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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5 #하나님과 더불어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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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5 #하나님과 더불어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

필명 이일기 2022. 12. 2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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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5

하나님과 더불어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

 요즘 눈이 많이 내리고 찬바람에 춥지만 수년만에 겨울다운 날씨다. 오히려 맑은 공기로 인해 쾌적하다. 옷 따뜻하게 입고 움츠리지 말고 활동하며 건강에 유의하자.

 

 2022년 전 성탄절에 이 세상에 태어났던 예수님은 그냥 살다 죽지 않았다.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었다. 우리가 다 알기 때문에 초보적인 지식이지만, 다시 이해해본다는 차원에서, 예수님은 왜 이 세상에 살았는지 말씀 나눈다.

 먼저 사람은 어떻게 왜 사는지? 생각해 본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왜 세상에 태어나 살고 죽는가? 부모로부터 태어나 먹고살기 위해?,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일하기 위해?, 자식 낳고 키우기 위해? 사는가? 맞는 말이기는 하다.

 우리는 부의 정자와 모의 난자가 결합한 수정난으로 모의 자궁에 착상되어 270일(9개월) 정도 기간에 체세포 분열과 기관 형성이 되면서 태아가 되어 성장하다가 어머니 근력 밀어 냄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다(γεννάω 겐나오 낳다에서 나온 ἐγέννησεν에겐네센 낳았다.)

 요즘 남자들 정자 수가 엄청나게 감소하여 약 4,000만 개 정도라고 한다. 그러면 최소 4000만 분의 일 확률에다, 수많은 자궁 내 변수들을 이겨내고 아이는 태어난다. 태어났다는 말을 실존주의자들은 세상에 내 던져진 것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피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의지에 따라 태어났다고 할 수 없다. 생물학은 자연에서 우연히 발생 진화되었다고 한다. 그 처음 시작은 빅뱅 자연이라 해도, 또는 빅뱅 자연을 포괄한 신에 의해서라 해도 무방하다. 사람은 자연 또는 신에 의해 부모에게서 낳아져 세상에 살고 있다. 

 자연 또는 신에 의해 부모로부터 낳은 유전자를 지닌 몸은 선험 인식능력을 가지고 세상 자연 환경의 대상들을 감각 경험하며 그 범위를 확장하여 누적하기도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그 경험된 생각으로 산다. 각기 다 다르다.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거쳐 죽게 된다. 성인이 되면 일을 하며 산다. 그러니까 성인이 되기 전에는 성인이 되기 위해 배워야 하고, 노년에는 은퇴하고 산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배워 일하고 은퇴하여 산다. 

 개별적으로 보면 다 각기 다른 삶을 산다.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그냥 산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각자가 자기 인생이 있고 뭔가를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떻게 왜 살았나?

 예수님에 대해 알수 있는 세상 자료들이 조금은 있지만, 예수님 자신과 사도들과 제자들이 증언한 복음서들과 바울서신 등 신약성경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죽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히브리어 메시아 מׇשִׁיחַ 를 고대 그리스어 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로 번역한 구세주 구원자라는 말이다. 한편 예수님은 구원과 같은 의미와 목적이나 다른 표현인, 현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살도록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죽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냥 살다가 죽은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 같은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도록 자신의 생을 바친 것이다. 인간을 사랑한 것이다. 제가 사용하는 말로 하나님과 더불어 살도록 한 삶을 살았다.

 

 써진 순서로 신약성경 각권 구절들을 찾아보자. 

 바울은 5,60년대 각 선교지에서 믿는 사람들이나 공동체 교회들에 편지를 썼다. 복음서들이 써지기 2,30년 전, 예수님 사후 2,30년 후, 빠르면 15년 후부터 시리아, 투르키예(터키), 그리스, 로마 등지에서 예수님을 증언하고 다니며 각 곳에 편지를 쓴 것이다. 그것들이 바울서신이다.

 한 예로, 바울은 그리스(당시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지역 유대교 회당에서 예수님에 대해 증언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대로 디모데만 남겨두고 그리스 베뢰아로 도피했다. 데살로니가에 오기 전 있었던 빌립보 공동체의 재정적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곳 베뢰아에서도 유대인들의 반대 때문에 그리스 아테네로 이동하여 거기서 디모데를 만났다. 다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다가 후에 그리스 고린도에서 만나 데살로니가 상황을 듣고 데살로니가 공동체에 편지를 썼다. 데살로니가전서다. 예수님 사후 20여년 후 51년 경이다.데살로니가전서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리스도 구세주 구원자로 세상에 사셨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신 것이다. 물론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님 재림에 관한 서로 다른 이해를 하는, 문제가 있었던, 갓 세워진 공동체였다. 그곳에 재림에 관하여 바른 이해를 하도록 보낸 데살로니가전서 내용 중,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하심에 이르도록 정하여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여 놓으셨습니다."라 한 것으로 보면, 바울은 예수님이 사람들이 구원 얻도록 이 세상에 살았다고 썼던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메시아) 구세주 구원자라는 것이다. 

