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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8 제목 : 천하보다 귀한 한 번뿐인 인생 성경 : 누가복음 9장 18-27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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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8 제목 : 천하보다 귀한 한 번뿐인 인생 성경 : 누가복음 9장 18-27절

필명 이일기 2018. 12. 9.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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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8

제목 : 천하보다 귀한 한 번뿐인 인생

성경 : 누가복음 918-27

 

1. 저문 한 해

젊은 사람들은 나이 더 먹기를 바라지만,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먹는 것이 즐겁지 않다. 영원히 젊음을 유지 하려고 안달을 한다. 화장품 바르고, 머리 짧게 깎고, 몸매 가꾸고, 운동 열심히 하고, 살아있으려는 것이다. 젊음을 유지하고 살아있고자 함이다. 이것이 생명 있는 자들의 소망이다. 인생은 한번 뿐인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여차하면 자살한다. 인생의 끝을 보기 때문이고, 인생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비록 빚지고 살아도 생명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인데, 돈 때문에 명예와 자존심 때문에 세상 것에 휩싸여 생명을 소멸 시킨다.

한번 뿐인 인생을 귀한 인생을 귀하게 살아야 한다. 인간은 수정이 된 순간부터 생명이다. 내 자식만 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귀한 존재들이다.

 

2. 본문 말씀 - 영생하는 생명은 천하 보다 귀한 것

18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에, 제자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누가는 항상 중요한 일이 있기 전에 기도하였다고 기록한다. [3:21] [5:16] [6:12] [9:18] [9:28,29], 또한 주님의 기도는 [11:1-13], 그리고 기도에 대한 자세에 대하여는 [18:1-14] [19:46] [20:47] [21:36] [22:32] [22:40,41] [22:44,45,46]에 기록하였다. 기도에 대하여서는 다음 기회에 더 구체적으로 말씀 나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무리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소문을 못 들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제자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한 것이다.

19 그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의 답변은 7,8절에서 헤롯이 들었던 소문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예수의 특별성은 보았으나 그가 단순히 특별한 선지자 이상의 존재 즉 메시야라는 생각은 가지지 못했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께서 재차 제자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 것은 무리의 생각이 틀렸음을 시사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수많은 이적적 권능들을 나타내 보이셨다(8:22-25,26-35, 41-56; 9:10-17). 이 모든 일들은 첫째, 그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신 것이며, 둘째,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려는 간접적인 교육의 일환이었다. 이제 예수는 제자들이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게 되었을 것이라고 보아 이런 물음을 던지신 것이다. 이 물음은 모든 신앙인 각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공개적인 신앙고백의 요청이기도 하다. 즉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는 어떤 분이며 어떻게 경험하는가하는 질문이다.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16:16)로 마가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8:29), 요한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되어 있어 표현상의 차이는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한다.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를 뜻하는 것이며 이 고백은 (1)예수의 신분을 증거 한 것으로 그가 곧 성경에 예언된바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킨 인물임을 말한다(24:17). (2)또한 이 고백은 예수의 신적 속성을 증거 한 것으로 그가 하나님의 본체이자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심을 시인한 것이다(10:30;요일4:2). 한편 마가와 누가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마태복음에는(16:17-19) 훌륭한 고백을 한 베드로에 대한 예수의 칭찬과 약속이 언급되었다.

 

죽음과 부활 예고

21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셔서,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시고,

예수께서 이렇게 메시야로서의 정체를 강력하게 숨기려 한 것은 (1)유대인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오랜 역사의 억압과 수탈을 당해 오면서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메시야를 열렬히 대망했다. 따라서 예수가 메시야시라는 소문이 퍼져나갈 경우에 그들은 예수를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자로 세우려고 들었을 것이다(6:14,15). (2)예수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메시야라는 소문이 퍼질 경우 너무나 빨리 그에게 정치적 위협이 다가올 수 있고 그럴 경우 예수의 지상 사역이 방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13:31).

22 말씀하셨다.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흗날에 살아나야 한다."

본 절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네 차례의 수난 예고 가운데 첫 번째 것으로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바로 이어서 주어졌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준다. 즉 예수는 민족적 정치적 메시야로서 유대의 주권을 회복하여 그들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주는 임무를 가지고 오신 분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는 임무를 띠고 오신 분이다.

