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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2주일낮예배 제목 : 하나님 나라 잔치 참여 성경 : 출애굽기 32:1~14, 시편 106:1~6, 19~23, 빌립보서 4:1~9, 마태복음 22:1~14 본문
20141012주일낮예배 제목 : 하나님 나라 잔치 참여 성경 : 출애굽기 32:1~14, 시편 106:1~6, 19~23, 빌립보서 4:1~9, 마태복음 22:1~14
필명 이일기 2018. 12. 12. 11:4520141012주일낮예배
제목 : 하나님 나라 잔치 참여
성경 : 출애굽기 32:1~14, 시편 106:1~6, 19~23, 빌립보서 4:1~9, 마태복음 22:1~14
한편으로 보면 가을 하늘과 붉게 물든 단풍으로 아름다운 자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많은 축제를 벌이고 그 축제에 참여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단풍이 낙엽이 되고 공기는 건조하다. 그래서 쓸쓸하기도 하다. 나이든 사람들은 슬퍼하는 계절이다. 특별히 공기가 건조한 것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의 가을에도 세상에 살면서 즐겁기를 바란다. 단순히 그러한 기대를 할 뿐만 아니라 즐거움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즐거움을 위하여 환상 가운데 마약을 투여 받아 환각 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환각은 계속되지 못하고 인생을 망친다.
까르페 다임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뜻은 현재에서 영원히 즐긴다는 것이다. 즐거운 인생을 살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각이고 착각이다. 쾌락에 대한 우상숭배요, 부질없는 것이다.
교회가 의미 있는 삶을 살자고 목표를 세웠다. 항상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영원히 의미 있게 살도록 하는 수단은 하나님 밖에 없다. 다음 예화를 들어보자.
켈리는 아비이 리그 출신의 무신론자였다. 그녀는 열두 살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는 것과 두 살 밖에 안 된 동생이 뇌종양 때문에 수술을 받고 화학치료며 방사선치료를 견디는 모습을 목격했다. 급기야 컬럼비아대학에 다닐 즈음에는 인생에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희망은 아예 포기해버린 상태였다. 기독교를 믿는 학교 친구들이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지만, 그들의 증언에 대해 그녀는 그야말로 마이동풍이었다. 그러나 여동생이 겨우 14살의 나이에 발작을 일으켜 전신마비 상태가 되자 그녀는 하나님을 찾아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당시 그녀는 뉴욕에서 일하고 거주했다. 그리고 장차 남편이 될 케빈을 만나게 된다. 케빈 역시 컬럼비아 출신에 무신론자였으며, 그 때 월스트리트의 JP 모건에 다니고 있었다. 하나님에 대한 두 사람의 의심은 상당히 요지부동이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의심에 대해서도 역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구세주장로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신앙을 향한 그들의 순례는 느릿하고도 힘든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 진로에서 벗어나지 않게 지켜준 것은 바로 그들이 만나는 많은 신자들이었다. 어느 모로 봐도 이 신도들은 그들이 뉴욕에서 만나게 되는 어느 누구에 못지않게 세련되고 영리했다. 마침내 두 사람은 기독교가 지성적으로 믿을 만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케빈은 “무신론자였던 나는 스스로 도덕적이고 공동체를 지향하며 사회 정의에 관심을 쏟는 식의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 마음 상태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높은 스탠더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였고 그를 내 삶의 한 가운데로 모셔왔다”고 쓰며 또 “커피숍에 앉아서 c. s. 루이스의 책 “한낱 기독교”를 읽다가 나는 책을 내려놓고 공책에다 써내려갔다. ‘기독교의 주장을 둘러싼 증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라고. “내가 성취한 것들은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며 인간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덧없고 무상한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오로지 모험을 위해 ‘이 순간을 즐기라’는 (까르페다임, (라틴어) 이 날을 붙잡아라(seize the day), 현재를 즐겨라(enjoy the present). carpe diem)식의 삶은 그저 일종의 나르시즘과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티머시 켈리, 살아있는 신, 들어가는 말 25쪽 인용)
켈리와 케빈은 예수 믿으면 까르페 다임 같은 삶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은 것이고 나르시즘과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인간은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무신론이나 회의주의나 불신에 사로잡혀 산다. 오늘날만이 아니라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다. 출애굽기 본문을 보자.
