라엘의 블레셋과 전쟁에서 홉니 비느하스가 죽고 하나님의 궤를 탈취당한다. 그로 인해 엘리가 죽는다. 블레셋 지역 하나님의 궤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악성종양에 걸려 문제가 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기원전 1200년경(?) 출애굽 이후 마지막 사사들에 의해 통치되던 시기인 기원전 1100년경(?) 엘리가 사사로 있었을 때 이스라엘은 이웃 블레셋 군의 침략을 당한다. 에벤에셀에 진을 치고 있던 이스라엘과 아벡에 진을 치고 있던 블레셋의 1차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은 블레셋 군에게 4000명이 죽임을 당하는 패배를 한다. 실로의 그룹들 사이에 앉아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가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 의해 전쟁터로 옮겨진다. 거기서 다시 블레셋 군에 의해 이스라엘 보병군 30000명이 죽고 하나님의 궤가 빼앗겨지며 엘리의 두 아들은 전사한다. 실로에서 40년간 사사로 있었던 96살 엘리는 전쟁터에서 도망쳐 나온 베냐민 사람에 의하여 전쟁에서 패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고 하나님의 궤도 빼앗겼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 순간 의자에 앉아 하나님의 궤를 걱정하던 엘리는 뒤로 넘어져 문 곁으로 쓰러지며 목이 부러져 죽는다. 비느하스의 아내이자 엘리의 며느리는 애를 낳고 죽는다. 산모는 그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이름을 지어준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고 며느리가 죽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의 이름이다.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궤가 전쟁터인 에벤에셀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블레셋의 아스돗으로 빼앗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아스돗에서 사람들이 죽고 악성종양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가드로 옮겼는데 가드 사람들도 많은 사람들이 죽고 악성종양에 걸려 하나님의 궤를 옮겨 달라고 하여 에그론으로 옮겨졌지만, 옮겨 놓은 지역마다 사람들이 죽거나 악성종양에 걸려 하나님의 궤는 본래 있던 이스라엘 지역으로 돌려보내라고 블레셋 사람들은 요구한다.

 

 결국 하나님의 궤는 벳세메스에서 기랏여하림으로 옮겨진다. 그 이야기가 나오는 사무엘기상 6장을 보자.

1 주님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 머무른 지 일곱 달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제자리에 돌려보내야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3 그들이 대답하였다. "이스라엘 신의 궤를 돌려보낼 때, 그냥 보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 신에게 속건제물(성물이나 소유권에 대한 범죄 시 보상해야 하고 제사장이 대신하는 제사 제물, 여기서는 하나님의 궤를 가져온 잘못에 대한 제사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병도 나을 것이고, 그 신이 왜 여러분에게서 형벌을 거두지 않았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4 사람들이 다시 "그 신에게 무슨 속건제물을 바쳐야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블레셋 통치자들의 수대로, 금으로 만든 악성 종양 모양 다섯 개와 금으로 만든 쥐의 모양 다섯 개(보상 차원의 제물)를 바쳐야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통치자들이 모두 똑같이 재앙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성 종양 모양과 이 땅을 해치는 쥐의 모양을 만들어서 바치고, 이스라엘의 신에게 예를 차리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혹시 여러분과 여러분의 신과 여러분의 땅을 내리치시던 손을 거두실지도 모릅니다.
6 왜 여러분은 이집트 백성과 이집트의 왕 바로처럼 고집을 부리려고 합니까? 이집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가게 한 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온갖 재앙을 내리신 뒤가 아니었습니까?
7 그러므로 이제 새로 수레를 하나 만들고, 아직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는 어미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그 수레에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서 집으로 돌려보내십시오.
8 그런 다음에, 주님의 궤를 가져다가 그 수레에 싣고, 여러분이 궤를 가져 온 허물을 벗으려면, 속건제물로 보내는,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작은 상자에 모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 소 두 마리가 가고 싶은 대로 수레를 끌고 가도록 하십시오.