본 절의 수난 예고는 예수에게 네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해주는데 (1)먼저 수난을 당하신다. 이 고난의 배경에는 사 53:4,11의 예언이 있다. (2)산헤드린이 예수를 거부하고 배척할 것을 말해준다. (3)죽임을 당하실 것이다. (4)죽은 후 제 삼 일에 살아나실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삶에 하나님의 권능이 개입함을 시사한다. 예수의 수난이 필연성에 의해 다가오는 것임을 밝혀준다(53; 3:16;8:32).

'장로들'은 지방의 하급 법원에서 재판관의 직무를 수행했던 사람들로 지방의 공회를 구성.

'대제사장들'1년에 한 번 속죄일에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특권과 산헤드린의 의장이 되는 권한이 있다. 본래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종신적 세습제에 의해 계승되었으나 국가의 주권을 빼앗기고 총독들에 의해 임시로 교체되는 관행이 생기면서부터 그 권위가 많이 실추되었다.

'서기관들''랍비', '율법사'등으로 불려 지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바리새인으로서 각각 공공기관 또는 사설 단체에 속하여 율법의 이론적 발전, 율법의 교수, 율법의 적용에 힘썼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나열되고 있는데 실제로 이 그룹들은 유대 최고의 권력기관인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무리들이다. 산헤드린은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모두 7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고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 기관이었다. 유대 민족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백성들을 올바른 종교적인 삶으로 인도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차단시키는 역할을 선도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은 비극적인 유대인의 역사에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23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의 길이 분명하였듯이(22) 예수를 따르는 자들도 예수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함을 말해준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를 따름에 있어서의 필요한 조건은 첫째로 자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자기 부정. 둘째로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 셋째로 일관된 신앙 훈련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자기의 삶을 고집하는 사람 즉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아의 범주 속에 파묻혀 일신상(一身上)의 부귀영화만을 위하여 타자를 생각하지 않는 자는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을 거부하는 자는 교회에 핍박과 순교의 시련이 올 때 육신의 생명은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후의 심판 때 진정한 생명을 잃게 되고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진리를 위해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기꺼이 포기할 때 예수의 참 제자라 할 수 있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세상이 제공하는 부와 명예와 쾌락을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누려본다 한들 자기의 영혼과 본성을 잃게 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온 천하를 얻기 위해 자신의 인생과 영혼의 가치를 소모한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온 천하를 잃게 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마지막에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적극적 의미에서는 복음 증거 시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을 의식(意識)하지 말라는 당부이며, 소극적 의미에서는 박해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씀을 주셨을 것이다. 즉 예수의 부활, 승천 후 교회에 핍박이 닥쳐올 때 예수께서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 무기력해 보이며 기독교인들의 삶이 실패자의 모습처럼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자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재림이 최초로 언급되고 있다. 누가는 마태나(16:27), 마가(8:38)와 달리 '자기와 천사의 영광'을 첨가하여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이라는 삼중(三重)의 영광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재림주로 오실 예수의 영광스러움을 강조한다. 영광스러운 예수의 재림은 사람들을 행위에 따라 심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16:27)에 주목하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으로써(12:2) 종말 때의 심판주로 재림하시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을 부끄러워하여 인간적인 방식대로 살았던 사람은 혹 세상을 얻었을지 몰라도 주께서 재림하실 때 수치스러운 종국을 맞게 될 것이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1:16).

27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사람들이 있다."

26절에서 예수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에 대한 심판을 확인하였다면 본 절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축복이 약속되고 있다. 본 절에서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구별된 사람들'이 보게 될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가리킨다고 본다.

 

결국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그리고 부활을 드러내 보이면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 대한 결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한 인생을 특별히 영원한 생명(영생하는 생명)을 가진 자로 살기 위한 결단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세상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의 길을 따르는, 생명을 쫓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다. 영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곤경이 있을 지라도 결단하여 예수님의 길을 따르라는 것이다.

 

3. 세상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생명

인간은 왜 만족할 줄 모르는가? 내가 세상보다 더 크기 때문에 세상 것으로 내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것이고, 세상 것으로는 만족이 없는 것이다. 내가 세상보다 크다는 말은 내가 세상보다 귀하다는 말이다. 물론 하나님은 나보다 크기 때문에 나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라는 연극이 있다.