출애굽기 32:1~14
1 백성은, 모세가 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 아론에게로 몰려가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오게 한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2 아론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 딸들이 귀에 달고 있는 금고리들을 빼서, 나에게 가져 오시오."
3 모든 백성이 저희 귀에 단 금고리들을 빼서, 아론에게 가져 왔다.
4 아론이 그들에게서 그것들을 받아 녹여서, 그 녹인 금을 거푸집에 부어 송아지 상을 만드니, 그들이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5 아론은 이것을 보고서 그 신상 앞에 제단을 쌓고 "내일 주님의 절기를 지킵시다" 하고 선포하였다.
6 이튿날 그들은 일찍 일어나서, 번제를 올리고, 화목제를 드렸다. 그런 다음에, 백성은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일어나서 흥청거리며 뛰놀았다.
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내려가 보아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이렇게 빨리 벗어나서, 그들 스스로 수송아지 모양을 만들어 놓고서 절하고, 제사를 드리며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하고 외치고 있다."
9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 백성을 살펴 보았다.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노하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 그러나 너는, 내가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모세는 주 하나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주님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주신 주님의 백성에게 이와 같이 노하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 사람이 '그들의 주가 자기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그들을 이끌어 내어, 산에서 죽게 하고, 땅 위에서 완전히 없애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려 하십니까? 제발, 진노를 거두시고, 뜻을 돌이키시어, 주님의 백성에게서 이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주님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시며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서, 영원한 유산으로 삼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14 모세가 이렇게 간구하니, 주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고, 주님의 백성에게 내리시겠다던 재앙을 거두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산 속에 들어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 영원히 보이는 신을 만들어 즐기고자 금을 모아 아론에게 주고 아론은 그것을 녹여서 금송아지를 만든다. 아론은 이것이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낸 신이다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춤을 추며 흥청거렸다. 까르페 다임 한 것이다. 현재를 즐기는 인생을 살자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쾌락을 즐기자는 것이다. 놀자는 것이다. 늙고 죽으면 못 논다는 말이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분노하셔서 저들을 없애 버리고 모세에게는 다른 큰 민족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모세는 그러한 하나님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릴 재앙을 거두어달라고 요청한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의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었다고 본문은 말씀한다.
본문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모세가 내려오지 않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변심하여 우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우상의 의미가 무엇인가이다. 인간은 보이는 신을 원한다. 현재를 즐기기를 원하는 우상을 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로 신을 눈으로 보고자 한 것이다.
두 번째는 모세가 하나님께 재앙을 거두어달라고 하니 하나님이 재앙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 모세의 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것인가이다.
신이 인간의 눈에 보인다면 신이 아니다. 때문에 신은 인간과 다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신은 인간과 같은 성정을 지녔다. 때문에 신은 인간과 같다. 그러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신은 인간과 다르지만 인간과 성정이 같은 부분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과 교통한다. 모세가 하나님과 대화한 것이다. 인간은 신에게 기도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 인간의 요청이 하나님을 좌우하기도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기도와 삶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고 즐겁게 해야 한다. 그를 믿고 기도하며 찬양하고 그를 따르며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있고 신앙이 있다는 것이다.
신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우상을 만들면 안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는 느끼며 체험하며 그에게 기쁨을 드려야 한다. 그것이 교회에서의 예배이고 세상에서의 예배의 실천이다.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예배 잘 드리시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시편 106:1~6, 19~23
1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신 일을 누가 다 알릴 수 있으며, 주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누가 다 찬양할 수 있으랴?
