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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설교 하나님 나라 위해 힘쓰는 사람 마태복음 11장 12절 본문
20200809설교
하나님 나라 위해 힘쓰는 사람
마태복음 11장 12절
12 세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
1. 흔히 젊은 사람들이 연로한 부모님을 생각한다고 부모님께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것은 올바른 인식이 아니다. 부모님 마음대로 하시도록 하는 게 진정 부모를 제대로 섬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어떤 종교나 마음을 다루는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편하다고 한다. 욕심을 비워야 한다고 한다. 그들 주장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살 의욕조차 사라진다. 그러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되어 그저 관조하며 목석처럼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2. 하나님 나라를 힘쓴(선포한) 마지막 예언자 세례요한과 하나님 나라를 힘쓴(만들었던) 예수에 반해, 하나님 나라에 무심했던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에 관한 누가복음 7장 18-35절(마태복음 11장 2-19절)을 살펴보자.
요한의 제자들에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힘쓰신 사역 답
18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서 백부장의 종을 낫게 하고, 과부의 아들을 살린 사건 등) 이 모든 일을 요한에게 알렸다. 요한은 자기 제자 가운데서 두 사람(사도 안드레와 요한)을 불러,
19 주님께로 보내어 "선생님이 오실 그분(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다스릴 메시아, 그리스말 번역어 그리스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보게 하였다.
20 그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우리를 선생님께로 보내어 '선생님이 오실 그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21 그때에 예수께서는 질병과 고통과 악령으로 시달리는 사람을 많이 고쳐주시고, 또 눈먼 많은 사람을 볼 수 있게 해주셨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가서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23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God will bless everyone who doesn't reject me because of what I do.- 내가 한 일 때문에 나를 거절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을 내릴 것이다. 치유 사역을 한 나를 메시아로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다.)
제자들에게 답하는 예수님의 요한에 대한 인식
24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떠난 뒤에, 예수께서 요한에 대하여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비단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사스럽게 사는 사람은 왕궁에 있다.
26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려고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다.
27 이 사람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기를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닦을 것이다' 하였다.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너희가 광야에 갔던 것은 갈대도, 비단이나 화려한 옷을 입고 호사스럽게 사는 왕궁 사람들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예로부터 예언된, 내 앞길을 예비하기 위한, 예언자보다 위대한 세례 요한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요한도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사람처럼 평범하다. 보다 위대하지 않다.
사실 하나님 나라가 중요한데,
누가복음에서는 이방인들이 알아듣도록 하나님 나라라고 했고, 마태복음은 유대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하늘나라라고 했다.
하나님 나라와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바실레이아 투 떼우(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다. 단지 저 세상 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다. 하나님을 믿고 그의 섭리와 계획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사는 모든 곳이다. 그렇지 않는 곳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산다.
다른 말로 하나님 나라는 평화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마음을 비워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메시아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식으로 말하면 보이는 것 너머에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인식과 기억이고 경험이다.
마태복음 3장 1-2절,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서, 유대 광야에서 선포하여 말하기를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에 의하면,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요한이 하나님 나라를 외쳤다. 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11장 12-14절,
12 세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 (개역번역에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
13 모든 예언자와 율법서는, 요한에 이르기까지, 하늘나라가 올 것을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 예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하면 그 예언대로, 요한, 바로 그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 (개역개정,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영어번역, And if you believe them, John is Elijah, the prophet you are waiting for.)
바로 이 위대한 엘리야와 같은 세례요한이 하나님 나라를 외치며 그 실현을 위해 했다는 것이다. 요한은 그 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된 자라는 말이다.
29 (모든 백성과 심지어는 세리들까지도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옳으심을 드러냈다.
30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음으로써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물리쳤다.)
31 "그러니, 이 세대 사람을 무엇에 비길까?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그들은 마치 어린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서로 부르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하는 것과 같다.
33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 너희가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34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너희가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35 그러나 지혜의 자녀들이 결국 지혜가 옳다는 것을 드러냈다."
하나님의 나라를 공감하지 않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행태를 비판함이다.
먹어도, 먹지 않아도 비판을 한다면, 그 비판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꼬투리 잡고자 할 뿐 진정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이다. 진리는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 그들은 무지한 것이다.
3. 언젠가 말씀 나눈 우리의 시야, 곧 삶 인생은 우리의 기억과 경험인데, 그 보이는 것이 다인 사람의 인식은 사실은 좁다. TV에서 침수되고 수해 당한 지역만을 보여주니 온 나라가 다 침수된 것으로 인식할 수는 있는 인간의 한계는 있으나 실제로는 오히려 90% 이상 지역은 문제가 없다.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 나라에 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힘쓰자.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편한 게 아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며 그에게 소망을 두고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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