장래가 유망한 30세의 한 청년이 박사논문을 제출해 놓고 그만 폐병이 들어서 죽어가고 있었다. 의사의 진찰결과 그는 15분후면 죽을 것이라고 진단을 했다. 시간은 흘러간다. 환자가 의사에게 몇 분 남았습니까?”하고 묻는다. 11분 남았다고 했다. 그때 우편배달부가 편지를 가지고 왔다. 억만장자인 그의 삼촌이 아무런 유족 없이 죽었으므로 와서 전 재산을 상속하라는 내용이었다. 계속 시간이 흘러간다. 환자는 또 묻는다. “몇 분 남았습니까?” , 9분 남았습니다. 두 번째 편지가 왔다.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연이어서 애인에게서 결혼을 승낙하는 편지도 도착을 했다. 평생을 노력해도 얻기 어려운 것을 다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그에게 조금도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억만장자의 재산 상속권도, 박사 학위도, 결혼 승낙서도 모두 휴지 조각처럼 무의미한 것이다. 천하를 얻고도 죽으면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생명이 귀하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4.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귀한 존재

또한 사람의 생명이 왜 천하보다 귀한가?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것은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그와의 관계가 있음을 말하고 그의 능력을 일부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하는 능력이 아니라 고도의 창조하는 능력, 판단하는 능력, 대화하는 능력 등등이다. 100년 전의 까치집은 지금하고 꼭 같다. 1000년 전의 제비의 집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생각하는 능력이 있어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고 과학을 발전시킨다. 40년 전에는 초가집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아파트에서 산다. 40년 전에는 호롱불 밑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휘황찬란한 전깃불 밑에서 산다.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이 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문화를 발전시켜 나간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자식을 귀하게 여긴다. 자기의 핏줄을 타고 나서, 자기의 모양을 닮은 자식이기 때문에 그렇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하나님의 모양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의 분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의 대리자로 삼아서 자연 만물을 다스리며 지배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사명을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귀하게 여기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귀한 존재로 우리를 여겨야 한다.

5. 세상 모든 것은 이 세상 살 때만 필요한 것.

내가 모은 물질, 내가 죽고 나면 나에게는 소용이 없다. 가족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나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다. 내가 먹지 않고 쓰지 않고 모아서 물려주는 그 재산, 때문에 자녀가 잘 살 수는 있겠으나 그래서 실제 받았으니까 부모께 은혜를 받았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손자, 그 다음 대의 후손들이 할아버지의 은혜를 기억하겠는가? 생명보험을 든다고 하지만 내 생명보험이 아니다. 사실은 가족을 위한 보험이다. 내가 가진 지식, 내가 세상을 떠나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내가 가꾼 얼굴, 운동해서 단련한 체력, 죽고 나면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데,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하는데, 죽고 나면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자식들에게 오히려 짐 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이름을 남긴들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겠는가? 좋은 수의, 좋은 관, 호화스런 묘지를 갖춘다고 하지만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내가 죽었는데 좋은 옷을 입은들, 좋은 관에 들어간들, 좋은 묘지에 묻힌들,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다 같이 썩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누웠던 묘지는 흔적도 없게 될 것이고, 먼지만 날리게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나에게 생명이 있고서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가 죽고 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예수님께서 강조하고 있지 않는가? 이 세상의 물질 소중히 여기지만 물질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우리의 생명이라고. 생명 잃어버리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씀하셨다.

 

6. 영원한 생명이 귀한 것

그런데 예수님께서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신 생명은 영혼을 포함한 말이다. 그것도 구원받은 영혼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영원하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언젠가는 없어질 때가 있다. 아무리 거대한 천하라고 할지라도 물질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영원하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피 값을 지불하고,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고서 얻은 것이 구원받은 영혼, 우리의 생명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런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우리를 구원할 수 있었다면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어 줄 만큼 가치 있는 사람들이다. 내 비록 볼품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대신 죽어 줄 만한 가치 있는 존재다,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고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다.

 

7. 귀한 생명을 세상 것들과 바꾸지 않기

영생에 비하면 세상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영생을 얻고서야 비로소 우리가 가진 것이 의미가 있지, 영생을 잃어버리고 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몇 푼어치 안 되는 물질과 신앙을 바꾸어 버리는 경우들이 많다. 하는 일이 좀 안되면, 상처를 받아서 신앙을 버리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잘 대하지 않는다고, 기분 상하게 했다고, 무시한다고 해서 신앙을 저버리는 사람이 있다. 믿는 사람이 저럴 수 있느냐고 영생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청년 때는 잘 믿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결혼하기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버리고 결혼 상대 따라가는 사람도 있다. 돈 벌려고 공부하려고 진장 때문에 한마디로 먹고 살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버려버리는 사람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건강하지 못하다고 영생을 버리지 않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올해 남은 기간도 이 영생의 생명을 어떻게 살았나 반성하고 새로운 해를 계획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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