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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19 제목 : 믿음으로 성경 : 히브리서 11장 1-6절(1-40절) 주제 : 믿음성장(믿음으로 증거(확신, 경험)를 받으라) 본문

설교

20030119 제목 : 믿음으로 성경 : 히브리서 11장 1-6절(1-40절) 주제 : 믿음성장(믿음으로 증거(확신, 경험)를 받으라)

필명 이일기 2018. 12. 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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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19

제목 : 믿음으로

성경 : 히브리서 111-6(1-40)

주제 : 믿음성장(믿음으로 증거(확신, 경험)를 받으라)

 

서론

올해 교회 목표를 믿음성장, 교회성장, 은혜나눔인 것을 이미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교회의 형편을 생각한 것입니다. 먼저 믿음성장에 대하여 약 4주에 걸쳐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교우들은 오랜 믿음생활을 한 분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본 교회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분이 많습니다. 이러한 형편에서도 모든 교우들이 은혜로운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한편 믿음성장을 위하여 특별한 시간을 내어 모이고 집회에 참여하고 하여야 함에도 교우들의 형편이 그렇지 못하고 아직 그러한 단계에 있지도 못해 할 수 있는 대로 주일 예배 시간을 통하여 양육적인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양육과 훈련과 체험을 통하여 성장하는 것입니다. 4주에 걸친 믿음에 관한 말씀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첫째 여러분의 주일낮예배의 성실한 참석은 인생의 어떤 것보다 귀한 것임을 깨달아 한주도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론

1. 믿음장인 11장 본문-믿음생활의 증거들

오늘 본문인 11장을 믿음장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본문에 보면 믿음으로라는 단어가 20회나 오고 믿음이란 단어까지 포함하면 23번나옵니다. 많이 나온다는 말은 그만큼 중요성을 갖는다는 말이겠지요. 물론 이 본문이 포함된 히브리서 전체에서 믿음이라는 단어가 있는 장은 6개장(4, 6, 10, 11, 12, 13)이고 총절 수는 32개절입니다. 그중 8개절(4, 6, 10, 12, 13)을 제외한 나머지 24개절이 11장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11장을 믿음장이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동기를 갖기 위하여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을 찾아 연구하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최소 16명 많게는 50명 정도인데,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그들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각 사람에 대하여 일부 또는 몇 줄로 그들의 인생을 요약하였지만 실제로 이들을 다 살피면 구약 성경을 다 읽어야 할 정도입니다. 이들 인생의 다이제스트 또는 요약이라 할 수 있는 본문을 잘 연구만해도 많은 인생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전기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가와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믿었는지 간결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미지의(실제 최종기착지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발돋움할, 번창할 토대)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나그네 되었다가 약속하신 땅에 살게되어 자신과 똑같은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살았으니 이러한 삶은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도시에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인생살이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셨다는 신앙적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본문에 뿐만 아니라 신구약 성경 전반에 기록되어있지요. 여러분도 이들과 같은 믿음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2.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인 하나님의 새예루살렘

여기서 우리가 분별해야할 것은 하나님과 더불은 인생 하나 하나만이 아니라(하나님 경험) 본 저자가 이들을 기록한 의도도 살펴 읽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믿음생활을 했지만, 증거를 받았지만 최종의 약속은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은 장차 올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들어갈 수 있는 믿음생활을 한 것은 분명하고 그것은 잘한 일이지만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 즉 하나님의 새예루살렘에는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약속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믿음생활을 한 것은 그것으로 아직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증거, 경험을 했을 따름이고, 온전한 상인,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종래의 약속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한 믿음의 사람들은 인내하고 기다리면 장차 올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미리 맛보기는 했지만 아직은 완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안을 맛볼 수 있기도 하지만 고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내하고 믿음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리하자면

믿음의 선조들이 산 것처럼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증거를 받으시고 종래에 약속에 들어가시는 소망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첫째입니다. 그 후에는 분명한 약속의 소망이 있습니다.

연구소는 열심히 연구를 하는 곳입니다. 실험소는 연구한 결과가 정말 맞는지 실험해보는 곳입니다. 여러분 먼저 연구해야 실험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우들은 연구조차 못하는 실정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을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이 산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서 실험해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험해야하지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경험과 체험을 해봐야 진짜 믿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증거입니다. 확신입니다. 복입니다. 그후에는 더 완전한 약속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 약속을 소망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지신론

이지신론은 신이 인간과 관계하지 않고 팔장끼고 있다는 존재로써의 신을 말하는 신론입니다. 신이 세상을 만들어 놓고 관계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자연의 원리로 만들어 스스로 돌아가게 해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종교는 필요 없습니다. 이 경우 인간은 자연의 원리대로 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원리를 아는 자가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론은 옳은 것 같으나 무지한 것입니다. 아이는 스스로 소변을 볼 수 있는 자연의 이치가 있으나 거기서 끝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이가 아파서 엄마 내가 움직일 수 없으니 나를 소변볼 수 있도록 화장실로 안아다 주세요 할 때 엄마는 그 아이의 말을 들어줍니다. 단지 아플 때만 입니까? 아이는 올바른 엄마를 믿고 자신의 소원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엄마는 들어주는 것입니다. 물론 건강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데도 떼를 쓰면 벌을 하기도 하지요. 분명 아이와 엄마는 신뢰관계 속에서 도움 받고 은혜를 주는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아니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놀고먹겠다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믿고 의지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분입니다. 그를 믿고 살면 그의 영향을 받고 그 은혜를 입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을 거부하면, 어머니에게 자신이 아파서 걸을 수도 없으면서 요청하지 않는 것은 불신입니다. 그런데 물론 어머니는 요청하지 않아도 안아다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안아다 줄 것을 믿고 요청하는 관계가 정상적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수많은 선조들은 이 믿음의 관계 속에서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 증거를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벨로부터 사사들 선지자들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선조들은 그 경험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거부하며 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살겠습니까? 믿음에는 증거가 있습니다. 경험으로 남습니다. 당시는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땐가는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고백이 그가 한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소망을 갖습니다. 인내하면 반드시 종래의 새예루살렘에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믿음생활의 종래의 약속입니다.

믿음생활을 어려운 것일 수 있으나 그러나 한번 경험하면 정말 쉬운 것이 믿음생활이니다. 우리는 그 증거를 받지 못하여 형식적으로 또는 당위로 또는 긴가민가하면서 남들이 믿음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아니라고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다고도 못하는 상태에서 확신없이 교회에 출석합니다. 그러니 주일이 귀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주일 빠지기도 하고 세상일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에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하여 부실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믿음의 선조들 그들은 확실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 경험이 그 증거 받음이 그들을 확신해서 믿음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믿음생활을 확실하게 증거 받으며 할 수 있을까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성경읽고 기도하며 교회생활 잘하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상의하되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 상의하기 어려우면 목사와 상의하면 됩니다. 목사는 이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성경 읽기도 어렵고 상황이 안되고 기도생활도 할 수 없으면서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여러분 목사와 상의하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의 눈을 뜨게 할 것입니다. 지금껏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 살았다고 하는 부분이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경험하는 단초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아벨로부터 오늘 우리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그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며 도와주시는 분이고 복을 주시며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증거를 얻었던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믿음의 상을 받는 하늘의 새예루살렘 도성에서 살 수 있는 종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증거를 받고 종래의 약속의 소망을 갖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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