3 공의를 지키는 이들과 언제나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은 복이 있다.
4 주님, 주님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들을 구원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5 주님께서 택하신 백성의 번영을 보게 해주시며, 주님 나라에 넘치는 기쁨을 함께 누리게 해주시며, 주님의 기업을 자랑하게 해주십시오.
6 우리도 우리 조상처럼 죄를 지었으며, 나쁜 길을 걸으며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19 그들은 호렙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보고 절을 하였습니다.
20 그들은 자기들의 영광이 되신 분을 풀을 먹는 소의 형상과 바꾸어 버렸습니다.
21 그들은 또한, 이집트에서 큰 일을 이룩하신, 자기들의 구원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22 함의 땅에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도, 홍해에서 행하신 두려운 일들도, 그들은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23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하셨으나, 주님께서 택하신 모세가 감히 주님 앞에 나아가 그 갈라진 틈에 서서 파멸의 분노를 거두어들이시게 하였습니다.
시편 본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출애굽기 본문을 총괄적으로 반복하고 강조하며 다시금 교훈을 준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약고 한계가 있기 때문이며 현재를 즐기고자 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보자. 부정적인 반응은 한계가 있고 약하고 어렵다고, 한맏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 대신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신으로 삼아 현재를 즐기는 형태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럴 때일수록 기도하며 찬양하는 긍정적인 반응을 한다.
모세처럼 오히려 하나님의 분노를 거두어들이게 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빌립보서 4:2~6
2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
3 또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비밀을 전하는 일로 매여 있습니다.
4 그러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로 이 비밀을 나타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5 외부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대하고, 기회를 선용하십시오.
6 여러분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 본문은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전할 때 지혜롭고 은혜가 넘치는 말로 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현재를 즐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즐기는 삶을 살도록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즐거워하도록 하는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산다. 하나님을 증거 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고 현재를 즐기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신론자는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고 입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입증할 수 없다. 반면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입증하는 길은 무수하다. 하나님을 증거 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마태복음 22:1~14
1 예수께서 다시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임금이 자기 종들을 보내서, 초대받은 사람들을 잔치에 불러오게 하였는데,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초대받은 사람들에게로 가서, 음식을 다 차리고,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서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잔치에 오시라고 하여라.'
5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떠나갔다.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종들을 붙잡아서, 모욕하고 죽였다.
7 임금은 노해서, 자기 군대를 보내서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살라 버렸다.
8 그리고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9 그러니 너희는 네 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10 종들은 큰길로 나가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 그래서 혼인 잔치 자리는 손님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만나러 들어갔다가, 거기에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묻기를,
12 '이 사람아, 그대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가?' 하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 때에 임금이 종들에게 분부하였다.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마태복음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비유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 나라를 혼인 잔치를 베풀어 놓은 장소로 비유한 것이다. 그 잔치자리에 첫 번째 종(예언자들)을 시켜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오려고 하지 않았고, 두 번째 다른 종(예수님)을 시켜 초대했는데 들은 척도 안하고 제 갈 곳으로 떠났다고 하며 한 사람은 밭일 하러 가고, 한 사람은 장사 하러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종을 붙잡아서 죽였기 때문에 화가 난 임금(하나님)은 군대를 보내 살인자를 죽이고 그 도시를 불살라 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임금(하나님)은 (자기 할 일을 이유 대거나 종을 죽인) 그런 사람들은 잔치에 초대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종들(예수 믿는 사람들)을 시켜 큰 길로 나가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만나는 대로 데려와 혼인 잔치 자리가 가득 차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어 그를 쫓아냈다는 말씀을 한다. 부름 받은(초대 받은) 사람은 많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적다고 하며 천국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지만 그러나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선택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는 누구나 올 수 있지만 누구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예수 믿는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혼인 잔치는 하나님 나라를 말하고 영원히 행복한 나라를 말한다. 영원히 행복한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진심으로 예수 믿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잔치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항상 참여할 수 있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