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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4주일낮예배 제목 : 하나님 형상 회복 성경 : 베드로후서 1장 3-21절 주제 :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자. 본문

설교

20160424주일낮예배 제목 : 하나님 형상 회복 성경 : 베드로후서 1장 3-21절 주제 :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자.

필명 이일기 2018. 12. 1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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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4주일낮예배

제목 : 하나님 형상 회복

성경 : 베드로후서 13-21

주제 :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자.

 

1. 본문

본문은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품신화성경이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4 그는 이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에 지식을 더하고,

6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7 경건에 신도간의 우애를 더하고, 신도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8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근시안이거나 앞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여졌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욱 더 힘써서,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1 또한 여러분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출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비록 여러분이 이런 것들을 알고 있고, 또 받은 진리에 굳게 서 있지만, 나는 언제나 이런 것들을 두고서 여러분을 일깨우려 합니다.

13 나는, 이 육신의 장막에 사는 동안, 여러분의 기억을 일깨워서 분발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대로, 내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가 멀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그리고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언제든지 여러분이 이런 일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하려고 힘을 쓰고 있습니다.

16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드린 것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위엄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17 더없이 영광스러운 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좋아하는 아들이다" 하실 때에,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았습니다.

18 우리가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 있을 때에 우리는 이 말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19 또 우리에게는 더욱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날이 새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등불을 대하듯이,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20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아무도 성경의 모든 예언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알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되게 하려고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 여러분을 일깨우고 있다고 말한다. 성경의 예언에 근거하여 여러분을 일깨우는 것이지 교묘하게 꾸민 신화로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2. 이단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하나님을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판단하는 자들이 이단이다.

계시록 228절 말씀(18 나는 이 책에 기록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 책에 기록한 재앙들을 덧붙이실 것이요, 19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한 말씀에서 무엇을 없애 버리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한 생명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서 그가 누릴 몫을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빼거나 보태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단은 진리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과 좋아하는 것만 취하고 다른 것은 다 버린다. 좋아하는 것에 자신들의 욕망을 꿰맞춘다. 그렇게 하나님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자연의 욕망이다. 자연을 통한 우상 숭배다. 하나님의 말씀을 돈이나 자기과시를 위하여 물질인 자연에서 나오는 원리를 붙여 진리인양 오도시킨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 사람들이 행하던 태양과 별과 자연에서 나온 것에 무릎을 꿇는 것은 범죄라 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했다. 자기 욕심 챙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말이다. 우주 안에 있는 자연에서 있는 모든 것이 보기 좋거나 먹음직하더라도 그것 자체를 이상화시키면 그것은 우상이 된다. 욕심이요 죄며 그 결과는 죽음이다.

 

3.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여 자신을 닮기를 바란다. 자신과 함께 하기를, 자신을 따르기를 좋아하고 즐거워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창조한 사람들이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기를 바란다. 찬양하며 기도하고 친밀하고자 하는 자와 하나 되고자 하시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이 낳은 자식을 사랑하듯 그래서 한 가족으로 살 듯 자식이 부모에 순종하기를 바라는 것은 자식을 위하고 자신을 위하는 것이듯 하나님도 그렇다.

 

4. 하나님을 모르면 자신도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인 그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형상이 일그러졌다고 성경은 말한다. 사람들은 타락하여 자기 욕망 속에서 하나님을 헛된 신화와 물질로 바꾼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깨닫게 될 때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흠이 있는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그 때부터 하나님은 아름답고 사랑하시는 분이며 용서하시는 하나님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깨닫게 되면 예수를 알게 되고 예수의 참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 예수를 만나면 죄 씻음 받으며 죄 용서받고 거듭나게 되며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거듭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역에 동참하게 되고 동시에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복음을 증언하는 삶을 산다.

 

5.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인 사람들이 어떻게 그 본연의 모습대로 살기를 바라는가?

하나님은 1)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며(말씀) 2) 자신에게 속내를 보여주기를 바라고(기도) 3) 자신을 자랑스러워 자랑하기를 바라며(찬양) 4) 자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기를 바라신다.(선교)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 공간과 시간에서 이루어지는 예배 드리것 것와 동시에 그 예배가 인간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선교하는 것이다. 예배는 인간이 살면서 가지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다. 그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 예배요 선교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사역인 선교를 하게 한다. 선교는 예배의 실천이다.

 

6. 예배와 선교는 어떻게 행해야 하며 어떤 자세로 하여야 하는가?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배울 수 있다. 그들 제사의 차이는 예물을 온전히 드렸는가다. 하나님의 형상인 생명을 드렸는가다. 거룩하게 드렸는가다. 자신의 본래의 모습인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거룩한 모습으로 드렸는가의 차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피가 있는가다.

가인은 하나님을 자기 자존과 자아의식으로 자기 주권을 독립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자신의 속내를 숨겼다.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여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는 생각을 숨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님 주권 앞에 명백히 자신이 한계의 죄가 있다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신인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알기에, 곧 자신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알기에, 자신은 하나님께 비교가 안 되는 초라한 존재임을 알고 있기에, 억지로 어쩔 수 없이 예배를 드린 것이다. 속마음은 숨기고 겉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처럼 하는 겉모양으로 자기가 일해서 열매를 얻은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자기 것이라며 하나님께 어쩔 수 없는 예물을 드리며 예배한 것이다. 자신을 과시한 것이다. 자신도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독립하여 자유로 살겠다고 교만을 부린 것이다.

반면 아벨은 전혀 다른 예배를 드렸다. 양을 잡아 예물을 드리며 자신을 살피고 자신에게 있는 하나님을 닮으려하지 않는 악마적 속성인 흠, 곧 죄를 용서해달라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드린 것이다. 양을 잡아 피를 흘려 자신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는 자세로 예배드린 것이다.

 

7.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습관적이다.

예물과 기도와 찬양이 그렇다. 주일헌금을 없앴다. 주일 헌금하는 것이 부담이 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습관적으로 드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헌금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도 주일헌금을 드리는 분이 있다. 감사헌금과 주일헌금은 다르다.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감사헌금이고 주일에 드리는 헌금이 주일헌금이다. 주일헌금은 주일이기 때문에 드리는 형식적인 헌금이었다. 물론 주일 하나님 앞에 정성으로 드리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마음으로 드리기 보다 습관적으로 드린 것이 사실이다.

모든 헌금과 기도와 찬양은 아벨과 같은 자세와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고자 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고자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자세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신다. 우리 인생을 축복하신다. 하나님을 닮고자 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생명을 드리는 자세로 하나님께 아뢰고 말씀을 경청하고 그를 자랑스러워 찬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그러한 하나님과 함께 살려고 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고 구체적인 예배다. 그 때 워십, 예배는 나의 삶의 가치관이 된다.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삶의 현장에서 그러한 가치관으로 사는 것, 곧 예배하는 현장의 삶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이고 하나님 따라 사는 삶이 된다. 예배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라 살도록 하는 선교요 전도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는 삶이다.

 

8.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예배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그의 아들을 보내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고 감탄이며, 말씀을 묵상하여 새기며 순종하는 것이고, 내 형편을 다 아뢰며 소원을 기도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자랑하는 찬양이고, 하나님의 진리 안에 살며 선교하는 것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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