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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0설교 호의(好意) 빌레몬서 1장 10-20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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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0설교 호의(好意) 빌레몬서 1장 10-20절

필명 이일기 2019. 2. 1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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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0설교

호의(好意)

빌레몬서 110-20

 

 오늘은 기독교인으로 사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유추해볼 수 있는 빌레몬서로 말씀을 나눈다.

 

 빌레몬서는 61,2년경 로마 감옥에서 바울에 의해 써져 두기고에 의해 빌레몬에게 전달된 편지다. 골로새서, 에배소서(?), 빌립보서와 함께 대표적인 옥중서신이다.

 

 종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은 골로새교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바울과 함께 갇혀있는 에바브라 디도와, 빌레몬의 아내 압비아, 아들 아킵보, 두기고 등은 골로새교회 교우들이었다. 빌레몬은 후에 골로새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가 네로의 박해 때 온 가족과 함께 돌에 맞아 순교 당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바울은 제1차 로마 감옥 생활 중 빌레몬에게서 도망쳐 자신에게 온 오네시모의 잘못을 돌이키게 만들었다. 그런 후 그리스도 안에서 호의를 기대하며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며 받아주기를 호소한다.

 

 기독교를 평등과 박애 정신으로 기초 세우는데 일조한 빌레몬서는 당시 노예를 재산의 일부로 규정한 로마 체제에서 노예를 형제로 인식한 바울의 평등과 박애 정신이 드러난다.

 

 바울의 생각과 신념과 자세가 표현된 14-20절 말씀을 보자.

 14, 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대가 선한 일을 마지못해서 하지 않고, 자진해서 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진해서 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빌레몬과 그의 자유를 존중하는 바울의 입장이다. 바울의 사람들을 대하는 가치관에서 나온 말이다. 빌레몬의 인격을 존중하고 침해하지 않으려는 바울 배려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인간을 위해 오신 예수 안에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 형성된 신념이고 가치관에서 나온다. 상대를 강압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창조질서에 어긋난다.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그 의미가 다 있다. 그것을 무시하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이고 바른 관계를 갖도록 하신 것이며 그것을 유지하도록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또는 꼼수로 사람을 얽어매거나 강압하는 것은 사단의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훼방이다. 모든 일을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자유로 결정하자.

 

 15, 그가 잠시 동안 그대를 떠난 것은, 아마 그대로 하여금 영원히 그를 데리고 있게 하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불만이 있어서든 잘못해서든 또는 도둑질해서든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서 도망하여 잠시 동안 떠난 것은 오네시모가 자신에게 와서 쓸모없던 그가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도록 한 하나님의 역사 개입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의 바울의 신앙적 해석이고, 또한 그 결과로 오네시모가 그렇게 변하여 빌레몬을 끝까지 섬기도록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을 지도 모른다는 해석이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며 잘 모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었겠는가 하고 인식하며 고백한다. 그 과정은 우연이나 또는 여러 변수들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명증하게 입증할 수 없는 인간 능력의 한계가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이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인식한다. 누구도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 인식을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살펴보며 예견하자.

 

 16, 이제부터는 그는 종으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가 나에게 그러하다면, 그대에게는 육신으로나 주님 안에서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16절은 14, 15절 말씀과 연관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평등한 관계로 그리고 자유한, 자신이 하고 싶어서 살아가는 오네시모가 되어있다는 말이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말이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좋아하는 것처럼 이제 빌레몬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견이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오네시모가 즐거워서 하고 싶어서 빌레몬을 섬길 것이라는 말이다.

 

 18절과 19,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거든, 그것을 내 앞으로 달아놓아 주십시오. 나 바울이 친필로 이것을 씁니다. 내가 그것을 갚아 주겠습니다.

 바울은 예수께 빚진 자로서 빚 갚는 자되어 박애정신에서, 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빌레몬에게 쓰고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정신과 자세다. 빚진 자로서 남을 사랑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20, 형제여, 나는 주님 안에서 그대의 호의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마음에 생기를 넣어 주십시오.

 위 구절 모두에서 바울의 정신과 자세 태도 등의 핵심은 호의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호의가 모든 것을 낳았다. 호의를 선의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호의로 변화되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 호의는 사람을 변화하게 하는 동기가 된다. 빌레몬에게도 바울은 호의로 말하고 있다. 호의는 친절한 마음씨 또는 좋게 생각하여 주는 마음이다. 호의의 반의어 악의는 남을 해치려 하거나 미워하는 악한 마음이다. 유사한 말로 선의는 남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거나 좋은 목적을 가진 착한 마음이다. 우리도 호의를 갖자.

 

 인간은 자신만의 고유한 성질과 특성을 가지고 산다. 인간은 그렇게 존재한다. 그 의미는 자유한 가운데 평등하며 사랑받으며 사랑하며 살 권리가 있다는 의미다. 그 모든 것의 중심은 사랑, 곧 선의, 호의가 있다. 호의로, 선의로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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