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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5주일낮예배 제목 :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만나기 성경 : 요한복음 12장 44-50절 주제 : 믿음 안에 살자 본문

설교

20101205주일낮예배 제목 :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만나기 성경 : 요한복음 12장 44-50절 주제 : 믿음 안에 살자

필명 이일기 2018. 12. 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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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5주일낮예배

제목 :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만나기

성경 : 요한복음 1244-50

주제 : 믿음 안에 살자

 

중세 시대에 스콜라철학이 절정에 달할 떄 실재론과 유명론이라는 보편논쟁이 있었다. 세상의 보이는 것이 다 실재인가?의 문제다. 이를 테면 사람 하면 그 사람은 실재인가? 아니면 실재는 없고 이름만 있다는 말인가의 논쟁이다. 여러분이 보는 그 자체가 실재인가 아닌가? 그런 문제와 연결된다. 실재론자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이 바로 실재라고 말하고, 유명론자들은 사람이라는 말은 이름뿐이다고 한다. 실재는 없다는 말이다. 중세 후기 한 때는 유명론이 대세를 이루었으나 이후로는 결국 실재론이 받아들여지지만 아직도 논쟁거리다.

 

또 다른 이론을 말해보자.

경험론자들에 의하면 경험하여 인상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인상이 실재인가? 아니다. 사람이 실재인가 아니다는 말이다. 원이라고 하는 것이 실재인가? 그것은 어디서 왔나? 사람은 실재인가? 그것은 어디서 온 것인가?

침대를 예를 들어보자. 침대는 자연 속에 없지만 세상에 분명이 있다.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인공물이다. 그것은 사람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 침대를 어디서 디자인 하여 생긴 것인가? 사람이 디자인하였지만 그 형상은 인간에게 주어져있던 것인가? 경험론자들은 경험에 의하여 나온다고 한다. 그 경험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자연의 관찰 등으로 온 것이지만 자연이나 인간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그것은 이데아라는 인간 세상을 낳게 한 어떤 형상이 있어서 그 형상을 모사하여 나온 것이라고 했다. 원본과 사본이 있듯이 원본은 인간이나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세계로부터 온다고 말한다. 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거울에 비추어보면 그 상이 나온다. 그 거울 속의 나무, 실제 나무, 그리고 사진으로 찍은 나무, 그림으로 그린 나무가 다 같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 형체는 분명히 다르다. 그 나무라는 것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었다가 세상에 나무로 그리고 그림으로 사진으로 복사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어려우니 넘어가자. 단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본래의 형상으로부터 나온 창조된 것인데, 디자인된 것, 모사된 것, 복사된 것이라는 말만 하고 본문으로 가자.

 

본문은 이제 예수님께서 11장까지의 사역 이후 십자가와 부활로 나가는 시작을 알리는 말씀이 기록된 말씀이다.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는 7가지 표징 기록

(1) 2:1-12(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표징)<요한에만 있는 표징>

(2) 4:47-54(가버나움 귀인의 아들 소생시킨 표징)

(3) 5:1-16(베데스타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표징)<요한에만 있는 표징>

(4) 6:1-14(오천 명을 먹이신 표징)

(5) 6:15-21(물 위로 걸어오신 표징)

(6) 9:1-17(나면서부터 눈먼 자를 눈뜨게 하신 표징)<요한에만 있는 표징>

(7) 11:1-44(나사로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표징)<요한에만 있는 표징>

위와 같이 요한 저자는 예수의 표징을 사용하며 긴 말씀의 기록을 한다. 표징 등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표징 기록을 신격화(Aretalogy 또는 신화 Apotheosis)라고 말한다. 사실이라고 말함으로써 오는 혼란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부분의 주장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12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는 수난과 부활 등에 대한 기록이다.

요한복음은 믿는다(πιστεύω)”와 관련한 단어를 100회 이상 사용한다. 이는 요한복음 저자의 독자에 대한 결단 요구다. 생명을 얻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관련된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돌아간다.

44절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45절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49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에게 명령해주신다.

50절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여 주신대로 말할 뿐이다고 말한다.

본문 말씀의 행간 의미를 살펴보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단순한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하나님 믿는 것이다는 것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예수님이 중재자가 되신다. 인간이 직접 바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구약시대에는 그 역할을 제사장들이 했으나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형상을 하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

그래서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곧 바로 갈 수 없다. 자연, 인간, 그 어떤 세상의 것 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왜냐하면 타락해서 그렇다. 타락이라는 말은 흠이 있다는 말인데, 예를 들면 나무를 그림으로 그리면 형체가 변한다. 변한 것, 모사된 것, 복사된 것은 다 타락한 것이다. 변한 것이다는 말이다. 본래의 형상이 아니다는 말이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세상에서 살았지만 타락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와 세상에 사는 것이다. 그 인간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 밖에 없다.

본문은 그러한 뜻이 담겨있다. 예수님을 사람들이 보거나 믿거나 하면 하나님을 보거나 믿거나 한다는 말이 바로 그러한 의미다.

 

46절 그 예수님께서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께 나아갈 길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예수 믿는 길 밖에 없다는 말이다.

 

한편으로 예수님께 가는 길은 말씀, 교회, 신자 등등을 통하여 가는 것이다. 신자, 교회,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본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타락된 것이 함께 있다. 그러나 분명 신자 속에 하나님 말씀이 있다는 사실은 그것을 통하여 예수님께 나가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나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은 예수님의 빛을 받아 그 빛을 가지고 있다. 그 빛으로 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그 빛이 세상에 비춰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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