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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0주일낮예배 제목 : 자기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 본문

설교

20150920주일낮예배 제목 : 자기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

필명 이일기 2018. 12. 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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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0주일낮예배

제목 : 자기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

성경 : 요한복음 1024-30

24 그 때에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하시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그 일들이 곧 나를 증언해 준다.

26 그런데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도 더 크시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주제 : 자신을 낮춤으로써 다른 사람을 살리는 예수 믿는 삶을 살자.

구조 :

요양병원에서 본 인간 노화에 대한 인식 노년이라는 80이 넘어도 아니 100세가 넘어도 활발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자기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가족들이 챙기지 않아도 돌보는 곳이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요양원에 가보면 각양각색의 사람이 침대에 앉아 있거나 누워 지낸다. 멍하니 있는 사람도 있고, 원망하는 사람, 불만 있는 사람, 집에 보내달라는 사람 등등 각양각색이다. 예수님은 말년에 어떤 길을 갔을까?

요한복음 7-10장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기록하고, 11장부터는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말씀이 이어진다. 오늘 본문 10장은 예수님이 누구인가의 마지막 장이다. 본문 1-21예수님은 자신이 양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에 의하여 스스로 원해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말한다. 물론 유대인들은 예수가 귀신들려 미친 자라고 하기도 하고, 어떻게 귀신들린 사람이 눈먼 사람의 눈을 뜰 수 있게 할 수 있겠느냐고 하기도 한다. 22-4222절에 의하면, 성전 봉헌절에 예수님은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고 계셨다고 한다. BC 167년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리아의 그리스 총독정권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이스라엘의 헬라화 정책의 일환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헬라 신전으로 바꾸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제단에 율법이 부정하게 여기는 죽은 돼지를 제물로 바친다. 이로 인해 분노한 이스라엘 백성의 민심을 등에 업고 마카비를 중심으로 성전 탈환과 독립투쟁이 일어났다. 3년 후 BC 164년 성전 탈환과 성전 예배회복을 한다. 성전 봉헌절은 이를 기념하는 명절이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이방인의 뜰 영역 동쪽에 있다. 이방인들의 출입이 가능한 영역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자주 들리신 곳이다. 예수님 승천 후에도 사도들과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였던 장소이기도 하다.(5:12) 기둥들이 서 있고 지붕이 덮여져 있어서 예수님은 이곳에서 주로 사람들과 대화 나누시고 말씀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이 그리스도면 분명히 밝히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미 여러 번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고 하고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해주는데 믿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며 내 양들에게는 영생을 주어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 되고 내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한다고 하며 나와 하나님은 하나다고 말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다시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했다. 그러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보여주었는데 나를 돌로 치려하냐고 말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네가 자칭 하나님이라 하며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돌로 치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음을 31절은 밝히고 있다. 성전 봉헌절로부터 약 3개월 전인 초막절 명절에도 그들은 예수를 돌로 치려하였다고 요8:59에서 기록하고 있다. 34-36절에서 하나님 모독이라니 하며 시편 826절을 인용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으로 내가 너희를 신이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지 않았느냐며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폐하지 못한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여 세상에 보내신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을 가지고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며 만약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거든 나를 믿지 말아야 하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 않을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임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을 눈 뜨게 할 때도, 38년 된 병자를 고칠 때도, 52어의 기적 때도 이미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변했는데 그들은 그러한 일을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임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가장 큰일은 십자가에서 자신이 원하여 죽는 것이었다. 그 일을 보면 믿을 수 있어야 했다. 그 길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계획 하에 이루어진 영생하는 길이요 생명을 누리는 길이다. 죽음으로서 사람을 살리는 길 그 일을 예수님이 하신 것이다. 양들을 위하여 억지로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원하여 하고자하여 자신을 버리는 일을 말년에 하신 선한 목자셨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인식 이영표 선수가 간증한 내용이다. 성공과 실패가 언제나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공도 실패도 한 순간이고 그 의미가 중요하며 그 삶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사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실패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보면 사람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성공시킨 것이다. 자기를 낮춰서 사람들을 살리는 예수로 인하여 언제나 의미 있고 활기가 넘치는 믿음 안에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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