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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확실히 믿도록 #사도행전 20장 17-38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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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확실히 믿도록 #사도행전 20장 17-38절

필명 이일기 2018. 12. 1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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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확실히 믿도록

사도행전 2017-38

 

1. 3주 전 말씀은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것은 진리이신 하나님을 교회가 알게 하여 믿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회는 하나님이 만든 우주 만물을 이해하게 하며 종래에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에 살아가게 이끈다고 했다. 요리문답으로 말하면,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이 교회를 다니는 목적이고, 믿음생활 하는 목적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2주 전 말씀은 우리는 구*파가 말하는 회개, 죄사함, 구원의 일회성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고, 순*음에서 말하는 방언을 강조하지 않고, 우리가 믿는다 해도, 완전하지 않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 주 말씀은 인생이 무료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자고 했다.

 

2.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바울의 사역을 통하여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말씀 나눈다.

교회라는 용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새번역 복음서에는 유일하게 마태복음에만 2번 나온다. 사도행전 20, 요한계시록에 19번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바울 등의 서신서에 나온다. 대표적으로 고린도서 30, 에배소서 11번 등 총 111번 나온다. 고린도서는 교회의 분열에 대하여, 요한계시록은 종말을 대비하여 교회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이다. 물론 사도행전은 교회의 상황과 발전에 대한 말씀이고, 에배소서는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때문에 교회에 대하여 말씀 나누려면 에배소서를 참고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성령 또는 교회의 행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의 본문 말씀을 나누는데, 본문은 에배소서 말씀의 상황적 말씀이고 축약이며, 에배소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배경으로 교회에 대하여 상세하게 확장한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문 말씀을 보자.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불렀다.

18    장로들이 오니,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아시아는 지금의 터키 지역이다)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잘 아십니다.

19    나는 겸손과 많은 눈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또, 유대 사람들의 음모로 내게 덮친 온갖 시련을 겪었습니다.

 

간략하게 에배소서를 안내하면, 에배소는 터키 서부 해안에 있다. 오늘날도 에페수스라는 지명이다. 에배소서 편지가 쓰여 질 당시 에베소는 로마의 지배하에 식민지였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디옥과 함께 3대 국제무역 도시 중 하나였다. 그 에베소에 54년경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급히 돌아가던 중(18: 19-21) 잠깐 머물렀고, 3차 선교여행 중 3년 동안 머물며 가정에서 모이는 에배소 교회들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19:8-10, 20:31) 바울은 초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후에는 디모데와 오네시모와 함께 선교했다. 그 에베소 교회들에 바울이 두기고 편에 보낸 편지가 에베소서다. 바울이 62년 봄경 로마로 이송 감금된 후 65년경 교수형에 처하기 전, 에베소 교회를 세운지 10여년 만에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이 받았다는 시련은 에베소 등에서의 예루살렘에서 온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들로 인한 시련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 할례, 안식일 등을 형식적으로 준수하는 사람들이었다. 본래 이것들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유업, 곧 복(자녀 번성과 가나안 땅)을 받게 하겠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약속 이행을 위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율법은 실천 규약이었다. 할례는 짐승을 반으로 쪼개 피 흘려 죽여, 만약 이 약속을 위반하면 짐승처럼 반드시 너희도 죽게 된다는 징표로, 그 쪼개진 짐승 사이를 걸어가도록 하는 약속의 표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것을 유대인 남자들의 성기 피질을 잘라내 피를 흘리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을 배반하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쉬시니 사람도 쉬는, 하나님과 더불어 살도록 하는 교육의 징표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하나님과 더불어 살도록 하는 본래의 뜻은 저버리고 하나님이 아닌 수많은 우상들을 숭배하였다. 그래서 심판을 받아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성전도 파괴되고, 뿔뿔이 흩어져 나라 없이 살았던 것이다.

에배소서가 전달 될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반성 없이, 본래의 뜻과 상관없이 형식에만 얽매어 율법과 할례와 안식일 등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조차 형식화시키고 경직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경륜과 뜻, 곧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비판하고, 바울을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기 때문에 바울은 온갖 시련을 겪었다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바울을 비판했던 것이다. 우리식으로 발하면 유교가 낫네 불교가 낫네 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비난한 것과 같다.

