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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1주일낮예배 제목 : 베델이 아닌 하나님을 찾으라 성경 : 아모스서 5장 4-9절 주제 : 공의가 물처럼 흐르고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하나님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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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1주일낮예배 제목 : 베델이 아닌 하나님을 찾으라 성경 : 아모스서 5장 4-9절 주제 : 공의가 물처럼 흐르고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하나님을

필명 이일기 2018. 12. 1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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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1주일낮예배
제목 : 베델이 아닌 하나님을 찾으라

성경 : 아모스서 54-9

주제 : 공의가 물처럼 흐르고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하나님을 찾으라

 

1. 추석 명절

추석 명절이 내일 모레 글펜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어떤 감정이 들지 않는다. 기대되고 설레고 기다려지는 어린 시절과 달리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오히려 따분하게 느껴진다.

농사 짓던 시절 좋은 음식 마련하여 먹고 나누던 어린 시절은 그저 추억일 뿐이다. 음식 준비도 하지 않고 시장에 가서 사면 되는 세상이니 더구나 도시에서 생활하며 사는 우리 입장에서 들녘도 없고 해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을 이 결실의 계절을 생각하며 만추 되기를 소원은 해본다.

 

오늘 말씀은 연이은 선지서 말씀 중 아모스서다.

2. 아모스서

아모스는 시골에서 포도 재배를 하며 목축업을 하는 농사꾼이었다.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활동을 하고 선포한 말씀을 기록한다. 그러니까

아모스서는 남북 분열왕국의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하여 패망당한 기원전 722년경 이전 최소 10-40년 전인 기원전 750년경에, 남쪽 유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포도 재배를 하며 목축업을 하던 아모스가 요나가 니느웨로 간 것 같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북 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기록이다.

 

아모스의 소명이 실제 이루어졌는지는 그가 전혀 제사장이나 선지자 또는 예언자로 활동하고 있지 않았는데, 그가 받은 하나님의 명령 또는 계시를 북 이스라엘에 가서 전달 선포한 행위 사실에 대한 그 자신의 기록에 근거한다.

 

아모스는 북 이스라엘의 친 여로보암 측 삭군 목사 아마샤의 모함 등으로(71-17) 그의 선포가 먹혀들지 않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그의 소명과 선포를 기록으로 남긴다. 후에 그 기록은 구약성경 편,저자들에 의하여 역사적 사실에 의하여 수집되어 인증되고 정경화 되어 오늘 우리들에게 소위 아모스서로 전달된다.

 

아모스가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시기에 앗시리아는 그들의 북쪽 나라와 갈등하고 있었다. 때문에 북 이스라엘을 침략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북 이스라엘은 안락을 추구하며 쾌락을 누리던 물질 만능 번영이데올로기 우상 신에 의하여 지배되던 불의하고 타락한 사회였음을 아모스의 선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단지 북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인근의 주변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것도 이해된다.

 

결국 아모스는 불의가 판치는 유다를 포함한 주변 나라들과 특히 형제지간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멸망 그리고 이후 나타나게 될 남은 자들의 구원에 대표하여 예언자적 관찰과 활동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아모스서의 핵심 주제는 공의와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 대한 회개 촉구와 회개한 자들에 대한 구원일 것이다.

 

본문 5장을 보자.

이스라엘 사회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7공의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들며 정의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저들의 제물과 제사도 실어하시고 24절의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고 말씀한다.

 

유다와 그 이웃 나라들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러한 불공정하고 바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타락한 사회였다는 것이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가 타락한 사회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공의는 공평한 도리라고 하는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다는 뜻이다. 평등해야 할 인간의 권리다. 정의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다. 평등을 의미한다. 공의나 정의나 모두 세상에서 사람들이 평등하게 대우받도록 부당한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3. 공의는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인가?

예레미아서에 의하면, 솔로몬 이후 르호보암은 이기적 욕망에서 백성들 대표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솔로몬이 궁궐과 성전 건축에 강제 노역과 강압을 한 것과 같이 원로들 말을 듣지 않고 젊은 동년배 참모들의 말에 따라 강압적인 통치를 계속하였다. 공평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많은 신하들이 공모하여 이집트에 피신해 있던 여로보암을 내세워 항의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10부족 족장들과 함께 동맹하여 "우리가 다윗과 상관이 없다"하며 북쪽에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다.

그런데 여로보암 또한 이기적 욕망에서 백성들이 남쪽 성전을 사모할까봐 야훼 하나님 성소로 베델을 지정하였고, 그들만의 제법에 따라 혼합주의적이고 이단적인 성소를 만든다. 권력 정치에 종속되어 왕이 제사장들을 임명하였고 왕의 뜻에 따라 성소가 운영하였다. 당연 인간적인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닌 현실 정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국가 번영과 왕의 만수무강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길로 갔던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그렇듯이 말이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에서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베델과 단에 두고 거짓 신을 섬기도록 하였던 것이다. 거짓 속에서 인간이 만든 신을 섬기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베델은 우상을 섬기는 곳, 불의가 판치는 타락한 곳이 되었다. 물질만능 번영이데올로기만 존재하고 거짓이 진실을 비웃으며 뇌물과 억압이 만연한 곳이었다. 성전은 형식적일뿐 그 진실이 없는 곳이었으며 자유가 없고 체면만 있으며 이해관계만 있고 사랑이 없었고 억지만 있고 자발적이지 않는 곳이었다. 우상이라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것은 당시에는 신이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우상을 만들어 신이라고 사람들이 섬긴다고 하지만 우상은 이기적 욕망을 위한 인간이 만든 거짓 가치관이며 거짓 이데올로기다. 김정은이 북한 인민을 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위하여 핵과 경제 병진 정책을 내세우지만 그 자신의 정권을 위한 것일뿐 인민들을 위한 것이 아닌 거짓 우상화 놀음이다.

 

4. 참과 거짓

거짓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생각나는 일화 하나 소개한다. 지난 주 개그계 원로 구봉서 장로가 사망했는데 그가 장신대 채플에서 했다는 말이다. “우리는 거짓(개그)으로도 사람들을 웃기는데, 여러분은 진실(하나님,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도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느냐?”고 했다는 말이다.

 

거짓은 어느 때 발동되는가 사회가 또는 가정이나 개인이 자기 욕망을 위하여 남을 속일 때 나타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이득과 자기 살기에 급급하다보면 자기 안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최고고 다른 사람은 도구나 물질에 불과하다. 자기를 높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의 마음은 진실함과 진정성은 사라지고 어둠에 살게 되는 것이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그랬던 것처럼 김정은이 자기 입장에서 자기 보전을 위해 어둠에 묻혔고 그를 옹위하는 자들도 그렇게 살며 그들이 사는 사회와 집단까지 물들게 한다.

 

이순남 집사님이 보내준 카톡 내용,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감동. 그들은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았다.

 

4.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고 이웃 친지들과 아름답고 즐겁게 지내라.

친구 목사가 자신이 죽으면 묘비명에 자신은 참이었다고 새기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거짓으로 산 사람이 아니라 진실하게 진짜로 인생을 산 사람이라고 기억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사실 세상 사람들 중에 참이고 진짜이고 진리인 사람이 있겠는가? 다 거짓되고 허물많고 문제 많은 인간 아닌가!

하나님 만이 참이고 진리이고 진짜다. 인간은 거짓이다. 더구나 우상은 거짓이다. 참이신 하나님을 찾아라.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비록 인간인지라 자신이 거짓이고 문제 많은 존재지만 거짓을 따라 우상을 따라 살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 살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명절에 하나님을 찾고 내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식구들과 친척들을 챙겨 즐겁게 지내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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