 

9 두고 보다가, 그 소가 그 궤가 본래 있던 지역인 벳세메스로 올라가면, 이렇게 큰 재앙은 그분이 직접 우리에게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소가 다른 곳으로 가면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연히 그런 재앙을 당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0 그래서 사람들은, 시키는 대로 새끼에게 젖을 빨리는 암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우리에 가두었다.
11 수레에는 주님의 궤를 싣고, 금 쥐와 그들의 악성 종양 모양을 본떠서 만든 물건들도 상자에 담아 실었다.
12 그 암소들은 벳세메스 쪽으로 가는 길로 곧장 걸어갔다. 그 소들은 큰길에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벗어나지 않고, 울음소리를 내면서 똑바로 길만 따라서 갔고, 그 뒤로 블레셋 통치자들이 벳세메스의 경계까지 따라서 갔다.
13 그 때에 벳세메스 사람들은 들에서 밀을 베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궤를 보고는 기뻐하였다.
14 수레는 벳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와서 멈추었는데, 그 곳에는 큰 바위가 있었다. 그들은 나무 수레를 쪼개어 장작으로 삼고, 그 소들을 번제물로 살라서 주님께 바쳤다.
15 레위 사람들이 수레에서 주님의 궤와 그 곁에 있는, 금으로 만든 물건들이 든 상자를 내려다가, 그 큰 바위 위에 올려 놓았다. 그 날 벳세메스 사람들은 주님께 번제물을 바치고, 다른 제물도 바쳤다.
16 블레셋의 다섯 통치자들도 이것을 다 보고 나서, 그 날로 에그론으로 돌아갔다.
17 블레셋 사람들이 주님께 속건제물로 바친 악성 종양 모양의 금덩이들은, 아스돗 몫으로 하나, 가사 몫으로 하나, 아스글론 몫으로 하나, 가드 몫으로 하나, 에그론 몫으로 하나였다.
18 금 쥐도 바쳤는데, 그 수는 요새화된 성읍과 성곽이 없는 마을 곧 다섯 통치자가 다스리던 블레셋의 모든 성읍의 수와 같았다. 사람들이 주님의 궤를 올려 놓았던 그 큰 바위, 곧 벳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있던 그 큰 바위는, 오늘날까지도 거기에 그대로 있다.

기럇여아림으로 간 법궤
19 그 때에 벳세메스 사람들이 주님의 궤 속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백성 가운데서 오만 칠십 명이나 쳐서 죽이셨다. 주님께서 그 백성을 그렇게 크게 치셨기 때문에, 그들은 슬피 울었다.
20 벳세메스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렇게 거룩하신 주 하나님을 누가 감히 모실 수 있겠는가? 이 궤를 어디로 보내어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할까?"
21 그들은 기럇여아림 주민들에게 전령들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이 주님의 궤를 돌려보냈으니, 내려와서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지극히 원시적인 행위들이 묘사되었다. 하나님의 궤가 전쟁터에서 본래 자리로 옮겨지는 이야기, 암소 두 마리에 의해 점을 보는 행위(6장 9절), 금쥐와 금으로 만든 악성종양 모양 5개가 든 상자 등등

 

 인간은 극적 순간에 기도한다. 하나님을 찾는다. 왜 그럴까?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인생 너머에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변수들을 인간은 파악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또한 안다. 

 그렇다면 그 행위의 실효성은 있는가? 또는 그러한 구조가 존재하는가? 궁극적으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한시대 이전부터 오늘날 개명되어 과학화를 이룬 현대 사회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주술과 무속을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해왔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쫓는다. 신비한 것이다. 샤머니즘 애니미즘 오컬트 풍수지리 등이 존재하는 이유다. 

 

 로또 복권을 사서 당첨되기를 바라며 추첨 날 기도하면 응답될 확률이 50%다.

조건에 맞지 않아 당첨되지 않을 가능성도 50%다. 계속 사면 합리적으로는 50%씩 이익이나 손해를 본다. 그러니까 로또는 운이다. 기도하든 하지 않든 50%다.

 그런데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영향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쉽게 말하여 하나님이 개입한다면 당첨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까지 주술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다. 주술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과학적이지만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신앙이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종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사라질 수 없다. 사라지는 것은 비과학이다.

 

 모든 것이 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다. 답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답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에 불과한 것을 주술이라는 사기를 쓰는 가짜 주술이 행해지지만, 원시로부터 사람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길을 경험한 사람들은 신적 영역이 인간 세상에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기도와 그 응답이 존재해 온 것이다. 인간 한계 경계를 돌파하는 초월적인 연결을 믿어왔고 그것은 열려 있다고 본 것이다.  기도하면 응답받는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믿음 안에 살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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