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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30 제목 : 대중과 분위기 성경 : 갈라디아서 3장 23-29절 주제 : 전도 본문
20020630
제목 : 대중과 분위기
성경 : 갈라디아서 3장 23-29절
주제 : 전도
구조 :
서) 사람은 분위기에 따라 산다(월드컵 응원, 자녀 양육)
본) 환경(분위기)과 주체성<침팬치 인간, 월드컵 관전, 자녀 교육><본문 말씀(율법과 복음)과 신자의 주체성>
결) 전도하는 삶
문장 서술 :
서론) 지난주에 진리를 알면 그 진리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 나누었습니다. 특별히 진실되고 솔직하게 나의 믿음을 드러내고 살자고 했습니다. 신자로써 드러내는 삶이란 전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리인 복음을 소유한 사람은 당연히 솔직하게, 당당하게 전도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대중과 분위기란 제목으로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대중 하니까 우리 현 대통령을 생각하게 되지만 대중은 일반 다수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분위기에 따라 좌우되는 사람들을 말함입니다. 우리 모두는 대중들이지요. 대중은 일반적으로 분위기에 따라 삽니다. 요즈음 월드컵 축구 경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응원에 열심이었습니다. 심지어 월드컵 이전에는 축구에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모두가 축구광처럼 응원에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은 전에는 가장 재미없는 것이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였고 축구이야기여서, 우스개 소리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정말 짜증나고 지루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축구에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열광했다고 말합니다. 분위기 때문이었겠지요. 분위기에 따라 관심 없고 재미를 못 느낀 축구를 여성들이 열광합니다.
분위기에 따라 사는 또 다른 우리 사회의 모습이 있습니다. 아이들 교육하는 문제인데요. 젊은 엄마들(여성들), 어린아이에게 영어다, 음악이다, 체육이다, 미술이다, 학습지다, 학원이다 등등 오만가지 다 가르쳐 줄 양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대부분 이런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자신은 그렇게 많이 가르친 것이 아닌데 주변의 엄마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이 가르친다는 겁니다. 자신은 약과라는 것이지요. 자녀를 위하여 주변에서 하니 나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분위기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지요. 환경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지요. 사실 안 그럴 수 없을 겁니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빠질 수 없쟎아요? 다른 사람들 다 축구 응원하고 관전하는데 나만? 그러면 뒤쳐지지요. 그러니 분위기에 따라 가지 않을 수 없지요.
본론) 맞습니다. 사람은 분위기에 따라 삽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용해서 하는 광고가 성공한다는 것 아닙니까? 교회 다니는 것도 많은 사람이 다니는 교회에 가야 되고요.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분위기에 따라 살기 때문이지요. 우울한 음악을 들으면 우울해집니다. 발랄한 분위기의 음악을 들으면 발랄해 집니다. 사람은 분위기에 따라 삽니다.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인간이지요.
지난주 모 방송(차인표 진행)에서 침팬지 인간에 대하여 방영하더군요. 인간은 어떤 동물로부터 진화되었는가? 또는 인간은 침팬지와 얼마나 유사한가를 알아보는 프로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침팬지도 직립보행을 하는데, 그 침팬지가 인간의 아이를 보육하는 능력이 있겠느냐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전자가 인간과 99%같다고 하는 침팬지의 능력을 연구한 것입니다. 참고로 늑대인간 등을 말하면서 가능한 듯 한 말을 하더군요. 문제는 인간이 환경의 영향을 받느냐의 것이지요. 어머니(부모)없이 산에 버려지거나 길 잃은 어린아이가 동물들에 의하여 길러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인간을 말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길러진 동물인간의 수명이 그 동물들과 비슷하거나 얼마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인간은 환경에 의하여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13년간인가? 갇혀(어둠에) 산 정확히는 가두어 산 여자아이는 현실에 적응을 못하더라는 이야기까지 보여주는데, 결론은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말하면 사람은 분위기에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3-40년 전의 수명이 40-40정도였는데, 지금 70-80이 된 것은 환경의 영향이지요. 그러니까 여성들이 분위기에 따라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속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분위기에 따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월드컵 열풍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자녀 교육을 위하여 수많은 방법들과 전문가들의 지식들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연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찌 보면 현명한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자녀 교육만 해도 그렇습니다. 수많은 교재와 전문가들의 조언과 충고, 그 모든 것을 따라 살 수 있습니까? 옆집 엄마가 한다고 나도 그것 해야 하고, 뒷집 엄마가 뭘 가르친다고 나도 그것 할 수 있나요? 물론 다 맞고 좋은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들에겐 한계가 있습니다. 수많은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그렇고, 능력(경제적)이 그렇습니다. 분위기와 환경을 결코 무시할 수 없지요. 그러나 우리는 선택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남들 하는 것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우리 아이에 맞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선택을 수많은 것들 중에 택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이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내 자신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주체성을 찾아야하지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얼 해야하는지 택해야 합니다. 나의 특성과 역할과 능력에 맞게 선택해야 합니다. 분위기에 따라 나도 해야 한다고요? 불가능합니다. 또한 잘못입니다. 얼마 전 조기 영어교육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영어학교에 보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영어 조기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주판 배운 것과 같다는 겁니다. 나중에 쓰지 않으면 다 잊는다는 겁니다. 일개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미래는 번역기가 나와 영어 안 배워도 의사 소통이 된다는 겁니다.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겠지만 주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율법의 행위(대중, 분위기 추수자들의 가치관과 행동)에 대한 바울의 엄한 경고와 경계가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약속된 축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유업을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죄 아래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이요, 대중들을 따라 사는 삶이고, 분위기에 좌우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대한 당시 유대인들의 자부심과 대중성은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은 모두 율법의 행위로 구원(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브라함의 복에 대한 말씀을 단호하게 말합니다. 진실된 아브라함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약속이었는데 그 약속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인하여 그 순종을 의로 여김을 받아 복을 받는 약속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당시 대중들 속에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의 순종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복과 유업을 받는다고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써 분명한 입장을 말합니다. 주체성 있는 말인 것이지요. 믿음으로 복을 받고, 믿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써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주체성을 보인 것입니다. 진리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취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유대인과 대적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그랬던 것처럼 바울은 대중들의 짧은 지식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진리 안에 오히려 자신의 주체성을 갖고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했습니다. 믿음으로 복을 받고 유업을 받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주체성은 믿음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예수 그리스도의 주체성이 우리의 주체성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복은 바로 믿음입니다. 구원의 복음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환경이고 분위기입니다.
결론) 믿음, 복음의 주체성을 갖고, 나의 삶, 믿는 삶을 삽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 개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대중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작은 교회에서 나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라고 사명을 주십니까? 분위기에 급급하지 말고 남이야 어떻든 확고한 믿음으로 전도하는 삶을 삽시다. 그것이 유업입니다.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불신자 가운데 신자로, 신자 가운데 전도하는 자로 사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과 그 자녀와 후손들에게 주신 유업을 받는 길입니다. 전도함으로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함으로 신자의 주체성을 드러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함으로 복을 누리며 유업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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