 

20    나는 또한 유익한 것이면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전하고,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여러분을 가르쳤습니다.

21    나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똑같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과 우리 주 예수를 믿을 것을, 엄숙히 증언하였습니다.

22    보십시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내게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23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성령이 내게 일러주시는 것뿐인데, 어느 도시에서든지,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4    그러나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하기만 하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25    나는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여러분 모두가 내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하게 증언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27    그것은, 내가 주저하지 않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21, 24, 25, 26, 27절을 정리하면, 바울은 예수가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고 구세주이기 때문에 그러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가르치고 증언하며 선포하고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경륜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 책임이라고 한 것이다.

 

28절 말씀을 보자.

 

28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잘 살피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양 떼 가운데에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9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와서, 양 떼를 마구 해하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30    바로 여러분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이탈시켜서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깨어 있어서,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장로들은 양떼를 보살피라, 교회를 돌보라는 말이다. 유대인들과 이단이 휑휑하는 시대에 교회를 위하여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며 진리를 수호하라고 말하고 있다.

 

32절 말씀을 보자.

32    나는 이제 하나님과 그의 은혜로운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을 튼튼히 세울 수 있고, 거룩하게 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유업을 차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긴다고 했다. 그 말씀은 장로들을 튼튼하게 하고 유업, , 구원, 생명, 하나님 나라의 삶을 하나님과 더불어 살게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바로 이것을 위하여 존재한다. 하나님을 믿고 살도록 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에 살도록 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말씀을 증거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설계도다. 예배소서는 하나님의 설계도를 보여 준다. 건물의 높이를 알아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직접 재보는 방법도 있지만 설계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유전자 지도를 보면, 더 나아가 유전자 설계도를 보면 사람의 육체를 알 수 있다. 문제는 확신하는 것인데, 설계도가 진짜인지는 설계도를 작성한 사람이 알려줄 수 있다. 그가 하는 말은 확신할 수 있다. 성경은, 특히 교회에 관한 에배소서는 하나님의 설계도다. 역사적 사실이며 실제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말한다. 어머니를 불교 봉안당에 모신 어떤 여인이 법*스님의 *설에서 법* 스님에게 극락이 실제 있냐고 물으니 법* 스님은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 천국이 저희 것이다는 마태복음의 말씀으로 답했다. 그러니까 질문자가 그것은 교회에서 하는 말씀이니 교회가 아닌 스님이 하는 말씀을 듣고 싶다니까 지금 스님이 말하지 않는가 했단다.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따지지 말고 믿으면 복이 된다고 한 것이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마음먹는 게 복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인정한다. 마음이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성경도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계속 전달되었고 오늘 우리도 그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 실체와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경험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부정한다고, 믿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든 아니든과 상관없이 역사적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확실한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33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34    여러분이 아는 대로, 나는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일해서 마련하였습니다.

 

35절 말씀을 보자.

35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바로 이것이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불신자를 도와주는 것이다. 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라고 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교회의 사명이다.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

 

36    바울은 말을 마치고 나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37    그리고 모두 실컷 울고서, 바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38    그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다시는 자기의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울의 말이었다. 그들은 배타는 곳까지 바울을 배웅하였다.

 

3.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떤 사실에 대한 확신이 없다.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하거나 상처 되지 않도록 또는 갈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진리를 드러내지 못한 세상이 되었다. 믿는 사람들이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주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확실히 믿기 바란다. 성경에 기록된 확실한 역사가 증명한다. 그 성경 내용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기독교가 오늘 진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불교도 현실 인식에 대한 진리를 품고 있고 특히 마음에 관한 진리를 품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실을 가지고, 생명을 가지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다. 확신하는 진리를 드러내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 우리 시대에 일꾼을 부르신다. 하나님의 복음, 예수님에 관한 목사가 되라. 교사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예수님을 확실히 믿는 자가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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