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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1주일낮예배 제목 : 모자란 인간과 넉넉한 하나님 성경 : 출애굽기 16:1~15, 시편 105:1~7, 39~45, 빌립보서 1:20~30, 마태복음 20:1~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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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1주일낮예배 제목 : 모자란 인간과 넉넉한 하나님 성경 : 출애굽기 16:1~15, 시편 105:1~7, 39~45, 빌립보서 1:20~30, 마태복음 20:1~16

필명 이일기 2018. 12. 1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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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1주일낮예배

제목 : 모자란 인간과 넉넉한 하나님

성경 : 출애굽기 16:1~15, 시편 105:1~7, 39~45, 빌립보서 1:20~30, 마태복음 20:1~16

 

한계가 있는 인간과 무한하신 하나님

요 몇 주 동안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다.

인간은 유전과 환경에 의해 주어진 능력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유전이나 환경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산다고 볼 수 있다.

그 하나님은 이 세상을 포괄하고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하나님을 신학자들은 이 세상에 내재하시고 동시에 이 세상을 초월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하나님은 한계가 없는 무한하신 분이다. 무한하신 하나님은 쓸 분량만 가지고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온갖 힘을 다할 필요가 없는 애면글면(알탕갈탕) 하지 않고 빠듯하지 않으며 여유로우시고 넉넉하신 분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항상 부족하고 모자라고 결핍되어 있으며 무능하다. 물론 인간은 하나님이 이끄시면 하나님 정도는 아니지만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무한한 능력을 소유할 수 있다.

도시가스를 대용량 저장고에서 파이프로 공급받는 가정과 LPG 가스통을 배달 시켜 사용하는 가정은 차이가 있다. 가스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차이다. 물론 대용량 저장고는 가스가 매장된 지역에서 가공하여 공급받는다. 매장된 가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가스를 다 쓰면 더 이상 공급받지 못한다.

이 세상은 한계가 있다. 끝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이다. 이 세상에 내재하시고 초월하신 하나님은 이 세상에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출애굽기 16:1~15

만나와 메추라기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던 날이다.

2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항의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

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이 날마다 나가서, 그날 그날 먹을 만큼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그들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하여 보겠다.

5 매주 엿샛날에는, 거두어들인 것으로 먹거리를 준비하다 보면, 날마다 거두던 것의 두 배가 될 것이다."

6 모세와 아론이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다. "저녁이 되면, 당신들은 이집트 땅에서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7 당신들이 우리를 보고 원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이 주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이제 아침이 되면, 당신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라고, 당신들이 우리를 보고 원망하십니까?"

8 또 모세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녁에는 당신들에게 먹을 고기를 주시고, 아침에는 배불리 먹을 빵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들이 주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당신들이 하는 원망은 우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9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오라고 일러주십시오."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할 때에,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1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너희가 저녁이 되면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너희는 나 주가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하여라."

13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친 곳을 뒤덮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진 친 곳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14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15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입니다.

 

신 광야에서 하나님을 불신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음에도 자연(메추라기와 만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자연적인 역사를 행하시는(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출애굽으로부터 한 달 보름이 지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식량 사정은 어려워진다. 수많은 사람들 집단이 배급을 받기란 엄청난 양의 문제와 비용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면 그 속에 속한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게 된다. 나아가 지도자에게 그 책임을 요구하게 되고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도 그 때는 감당이 안 된다. 인간은 먹고 사는 것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죽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 본능이다. 출애굽 과정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 현실적인 이러한 일로 인하여 모세는 불신을 받게 된다. 이 때 지도자는 백성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위기가 온다. 모세는 이 위기에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한다. 위기에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은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당당히 질책한다. 실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그렇게도 나를 못 믿겠단 말이냐고 말하고 이스라엘백성들의 원망과 불신을 책망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어 자신들이 원하는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신 것이다. 속이 좁은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불신에도 자기 약속을 지키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자연을 통하여 초자연적인으로 행하시는 것이다. 이 하나님을 우리는 세상을 포괄하고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넉넉함이 있다. 찌든 행동은 전체적으로 모자라거나 한계가 있는 경우 더구나 특정인들을 제외하고 다수가 그 혜택을 받지 못하면 나오는 것이다. 소위 먹고 살기 어려워 인생을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한계가 있으면 그렇다. 한계가 있다는 말은 부족하거나 최대로 해봐야 만족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포함하여 더 많은 것을 포함하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한계에 매어있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 세상 이상을 내포하는 초월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용할 약식을 주실 수 있는 분이다.

초월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기도하는 여러분 되라. 하나님을 믿으라. 세상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면 하나님은 후하게 주실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을 위하여 교회 다닌다.

시편 105:1~7, 39~45

1 너희는 주님께 감사하면서,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2 그에게 노래하면서, 그를 찬양하면서, 그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전하여라.

3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을 찾는 이들은 기뻐하여라.

4 주님을 찾고, 그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고, 언제나 그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여라.

