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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8주일낮예배 제목 : 영적 능력 성경 : 고린도후서 3장 17-18절 주제 : 영안을 가지고 살자. 본문
20160508주일낮예배
제목 : 영적 능력
성경 : 고린도후서 3장 17-18절
주제 : 영안을 가지고 살자.
구조 :
1.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있어 많은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5월 달이다. 왜 이려한 날들을 두는가? 결국 인생을 제대로 살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 믿는 믿음의 가치관이 최고의 인생이고 효가 되고 잘 가르치는 덕목이 될 것이다. 어떤 입장에서 살아야 하는가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관련될 것이다.
2. 여성들의 남성관
여성들은 어떤 남성을 좋아할까? 여성들은 단무지 같은 단순, 무식 하고 지랄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단무지 같은 단순, 무식 하지만 지갑은 든든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한다.
3. 오캄의 면도날
영국 오캄 출신 윌리엄은 13,4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였고 유명론자였다. 그는 전체적인 실재론(보편론)자들에 반대했다. 보편자 아버지 동물 식물 등등 같은 보편개념은 일반 명사가 가지는 개체들과 따로 실재성이 없다고 한 것이다. 신앙과 지식, 필연과 우연, 증거와 개연성의 차이를 구별한 것이다. 오직 이름이 붙여진 물질들만이 실재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만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오캄은 사람들이 실제로 있는 것만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하고 불필요한 것은 가정하면 안 되며 적은 수의 논리로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고 했다. 단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그의 관점을 후대 사람들이 오캄의 면도날이라고 했다.
4. 직관과 경험적인 지식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바둑으로 사람들이 직관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다. 바둑에서 직관이란 10의 170제곱 가지의 경우의 수를 일일이 따지지 않고, 인간의 감각으로 최적의 수를 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알파고는 수의 위치를 계산하는 ‘정책망’으로 탐색의 범위를 좁힌 뒤, 승률을 계산하는 ‘가치망’을 기반으로 탐색의 깊이를 좁혀 인간의 직관력을 모방하는 ‘신경망 접근 방식’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철학에서 직관이란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이다. 칸트의 철학적 용어로는 순수이성이다.
반면 개념 또는 경험적인 지식이란 인간 동물 아버지 꽃 등등 과 같이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또는 구체적인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생각이다. 직관이 인간에게 있다면 그것은 유전적이고 이미 날 때부터 타고난 선천적인 인간의 능력이다. 인간은 경험해서 알게 되는, 타고나지 않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인간의 지적인 능력도 있다.
<참고> 직관과 계시와 통찰력, 창의력
2001년 4월 어느날 미네소타주에 거주하는 재키 라센(Jackie Larsen)이라는 여성은 예배를 마치고 자기 가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그녀는 크리스토퍼 보노(Christopher Bono)라는 청년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짧은 머리에 예절바르게 보이는 그 청년은 차가 갑자기 고장나 곤란을 겪고 있었다. 왜 갑자기 배가 아팠을까? 재키는 청년에게 자기 가게로 와서 전화를 걸어 견인차를 부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자기 가게로 향했다. 잠시 후 청년이 가게에 나타났을 때, 재키는 갑자기 배를 누가 강하게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무엇인가가 잘못됐다고 느낀 그녀는 전화를 끝낸 보노에게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재키는 청년에게 “네가 그토록 예절바른 것을 보니 어머니는 분명히 훌륭한 분이시겠지?”라고 말을 건넸다.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재키를 잠깐 응시하더니 “저는 지금 어머니가 어디 계신지 몰라요”라고 대답했다. 청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재키는 청년에게 우선 교회로 가있으라 했다. 견인차가 도착하면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청년이 교회로 향하자 재키는 즉시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도착하자 차 넘버를 조사해보자고 말했다. 경찰이 차적 조회를 해보니 차는 보노의 어머니인 루시아 보노(Lucia Bono)의 소유로 밝혀졌다. 이상하게 여긴 경찰은 곧 수사에 나서 보노의 집 목욕탕에서 숨져있는 루시아 보노를 발견하게 된다. 16세의 크리스토퍼 보노는 1급 살인죄로 긴급체포되었다. 재키는 왜 갑자기 통증을 느꼈을까? 어떻게 그 통증으로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까?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때 우리는 보통 직관이란 표현을 쓴다. 재키는 직관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라는 식이다.
위대한 수학자 포앙카레는 의식적인 사고에서 무의식적인 사고로 넘어가 갑자기 떠오른 계시야말로 직관이라고 했다. 그 계시는 엄밀하게는 통찰력에 해당된다. 포앙카레가 말하는 계시는 3백50년간 풀리지 않았던 페르마(Fermat, P)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캠브리지 대학의 앤드류 와일즈(Andrew Wiles)는 “갑자기, 그리고 전혀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나는 놀랄만한 계시를 받았다. 나는 도저히 믿기지를 않아 20분간 멍하게 (증명한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고 했다. 그는 10살 때 마을 도서관에서 3백여 년 동안 미해결이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글을 읽고 자기가 증명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 기도가 30년 만에 회답을 준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도 스탠포드대학의 졸업식에서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서 삶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도그마라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빚어낸 결과와 함께 사는 셈이 되니까요. 다른 사람들의 잡다한 의견이 내는 소음에 내면의 목소리가 익사당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가슴과 직관이 하는 말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여러분이 진정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이외의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것입니다.
