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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7. 25 주일낮예배 본문
1999. 7. 25 주일낮예배
제목 : 진리와 자유
성경 : 요한복음 8 : 29 - 32
주제 : 참 진리를 알아 자유한 삶을 살고 기쁜 삶을 살자
본문말씀 해석-전, 후와 더불어 간음한 여인에 대한 행동 유대인과의 대결
진리가 무엇인가-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아브라함의 자손은 모두가 죄인이다.-진리가 없기 때문에 범죄한다.
참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고 순교를 각오합니다.
참 진리는 지식과 구별됩니다.
참 진리를 알아 자유한 삶을 살고 기쁜 삶을 살자
<예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빛낸 위인의 한 사람이요, 새로운 근대적 세계관의 진리를 위하여 순교한 철학
자 조르다노 브루노는 1548년에 나폴리주의 놀라라는 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부하면서
당시의 인문주의자와 자연철학자들의 학설 및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알게 되어 큰 감명을 받았다.
그후로 그는 줄기차게 지동설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에 지구는 세계의 중심으로서 지구를 중심으
로 태양이 돌고 있다는 천동설만을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지동설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리고 지동설
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은 모두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래서 결국 갈릴레이도 로마의 종교 재판소에
서 다시는 지동설을 유포시키지 않겠노라고 서약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움직
이고 있는 걸”이라고 중얼거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조르다노 브루노는 7년 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파문당하고 1600년 2월 17일 화형에 처해졌다.
처형되기 8일 전 그는 그의 주장을 철회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믿음을 끝내 굽히지 않
고 꿋꿋이 죽음의 자리에 나아갔다. 갈릴레이와 브루노를 비교해보면, 지식과 믿음의 차이를 볼 수 있
다. 지식은 언제든지 가변적이고 혹 위기가 닥쳐오면 언제든지 “모른다”, “아니다”라고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은 다르다. 언제나 불변하며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지키는 게 믿음이다. “알고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결코 역사를 주도할 수 없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믿고 그 믿음을 죽기까지
지키는 자만이 세계 역사를 주도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지식인은 너무 많이 배출되는데 믿음을 가
진 이는 너무 드물게 보인다. 믿음의 사람이 되자, 이 역사의 주인이 되자.
<주석>
⭕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 이 때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반대함에 있어서 매우 강퍅하였다(22,25).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역사(役事)에 있어서 고독을 느끼지 않으시고 위축하지도 않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온 세계보다 강하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항상" 행하실 수 있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뿐이시다. 우리 일반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어서 그 안에 있으므로만, 하나님의 함께 하여 주시는 혜
택을 누릴 수 있다.
⭕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 이 귀절이 말하는대로 "많은 사람이 믿더라"는 문구
가, 일시적 신자를 가리키지 않고 참 신자들을 의미했다면 문제가 생긴다. 곧, 그들이 왜 잠시 후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반항하였을까 하는 문제이다. 31-59절 참조.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된다. 곧, 33절
이하에 나타난대로 예수님을 항거한 사람들은, 30절의 "많은 사람" 가운데 포함되었던 일부 불순 분자들
일 것이다.
⭕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 "자기를 믿은"이란 말은, 아직 구원받는데 이를 수 없는 자들이다. 이 사실은, 여기 나타난대로
그들이 예수님과의 변론에 있어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언행을 취한 것을 보아서도 알려진다.
40,48,52,59 절 참조. "내 말에 거하면" 이란 말은 계속적으로 신앙함을 가리킨다.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진리"란 말 (*)은 "그 진리"란 뜻이니, 그 유
일하신 진리를 가리킨다(14:6). 이것은, 철학적인 추상적 진리, 곧, 개념적인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예수
님 자신을 둘러싸고 계시(啓示)된 그의 말씀인 동시에, 예수님 자신으로 구체화 된 계시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36절 에서 밝혀 준 것과 같이, 하나님 아들(예수님 자신)이 그 속죄의 죽으심에 의하여 신자들
을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귀절에 있어서 왜 예수님 자신을 "진리"라고 하였는
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생각된다. 예수님을 찾아 만난 결과가 진리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진리
와 예수님을 동일체라고도 할 만하다(14:6). 예수님의 모든 언행은 진리이며, 그의 보내신 성령의 하시는
모든 기적적인 역사도 진리이다. 참된 기적은 진리를 지니고 있다. 진리 없는 기적이나 역사(役事)는 성
령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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