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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4주일낮예배 제목 : 하나님에 대한 관심 성경 : 출애굽기 14:19~31, 시편 114, 로마서 14:1~12, 마태복음 18:21~3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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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4주일낮예배 제목 : 하나님에 대한 관심 성경 : 출애굽기 14:19~31, 시편 114, 로마서 14:1~12, 마태복음 18:21~35

필명 이일기 2018. 12. 1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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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4주일낮예배

제목 : 하나님에 대한 관심

성경 : 출애굽기 14:19~31, 시편 114, 로마서 14:1~12, 마태복음 18:21~35

 

50이 넘으면 영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특별히 선과 악, 육과 영 가운데 선과 영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영에 관심을 갖는 다는 거는 신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고, 내세에 관심을 갖는다는 말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용어로 하면 하나님께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생애 육체적인 활동이 성숙하여 영적인 활동에 관심을 갖는, 종국에 하나님께 관심을 두게 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이제 육체적 소멸이 다가오기 때문이고, 그 육체는 점차 노쇠하여 결국에는 영혼에 우리의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요 몇 주 동안 그와 같은 나이든 사람들의 관심인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다. 물론 지혜가 있는 젊은 사람들은 미리 이러한 나이 든 시기에 일어날 하나님에 관한 관심을 갖고 대비한다.

사람이 사는 것은 결국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영향을 주고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들에 관여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과정에 대한 출애굽기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관심 갖게 되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에 대하여 살피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14:19~31

19 이스라엘 진 앞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천사가 진 뒤로 옮겨가자, 진 앞에 있던 구름기둥도 진 뒤로 옮겨가서,

20 이집트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그 구름이 이집트 사람들이 있는 쪽은 어둡게 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쪽은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밤새도록 양 쪽이 서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21 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밀었다. 주님께서 밤새도록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내시니, 바다가 말라서 바닥이 드러났다. 바닷물이 갈라지고,

22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다. 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었다.

23 뒤이어 이집트 사람들이 쫓아왔다. 바로의 말과 병거와 기병이 모두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24 새벽녘이 되어,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에서 이집트 진을 내려다 보시고, 이집트 진을 혼란 속에 빠뜨리셨다.

25 주님께서 병거의 바퀴를 벗기셔서 전진하기 어렵게 만드시니,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지 말고 되돌아가자. 그들의 주가 그들 편이 되어 우리 이집트 사람과 싸운다!' 하고 외쳤다.

26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라. 그러면 바닷물이 이집트 사람과 그 병거와 기병 쪽으로 다시 흐를 것이다."

27 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미니, 새벽녘에 바닷물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이집트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물결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바다 한가운데 빠뜨리셨다.

28 이렇게 물이 다시 돌아와서 병거와 기병을 뒤덮어 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간 바로의 모든 군대는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29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는데, 바닷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30 바로 그 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셨고,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널려 있는 이집트 사람들의 주검을 보게 되었다.

31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치신 주님의 크신 권능을 보고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과 주님의 종 모세를 믿었다.

 

출애굽 바다 갈라진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이 그의 계획에 따라 그의 약속을 자연을 통하여 지키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을 믿는다. 그 하나님 때문에 믿음생활과 교회생활을 한다.

혹자는 불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도 바다가 갈라지는 자연 현상을 통하여 나일강이 갈라진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믿을 수 있다. 불신자는 자연 현상이지 하나님의 특별히 역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은 자연의 원리를 통하였거나 특별한 하나님의 역사였거나 간에 바다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구출되었고 그것을 성경은 명백하게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까지 정착하는 모든 과정 중의 일부분인 바다가 갈라진 사건만 떼어놓고 보면 자연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이 다 자연적인 현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였다면 그 일부인 바다가 갈라진 사건도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확신할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딱 떨어져 맞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역사였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들에게도 초자연적인 역사를 행하신다.

우리 개인의 인생 역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역사하고 계신다. 인생에서 한 순간은 과연 자연의 원리에 따른 것인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따른 것인가 잘 알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태어난 것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인생을 회고하고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였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성경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인생을 배우는 것이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을 우리는 믿는다. 그 하나님을 갈망하며 비록 우리의 삶이 어렵고 회의가 들고 고난이 닥치고 불신이 있고 불만이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31절에서 이집트를 치신 주님의 크신 권능을 보고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과 주님의 종 모세를 믿었듯이 우리는 우리 개인에게도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하나님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절망하며 사는 우리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행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믿기 어렵다. 하지만 전 인생을 놓고 보면 그리고 우리 자신을 성찰하면서 면밀히 살피면 더구나 우리의 영적인 침묵가운데 있어보면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곧장 깨닫게 된다.

자연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란다

 

시편 114

1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야곱의 집안이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서 떠나올 때에,

2 유다는 주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3 바다는 그들을 보고 도망쳤고, 요단 강은 뒤로 물러났으며,

4 산들은 숫양처럼 뛰놀고 언덕들도 새끼양처럼 뛰놀았다.

5 바다야, 너는 어찌하여 도망을 쳤느냐? 요단 강아, 너는 어찌하여 뒤로 물러났느냐?

6 산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숫양처럼 뛰놀았느냐? 언덕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새끼양처럼 뛰놀았느냐?

7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어라.

8 주님은 반석을 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신다.

 

우리의 불신 가운데에도 우리가 초자연적인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는 떨 수밖에 없다.

시편 본문을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떨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인생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희망이 없을 때, 인생이 무의미할 때, 재미가 없고, 즐거움이 없을 때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드러낼 때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 믿는다.

 

로마서 14:1~12

1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비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3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들이셨습니다.

4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서 있게 할 수 있으시니,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

5 또 어떤 사람은 이 날이 저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6 어떤 날을 더 존중히 여기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요,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며,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먹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7 우리 가운데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다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0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11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입이 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49:18; 45:23(칠십인역)

12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 자기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본문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비판하지 말하고 한다. 비판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한다. 오직 진실 되게 하나님을 따라 살라고 말한다.

살아도 죽어도 믿어져도 믿어지지 않아도 우리는 다 하나님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희망이다. 우리를 살리시는 것이다. 남을 비판하기 보다 하나님께 맡겨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진실하게 거짓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하나님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진리 안에 있고 사실대로 말하고 진실하다. 하나님 앞에 떠는 사람은 진리 안에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마태복음 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믿는 사람)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마치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과 같다.

24 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 달란트 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는 빚을 갚을 돈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그 아내와 자녀들과 그 밖에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랬더니 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27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28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29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31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35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복음 본문은 비록 우리가 빚진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빚을 탕감하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탕감 받은 사람이 자신이 빌려준 돈은 악착같이 받아내 사람들의 빈축을 사고 그리고 그 사실이 탕감해준 주인에게 알려져 감옥 갔다는 말이다. 우리 말 흔히 쓰는 말로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용서받은 사람이 가져야할 태도에 대하여 응당 그 자신도 주인과 같이 용서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데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것처럼 남도 구원할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갈망하면 하나님을 따르게 되어있고 그 하나님을 따라 살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엉망인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그러한 변화가 있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을 갈망한 결과라는 것이다.

진실된 진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그 하나님의 뜻대로 변화된 삶을 사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변화되지 못한다. 그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변화하자고 말하여 변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 하나님을 만나고 갈망해야 그래서 그 하나님을 만나야 우리가 변한다.

빌립보서 212-18절 말씀을 읽고 마친다.

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13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14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달음질한 것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여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18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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