 

 57년경 고린도에서 바울이 로마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 로마서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으로 의롭게 된다고, 그리스도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했다.

로마서 3장 24절,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로마서 5장 21절,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AD 57년경 고린토에서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로마서 사본 일부

 대략 63년경 써진 에베소서에서 예수님의 피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워졌다고 함으로써 예수님은 구세주 구원자로 살았다고 했다.

에베소서 2장 13절,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수도였던 로마에서 (50년대 말경 - 60년대 말경부터) 70년경 베드로의 제자이자 바울의 협력자였던 요한 마가는 로마에 살던 로마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서 중 가장 먼저 마가복음서를 썼다. 예수님은 문제 있는 사람들을 고쳐주는 구세주로 살았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서 1장 34절, 그는 온갖 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다. 예수께서는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서 2장 17절,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80년경 사도 세리 마태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마태복음서를 썼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신 구세주 구원자로 세상에 사셨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서 1장 21절,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마태복음서 4장 23절,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서 모든 질병과 아픔을 고쳐 주셨다.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출생하고, 그리스인 의사이자, 84세에 그리스의 코린토스 만 동북쪽에 있는 보에오티아에서 죽은, 베드로의 제자이자 바울의 동역자 누가는 그리스 아가야의 아테네에서 80년경 누가복음서를 썼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구세주로 살았다는 것이다.

누가복음서 7장 2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가서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누가복음 후에 써진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서와 같은 저자인 누가가 사도들의 선교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이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로 하나님 나라 삶을 살도록 세상에 살았다고 했다.

사도행전 1장 1-3절, "데오빌로님, 나는 첫 번째 책에서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다루었습니다. 거기에 나는,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때로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지시를 내리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하신, 모든 일을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36절,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투르키예(터키) 에베소에서 90년경 세베대의 아들 사도 요한이 쓴 요한복음서는 예수가 메시아 그리스도로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세상에 살았다고 했다.

요한복음서 4장 25-26절, 여자가 예수께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

요한복음서 20장 31절,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의 저자들이 90년경 또는 110년경 썼다고 여겨지는 요한서신은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세상에 사셨다고 했다.

요한1서 1장 7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요한1서 4장 15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바울 사후 한 세대가 지난 후 바울의 제자에 의해 써졌을 디모데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고 구세주로 세상에 사셨다고 했다. 

디모데전서 1장 15-16절,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바나바, 아볼로, 빌립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등이 저자로 추측되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히브리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세상에 사셨다고 했다.

히브리서 10장 10절,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정리하면 예수님은 사람들을 (대속 고침)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살게 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 죽었다고 신약성경은 써있다. 

 

 태어나서 배우고 일하다가 은퇴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사람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살게 하려고 이 세상에 살았다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할 수 있다. 아니, 일하며 먹고살다가 죽으면 그뿐이지 무슨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고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와 같은 입장이었던 바울을 이해하면 된다.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존재고,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야 할, 제 표현대로라면,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 바울의 판단이었다. 바울은 그런 생각을 했을까? 바울은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다 예수님을 환상 가운데 만나 완전히 바뀐 인생을 살았다. 예수님께 헌신하며 살았다. 왜 그랬을까? 바울은 유대인이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야훼를 하나님으로 섬기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선조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반역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해 고난 가운데 살았다. 그 원인이 하나님을 배신한 반역한 선조들의 죄, 그 근본 뿌리 시작에 아담의 원죄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죄에서 사함 받아야 했다. 용서를 받아야 했다. 바울 자신이 그런 원죄가 있던, 그리고 자범죄가 있던 죄인 중의 괴수였다고 깨달았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와서 사람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고 부활하여 자신에게 환상 가운데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바울 자신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신 의미와 목적에 따라 구원받아야 할,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살아야 할,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인식 가운데 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고 구원받으라고, 하나님 나라에 살라고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생긴 것이 기독교다. 그 증언이 바울 서신이다. 그것을 베드로와 바울의 제자들이 듣고 예수를 사람들에게 안내한 것이 복음서다. 

 

 세상에 태어나 배우고 일하며 먹고살다 은퇴하고 죽으면 그만인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사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처럼, 그 제자들처럼, 복음서 저자들처럼 인간은 원죄, 한계, 부족함, 불완전함이 있는 존재로, 스스로 온전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온전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수긍하고 인식하여 받아들이면 예수님과 상관이 있게 된다. 믿으면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인생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른 선택이다.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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