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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4 제목 : 청지기 성경 : 누가복음 19장 1-27절 본문

설교

20040704 제목 : 청지기 성경 : 누가복음 19장 1-27절

필명 이일기 2018. 12. 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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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4

제목 : 청지기

성경 : 누가복음 191-27

 

1. 기독교의 장점은 미래의 소망(천국, 하나님 나라)을 갖고, 과거의 잘못된 생활(죄인)을 바꾸어 현실에서 충실한 삶을 살라는 데 있다. 특히 인간을 죄인으로 보며, 모든 문제가 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고,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죄인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인간의 그 죄를 대신하여 이 세상에 오셨으니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성경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진리를 담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특성이자 장점인 것이다. 결국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종교나 현실의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한다. 도를 닦는다든가 명상을 한다. 현실 도피적인 것이다. 기독교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현실을 개조하려한다.

오늘 본문도 그 같은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보여준다.

 

2. 본문말씀 이해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은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이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1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줄로 생각함이러라

12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본문 말씀의 핵심 주제는 7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에 대한 예수님의 답과 행동인 10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에 있다. 또한 11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에 대하여 예수님은 10므나에 대한 비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종말과 더불은 천국생활을 하는 날은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을 앉아 기다리기만 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현실 도피하면서 지내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 날의 소망을 갖고 오늘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진정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찾아 그 일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삭개오와 같은 이를 구원하는 일, 죄인과 함께 하는 일, 즉 병에 걸려 정상적인 인간 삶이 불가능한 귀신들린자(17:18), 벙어리,귀머거리(9:25), 소경(8:23) 등과 같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죄인들을 용서하여 공동체(정상적인 현실 생활)로 복귀시키는 일, 땅위의 평화(平和)를 위한 사랑의 치유 행위, 참으로 사람다와질 수 있도록 하는 일(구원)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10므나의 비유 배경 설정은 당시에 널리 알려진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Archelaus)가 아버지의 왕권을 물려받기 위해 로마로 떠났던 이야기와 비슷하다. 즉 헤롯 대왕은 죽기에 앞서 자신의 왕국을 세 아들인 안티파스, 빌립, 아켈라오에게 분할해 주었는데 이러한 일은 로마 정부의 공식적 승인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유대 지방을 분할받은 아켈라오는 로마 황제의 인준(認准)을 받기 위해 로마로 떠났다. 한편 유대인들은 아켈라오를 매우 혐오했던 터라 사절단을 구성하여 로마로 보내었으나 아켈라오의 왕위 취득을 저지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현실의 상황을 염두하고 이를 비유하여 천국과 현실 생활,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닥쳐올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견디며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10므나에 관한 말씀은 달란트의 비유(25:14-46)와 비슷한 내용이나, 주제에 있어 차이가 있다. 달란트의 비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와 재능들을 최대한 선용해야 한다는데 강조점이 있는 반면, 10므나 비유의 강조점은 당시 무리들의 그릇된 천국관과 그릇된 메시야관을 지적하고 올바를 현실 생활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금방 도래하는 것인줄 생각했기 때문이라면, 예수는 종말적 심판의 때가 당장 일어나지 않음을 말하면서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주려 하신 것이다. 즉 비유의 내용상 예수의 죽음과 부활 후로부터 예수의 재림까지는 상당한 간격이 있음을 예시하고 있는데 따라서 예루살렘 입성은 종말적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아니라 고난과 죽음에의 길로 접어드는 것임을 암시한다.

 

정리하면 10므나 비유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 재림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적 경과가 있음 말하는 것이고 현실에서 전인적인 인간의 삶을 살도록 하는 말씀을 하는 것이다.

 

'므나'는 헬라의 동전으로서 한 달란트의 1/60이다. 한 달란트는 노동자 한 사람이 이십 년을 벌어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따라서 현 시세로 10므나를 환산해 보면 (현재 최저임금 56/, 9월부터 64/월 기준) 게산상 50만원이라하고 240배이니 12천만원 정도이다. 중산층으로 계산하면 4, 5억 정도의 금액이다.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들의 외식 행위를 비난하고 그 기득권을 위협하는 예수님을 눈의 가시와도 같은 존재로 여겼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추종했던 유대 군중들도 유대 민족을 로마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리라 기대했던 소망이 사라지게 되자 오히려 적극적으로 예수를 죽음의 자리로 내몰았다(27:20,21). 1므나로 10므나, 5므나, 1므나를 각각 보고하는데 이들과 같이 현실의 맡겨진 삶을 각기 다르게 산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없는 큰 축복임에 분명하지만, 천국 잔치에 참석하게 되는 사람 중에는 본문의 종처럼 칭찬과 상급을 받는 영예로운 자가 있는가 하면 불가운데서 구원받는 것처럼 부끄러운 처지의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고전 3:15). 청지기적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변명은 그의 나태함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인데, 이는 주인에 대한 오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주인이 준 한 므나를 주인의 것으로 알면서도 청지기직의 참된 의미를 전혀 몰랐던 사람이며 주인의 번영이 곧 자기의 성공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사람이었다. 그는 주인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익만 챙기려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장사하기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또 자신이 땀흘려 일해서 남겨 봤자 주인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에서 장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종은 얄팍한 이해타산에 눈이 어두워 더 큰 것을 놓치고 만 셈이다.

'예수를 어떤 분으로 생각하느냐' 혹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여기느냐'고 하는 문제는 인생의 결말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16:15,16). 복음을 거부하고 죄악된 옛 생활을 계속 고집하는 자 또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 있는 셈이다. 사실 새롭게 거듭나기 전의 모든 사람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요,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다(2:3).

잃어버린 자에 대한 구원이란 소외되고 비뚤어진 인간을 다시 공동체로 복귀시켜 당당하고 품위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말은 온갖 죄악과 허물로 말미암아 혼돈과 파멸에로 향하는 인간들을 구해내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로 인도하시는 것을 뜻한다.

죄인인 삭개오를 구원하시는 삶은 1므나로 10므나 또는 5므나를 남기는 삶인 것이다.

 

본문이 말하고자하는 것은 곧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뜻은 미래 종말은 있으나 현실의 어려움을 하나님이 맡겨 주신대로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3. 청지기의 삶

1) 성경말씀에 의하면 그 날은 분명히 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날에 우리의 삶에 대한 평가받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의 삶은 그 이전에도 우리의 현실의 삶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다.(예화)

2)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 맡겨진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3) 그 맡겨진 청지기 삶은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청지기의 삶이란 우리 자신들이 잘먹고 잘 사는 욕망을 위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삶이다.

죄인의 삶에서, 소외로부터 벗어나는 삶이다(죄인임을 깨닫는, 고백하는 삶, 죄에서 벗어나는 삶).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삶이다(믿음의 삶).

 

4. 행복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면서 현재의 행복을 발전시키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면서 현실을 개조시켜나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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