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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30 나와 다른 사람과 하나님을 위해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본문
20220130
나와 다른 사람과 하나님을 위해
고린도전서 10장 31절
1. 1월 1일 새로운 해가 한 달 지났는데, 우리는 음력 1월 1일 새해 설을 지낸다. 50년 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음력을 사용하던 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20년 전 2000년대부터는 음력 사용하는 사람이 극소수고,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음력설 인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양력 사용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 설날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라고 인사한다. 한마디로 음력 설은 낡을 옷이다. 그럼에도 음력을 고집할 수는 있다. 형식은 정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굳이 양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음력설이든 양력설이든 하고자 하는 대로 정하여 쇠면 된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양력만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에 의하여 유교 전통이 부정되어 갈등해왔다. 현재는 기일로 지키는 문화가 보편화되고 있다. 우리 세대 이후는 기일조차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든 갈등하지 않고 원만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종교를 떠나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지내면서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돌아보는 것은 제사와 기일에 대한 취지를 살리는 인식이다. 조금 형식을 갖추자면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하여 생일 축하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
2. 왜 사는가? 하고 물으면 답하기가 곤란하다. 먹고살기 위해 산다? 돈 벌려고? 즐기려고? 사랑하기 위해? 꿈을 위해? 행복하기 위해?(아리스토텔레스) 등을 말한다. 불교 법륜스님은 인생 왜 사는지 아무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불교에서는 윤회의 고통에서 해탈에 이르기 위해 산다고 한다. 헤겔은 절대정신(이성(신?))을 위해 산다고 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이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산다고 했다. 과학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산다고 본다. 유명한 도킨스는 유전자 전달을 위해 산다고 했다.
그러나 초등 동창 책, "예순, 내 인생 나도 잘 몰라"라는 수필집 제목처럼 인생 왜 사는지 잘 모른다. 다만 인생은 근본 취지와 의미를 새겨 사는 것은 중요하다.
은퇴 후를 위해 공인중개사, 손해평가사 자격증을 취득한, 2월 말에 학교 선생님을 은퇴하는, 친구 처는 현재는 교회를 안 다닌다. 타로 심리상담 자격증도 따 인생을 상담하겠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인생 잘 모르고 헤매는 것 같다. 타로는 48장의 화투처럼, 78장의 카드 그림으로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 것으로, 세상에 있는 것들 특성을 조합하여 해석하는 주역이나 역경, 곧 역리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변수가 많은 세상살이를 몇 개의 변수로 한정시켜 확장 해석하는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믿고 산다 해도 무방하다. 각자 믿는 대로 사는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3.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라고 했다. 고린도후서 5장 9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기독교 교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 목적이라고 말한다. 한편 기독교는 영생하기 위해 산다고 하거나 구원받기 위해 산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부모로부터 세상에 살게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신으로 인해 사는 것이다. 그러한 나를 위해 사는 것이다. 기독교 주장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다. 나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다.
바울은 우상에 관한 경계 하면서 고린도전서 10장 23절에서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덕을 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추구하여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0장 19-33절
19 그러니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입니까? 우상은 무엇이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무엇입니까?
20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방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귀신과 친교를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습니다.
21 여러분은, 주님의 잔을 마시고, 아울러 귀신들의 잔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고, 아울러 귀신들의 식탁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22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더 힘이 세다는 말입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23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24 아무도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추구하십시오.
25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한다고 하여 그 출처를 묻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먹으십시오.
26 '땅과 거기에 가득 찬 것들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27 불신자들 가운데서 누가 여러분을 초대하여, 거기에 가고 싶으면, 여러분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나, 양심을 위한다고 하여 묻지 말고, 드십시오.
28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이것은 제사에 올린 음식입니다" 하고 여러분에게 말해 주거든, 그렇게 알려 준 사람과 그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마십시오.
29 내가 여기에서 양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 양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의 비판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30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면, 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비방을 받을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32 여러분은 유대 사람에게도, 그리스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교회에도, 걸림돌이 되지 마십시오.
33 나도 모든 일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내가 내 이로움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추구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21절에서 바울은 우리는 비록 육신을 입고 살지만 하늘의 소망을 품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과 화해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삶이라는 말이다.
1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압니다.
2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이 장막집에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3 우리가 이 장막을 벗을지라도, 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4 우리는 이 장막에서 살면서, 무거운 짐에 눌려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장막을 벗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5 이런 일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고, 그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몸을 입고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압니다.
7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8 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9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0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
화해의 직분
11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두려운 분이심을 알기에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환히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의 양심에도 우리가 환히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12 그렇다고 해서 또 다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여러분에게 치켜세우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를 자랑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러분에게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에는 자랑할 것이 없으면서도 겉으로만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대답할 말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미쳤다고 하면 하나님께 미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다고 하면 여러분을 두고 온전한 것입니다.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우리가 확신하기로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셈입니다.
15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이제부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여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도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분에게 우리 대신으로 죄를 씌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4. 우리가 사는 것은, 설 명절을 지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하고 결국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대통령 후보 슬로건은 의미가 있다. 나를 중심에 놓고 내게 유익한 투표를 하라는 것이다. 그를 찍으면 우리 자신을 위한 투표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인데 사실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고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며 나라를 살리는 것이다는 말이다. 그것이 그 후보에게 좋은 것이다.
이번 설에도 하나님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즐겁게 지내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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