뇌과학의 연구에서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결정했다고 생각하는 선택조차도 사실은 이미 잠재의식이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선택했다고 착각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처음 밝힌 리벳의 실험은 간단했다. 버튼을 누르고 정확히 언제 그걸 누르고 싶었는지를 보고하기만 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리벳은 누르겠다는 의식적 욕구가 나타나고 나서 운동피질이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실험결과는 정반대였다, 운동피질이 활성화되고 나서 거의 1초가 지나서야 운동결정이 내려졌던 것이다. 무의식이 운동결정을 내려, 그러한 운동과정이 이미 시작되고 난 후에 사람들은 그것을 깨달을 뿐이다. 이 결과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심각한 논란을 불렀다, 이 결과가 사실이라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잠재의식적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실험은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추시되었지만 결과는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심리학 쪽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비이성적이고 무의식적인 사고가 존재하는 것이 확실해진 상태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요즘은 뇌를 모르면 몇몇 심리학 분야에서는 논문을 읽기조차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인지심리학 쪽에서 이중처리(dual processing), 적당한 정보를 적당하게 처리하는 시스템 1사고, 추론에 의하여 지배받는 시스템 2 사고와 같은 식의 무의식적이고 비이성적인 사고를 다룬 연구들이 대거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심리학에서는 직관을 연구과제로 삼기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직관이란 말 자체를 사용하는 것을 꺼린다. 직관이란 비합리적이고 또 그것이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직관적 결정이란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만큼 비합리적인 것이라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보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사람들이 의사 결정이 가져올 결과나 효용에 대해 제대로 분석을 하지 않으면 결정 자체가 적절하지 않아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갑자기 떠오르는 통찰이란 한마디로 말해 어느 순간에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통찰이란 어떤 계기로 문제에 내재된 심층적인 구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층적인 구조를 파악하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또 그것이 어떻게 변해가게 될 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5. 직관과 영적인 눈과 계시
하나님은 사람들의 능력을 통하여 그의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안을 통하여 인간의 직관이나 경험지식 개념 등을 통하여 그의 뜻을 펼치시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는 사람과 때와 장소 그리고 대상을 알기는 힘들다. 때문에 직관과 관련한 계시에 대하여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수학자 포앙카레는 갑자기 발생하는 계시를 직관이라고 했다. 사실 계시는 갑자기 발생하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고 사느냐 않느냐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우리는 세상을 믿음에 의하여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다. 오늘 내가 한 행동과 내 인생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이루어진 것이냐는 내가 그렇게 믿느냐의 차이다. 실례로 오늘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내게 섭리하여 이루어진 것이다고 믿으면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만약 오늘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된 것은 그냥 습관적으로 또는 어쩔수 없이 목사와의 관계 때문에 등등 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그런 의도에서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믿음 없이,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가 배운 대로, 경험한 대로, 생각하는 등으로 사는 사람이다.
6. 본문, 바울의 영적인 인생
1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치켜올리는 말을 늘어 놓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처럼, 우리가, 여러분에게 보일 추천장이나 여러분이 주는 추천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2 여러분이야말로 우리를 천거하여 주는 추천장입니다. 그것은 1)우리 마음에 적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읽습니다.
3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작성하는 데에 봉사하였습니다. 그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 판에 쓴 것입니다.
4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런 말을 합니다.
5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서 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하나님에게서 납니다.
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자신의 편지라고 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썼다고 말한다. 교우들과 자신과의 관계가 영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의 인생은 하나님의 영으로 살았다는 말이다. 예수 만나기 전에는 전통적인 가치관인 율법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세상에 오신 예수를 영적으로 만나 영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보인 것이다. 고린도교인들과 그러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한 바울은 율법주의적인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자신들이 행복하고 평안하기 위하여 예수를 죽이고 사람들을 죽이고 세상을 악의 구렁텅이로 만드는 삶을 살아 자신마저 고난을 당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이겨내고 부활의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영적으로 산 것이다.
7 돌판에다 문자로 새긴 율법을 선포할 때에도, 광채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그 광채 때문에, 비록 곧 사라질 것이었지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에도 이러한 영광이 따랐는데,
8 하물며 영의 직분에는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9 유죄를 선고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으면, 의를 베푸는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10 참으로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영광으로 빛나던 것이, 이제 훨씬 더 빛나는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 빛을 잃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11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것도 생길 때에 영광을 입었으니, 길이 남을 것은 더욱 영광 속에 있을 것입니다.
12 우리는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주 대담하게 처신합니다.
13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얼굴의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 얼굴에 너울을 썼지만, 그와 같은 일은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14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은 완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은, 옛 언약의 책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너울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너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15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마음에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기에 영적인 삶을 살았다. 인간의 오류가 많은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고 초월하게 하는 영적인 눈은 우리의 육적인 이세상적인 가치관을 벗어버리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한다. 영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참여한 사람은 예수를 믿는 영적인 눈을 갖고 살게 된다. 예수 안에서 영적인 눈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