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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8. 8 주일낮예배 본문

설교

1999. 8. 8 주일낮예배

필명 이일기 2018. 11. 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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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8. 8 주일낮예배

제목 : 가난과 부요

성경 : 고린도후서 81-15

주제 : 하나님 나라 - 예수님의 오신 목적 - 이해가 아닌 사랑하는 세상 - 욕심이 아니고 나눔

<도입 및 서론>

수재민 돕기 700 전화 한 통화(1,000) - 수 십억이 되었고 참여자가 수백만이 된다.

나눔은 사랑에 근거한다. 은혜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세상을 원하신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바로 이러한 세상을 위해 곧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 가난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한다.

<예화>

독일에 관련된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베를린이 분단되어 동독은 공산치하에, 서독은 자유진영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일단의 동베를린 사람들이 한 트럭의 쓰레기 더미를 서베를린 진영으로 쏟아 부었다. 서베를린 사람들은 쓰레기를 주워 모아 트럭에 실어 다시 동쪽으로 내버릴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기로 정했다. 오히려 덤프트럭 한 대에 통조림과 또 쉽게 부패하지 않을 식량을 채워 동독으로 가서 그것을 산뜻하게 쌓은 후 그 옆에 표시판을 하나 세웠다. “사람은 각자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준다.”이것은 정말 멋진 설교가 아닌가! 당신은 내면적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 때만 다른 사람들에게 열매를 나누어줄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나눔이 가능하고 복을 받는 것이다.

나눔과 사랑의 삶을 위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자.

<본문>

1. 본문말씀

본문은 모금과 구제에 관한 말씀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기쁨 슬픔, 아픔 모두를 같이 느끼고 나누어야할 것으로 믿고 가르쳤다. 이러한 바울은 자신에게 반대했던 사람들에 대한 사도적 권위를 세우면서(고린도 후서의

배경), 진정한 교회관을 갖고 예루살렘 교회의 기근에 처한 궁핍한 신자들을 위한 마케도니아 교회(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 등)와 교우들의 너그러운 모금과 구제와 같이 그것을 본받아 고린도 교회도 그런 모범적인 모금에 동참하도록 말씀한다. 실상 마케도니아 교회들은 로마의 통치 속에서 어려움 가운데 있었다.(, , 철 등의 많은 광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로마의 수탈로 극심한 곤란을 겪고 있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선동 고통을 주고 박해를 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신자들은 구원받은 기쁨 때문에 넘치는 모금에 동참한 것이다. 마음으로 모금에 동참한 것이었다. 생활과 비축을 무시하고 행한 모금에 동참한 것이었다. 구제에 참여한 것은 사실은 은총으로 생각한 것으로 성령의 감화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이었고, 사도 바울에 헌신하는 심정에서였다.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즉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고, 청지기임을 자각한 마케도니아 그리스도인은 이웃과 사귀고 사회에 봉사함으로써 세상 사람과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믿음 없는 선행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11:6) 예수그리스도는 부요한 분이었지만 남을 부요케 하려고 자기가 가난해지셨다. 공평을 깨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상부상조하자는 것이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지내던 이스라엘은 많이 거두어 남지도 않았고 적게 거두었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물질은 남겨 놓으면 썩는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자랑한 그 자랑을 무색하지 않도록 사랑을 보여주며 구제사업에 힘껏 동참해 달라고 부탁했다.

2. 700 전화 수재민 돕기는 깊이 관찰하면 돕는 마음에서 행하는 것이기는 해도 사실은 모금 방법 연구에 의한 사람들의 지혜이다. 실은 그 금액은 독지가들, 돈 많은 기업인 몇 사람이 내놓는 정도의 금액이다. 정성은 좋지만 금액으로 말하면 큰 것은 아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금한 금액이 몇몇 독지가들의 기부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편으로 보면 그것으로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것을 의식을 갖는다. 선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고 어려움에도 마음을 다하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 돈 벌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믿음으로 사랑하며 살아라고 하는 말씀이다. 많은 돈을 어거지로 모금토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이 있는,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 신자들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삶은 하나님은 기쁘게 생각하신다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인데 욕심으로 돈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자기 것으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한정적인 돈과 재물 속에서 가난한 사람을 양산하는 세상이 아니라 그 한정적인 재물을 나누는 사랑하는 삶을 살면 기쁘고 은혜 가운데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천국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3. 은혜를 알고 믿음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마음으로 믿음으로 구제하게 되어있다.

예수님은 욕심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가 아닌 사랑의 사회의 건설(천국건설)하시고자 하셨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욕심 많은 사람들(돈을 쫓는 세상 사람들)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생긴다고도 볼 수 있다. 낙원은 욕심이 불필요하고 가난이 없었던 세상이었다.

4. 예화

1) 민민 자율거주 쉼터의 박상아라는 사람의 이중성과 수많은 불만 그리고 나눔과 사랑에 대한 요구

2)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 글에서 누가복음 6:38

한 천사가 있었는데 이 천사는 여러 차례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 내려가서 그들을 지옥에서놓아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갖다놓을 만한 선행을 하나라도 기억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선한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부인이 "거지에게 양파를 하나 준 적이 있어요. 이건 좋은 일이 아니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선한 일이고 말고요." 천사가 하늘나라의 문서 보관소에 올라가서 부인에 관한 서류를 찾아보니 과연 양파에 관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 천사는 양파를 하나 갖고 지옥에 있는 부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이걸 손으로 붙잡으세요. 그러면 나는 이쪽 끝을 붙잡을 테니 같이 천국으로 날아올라 갑시다." 양파가 두 사람의 몸무게를 잘 지탱해 주어 부인은 천사와 같이 날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지옥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보자 부인의 옷과 팔과 다리를 붙잡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인에게 매달린 사람들의 발을 붙잡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인에게 달라붙어 하늘나라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래를 본 부인은 많은 사람들 때문에 양파의 껍질이 벗겨져 자기가 떨어질까 봐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팔꿈치로 다른 사람들을 밀면서 말했습니다. "당신들같이 선한 일을 하나도 한 적이 없는 죄인들은 지옥에 남아 있어야 해요." 그 순간 양파 껍질이 뚝 끊어졌습니다.

<결론>

믿음으로 구원받아 살고, 사랑으로 나누며 사는 하나님의 은혜는 기쁘기 한량없는 삶을 살게 한다. 나눔의 헌신을 하는 삶을 살자. 적으면 어떠냐! 가난하면 어떠냐! 부자면 어떠냐! 믿음으로 나누며 은혜 가운데 낙원의, 사랑의 삶을 사는 여러분, 그래서 가난하지만 부요한 여러분, 하나님의 복을 받는 여러분, 천국의 맛을 보시고 체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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