5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을 기억하여라. 그 이적을 기억하고, 내리신 판단을 생각하여라.

6 그의 종, 아브라함의 자손아, 그가 택하신 야곱의 자손아!

7 그가 바로 주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

 

39 그는 구름을 펼치셔서 덮개로 삼으시고, 불로 밤길을 밝혀 주셨다.

40 그들이 먹거리를 찾을 때에, 그가 메추라기를 몰아다 주시며, 하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해주셨다.

41 반석을 갈라서 물이 흐르게 하셨고, 마른 땅에 강물이 흐르게 하셨다.

42 이것은 그가 그의 종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거룩하신 말씀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43 그는 그의 백성을 흥겹게 나오게 하시며 그가 뽑으신 백성이 기쁜 노래를 부르며 나오게 하셨다.

44 그들에게 여러 나라의 땅을 주셔서, 여러 민족이 애써서 일군 땅을 물려받게 하셨다.

45 이것은 그들에게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법을 따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할렐루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라(기억하라. 기뻐하라. 찬양하라. 전하라.).

시편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에 정착하는 모든 과정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신 것은 그 하나님을 따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맥없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모세의 입장에서 상황이 좋지 않고 절망스러울 때 억울하고 분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만두고 싶었을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을 찾게 된다.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을 때,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느낄 때, 모세는 하나님께 해답을 찾는다.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이다. 좌절하고 절망스러울 때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 결국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문제가 있는가? 절망스러운가?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느끼는가? 하나님을 찾아라.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하며 믿음생활을 통하여 교회생활을 통하여 문제 해결을 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는 줄 믿기 바란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뻐하고 찬양하며 알려라.

찬양하고 알리는 일은 그를 기억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그를 알지 못하면 기뻐할 수 없다. 우리가 직접 체험한 것을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성경에 기록된 본문을 보고 깨달으라.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말씀, 시편에 나와 있는 말씀을 가지고 깨닫기 바란다.

 

빌립보서 1:20~30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21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22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25 나는 이렇게 확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26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가면,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 때문에 많아질 것입니다.

27 여러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이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우며,

28 또한 어떤 일에서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나에게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이고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29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 즉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30 여러분은 내가 하는 것과 똑같은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으며,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지금 소문으로 듣습니다.

 

힘든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믿으며 구원받고 그가 존귀하게 되도록 전하라

삶이 즐거움과 기쁨과 만족이 있지만 때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모세처럼 하나님을 찾고 기억하며 찬양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초월하신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바울도 그와 같은 삶을 살았다. 바울은 결코 항상 만족한, 행복한,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아니다. 바울은 절망 가운데, 절망의 극치인 죽을 위기에서도 삶의 희망을 가졌다.

빌립보서 본문을 보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대와 희망을 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에게서 존귀함을 받으시도록 자신의 죽음까지 괘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고 희망인 것은 사람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불신에도 불구하고 넉넉하신 하나님이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계획에 따라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부활하셨기 때문이었다.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의 권면대로 이 복음에 의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산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난을 받는 것은 오히려 특권이다. 때문에 절망 가운데 살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싸워나가기 바란다.

 

불신하는 인간들을 죄악에서 구원하는 길을 오직 예수 믿는 길 밖에 없다. 부처도 알라도 귀신도 조상신도 아니다. 전문가도 부자도 정치가도 아니다. 오직 예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기억하라.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며 기뻐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불신자들에게 전하라. 바울과 같이 여러분의 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

 

마태복음 20:1~16

포도원의 품꾼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2 그는 품삯을 하루에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원으로 보냈다.

3 그리고서 아홉 시쯤에 나가서 보니, 사람들이 장터에 빈둥거리며 서 있었다.

4 그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적당한 품삯을 주겠소' 하였다.

5 그래서 그들이 일을 하러 떠났다. 주인이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 나가서 그렇게 하였다.

6 오후 다섯 시쯤에 주인이 또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하고 물었다.

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래서 그는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이 되니, 포도원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기를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시오' 하였다.

9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0 그런데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1 그들은 받고 나서,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12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였습니다.'

13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보시오,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당신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하였다.

16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본문은 하나님 나라는 일꾼을 부리고 그가 한 일의 양과 시간에 따라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일꾼들의 형편에 따라 그 대가를 지불하는 후한 주인과 같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다면 하나님을 후한 주인으로 비유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 세상과 같지 않고 넉넉하고 후한 곳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이 첫째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무능력한 사람도 첫째가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도덕과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뜻대로 평가하시는 데 후하게 평가하신다는 말씀이다. 죄 있는 인간이라도 구원하신다는 말씀이다.

후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믿고 그에게 우리의 문제를 내어 놓는다. 믿음생활을 한다. 교회생활을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라. 그에게 기도하라. 초월적인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자연을 통하여 인간들을 통하여 기적적으로 우실 것이다.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만 믿으라. 하나님을 위하여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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