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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3 #실체와 그 의미 #창세기 18장 1-15절 본문

설교

20200913 #실체와 그 의미 #창세기 18장 1-15절

필명 이일기 2020. 9. 1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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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3설교

실체와 그 의미

창세기 18장 1-15절

 

1. 굿네이버스 광고를 보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굶주리고 어그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기부금 후원금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연민이 있기 때문이다.

 

연민이나 동정심, 사랑, 증오 미움 등등 감정은 타고난다. 사람들은 그런 감정에 따라 행동하며 산다. 이성도 그렇다. 현대적인 용어로는 감정 이성 모두 다 기억이다. 유전자 정보다. 그것들을 긍정하며 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환경 속에서 생존과 경험적 판단에 따른다. 궁극적으로 감정이나 이성은 무한 소급되는 영적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

 

마니교는 감정 이성 등등이 선과 악한 신에서 나온다고 본다. 어거스틴은 젊은 날 마니교를 믿었다가 기독교에 귀의하여 기독교를 확립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마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선한 신과 악한 신, 야훼 하나님과 사탄이다. 우리가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은 선한 하나님 때문이고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은 사탄에 의한 것이라는 논리다. 기독교에 대한 극단적인 주장이긴 하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상대방이 내 맘이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면 기분이 나쁘다. 감정이나 이성이 상한다. 반대 경우는 감정이나 이성적으로 좋다.

카톡에 글을 올렸는데 소리를 들었거나 일자 표시를 보았는데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 기분이 상한다. 형편에 따라 볼 수도 안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 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즉시 보고 즉시 답도 하면 맘 편하고 좋다. 성격이 꼼꼼하거나 무심하거나 그 중간이거나 하는 일반적 성향일 수 있다. 그런데 마니교는 이 과정에 선과 악이 간여 된다고 하는 것이다.

 

2. 어떤 행동이 선하고 악한가? 신이나 사탄이 나에게 작용하여 내 기분이 좋거나 나쁜 것인가? 유발 하라리는 아니라고 부정한다. 신이나 사탄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의미라는 것이다. 그의 책 “호모데우스 미래의 역사”에서 그는 세상을 힘과 의미로 분석을 한다. 종교, 신, 국가, 대통령 등은 실체가 아니고 의미라는 것이다. 그 의미는 사람들이 생물 물리적인 힘에 붙인 것이라는 말이다. 있는 실체만 인정하고 그 실체에 붙인 의미는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래는 의미가 무시되고 과학에 의한 물리 생물적인 세상만 인정되어 인간이 신이 될 것이라고 한다. 선조들이 경험한 것을 반영한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실체적 능력이 발휘될 것이라는 말이다.

카톡의 일자 표시는 그냥 일자 표시일 뿐이라는 것이고 그것이 뜻하는 읽지 않았다는 의미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레위기 18장 22절, 20장 13절의 동성애 금지에 관한 규정은 그 시대의 의미일 뿐 오늘날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고 했다. 신이라는 의미가 동성애를 금지했지만, 오늘날 자신과 같은 동성애자들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래 인간에게 있는 특정한 사람들의 동성애 성향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을 보라는 말이다. 삶의 목적이 행복에 있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대로 즐겁고 좋으면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동성애에 관하여 즐겁고 좋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인간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신이 배제되는 인본주의 사상이다.

 

3. 하라리의 말이 맞는가? 성경에서 나오는 말이 무시되어야 하는가? 본문에서 살펴보자.

창세기 18장 1-15절

1 주님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한창 더운 대낮에, 아브라함은 자기의 장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2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보니, 웬 사람 셋이 자기의 맞은쪽에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장막 어귀에서 달려나가서, 그들을 맞이하며,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하였다.

3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손님들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 이 종의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4 물을 좀 가져 오라고 하셔서,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시기 바랍니다.

5 손님들께서 잡수실 것을, 제가 조금 가져 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에게로 오셨으니, 좀 잡수시고, 기분이 상쾌해진 다음에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정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6 아브라함이 장막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지고 와서, 반죽을 하여 빵을 좀 구우시오."

7 아브라함이 집짐승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서, 기름진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 하인이 재빨리 그것을 잡아서 요리하였다.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만든 송아지 요리를 나그네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나무 아래에서 먹는 동안에, 아브라함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댁의 부인 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장막 안에 있습니다."

10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음 해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찾아오겠다. 그 때에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등지고 서 있는 장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들었다.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고, 사라는 월경마저 그쳐서,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난 사람이다.

12 그러므로 사라는 "나는 기력이 다 쇠진하였고, 나의 남편도 늙었는데, 어찌 나에게 그런 즐거운 일이 있으랴!" 하고, 속으로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13 그 때에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면서 '이 늙은 나이에 내가 어찌 아들을 낳으랴?' 하느냐?

14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 다음 해 이맘때에, 내가 다시 너를 찾아오겠다. 그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15 사라는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였다.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

 

사라는, 하라리가 인정하지 않은, 그저 의미일 뿐이라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년 이만한 때, 하라리가 실체로 인정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에 남편이나 자신이 (하라리가 인정하는) 아이를 낳을 나이가 아닌, 생물 물리적 능력 있는 그대로의 실체로서는 불가능한데, 그런 말을 하니 하나님의 말을 믿지 못해서 하나님도 참 웃기시네 하며 속으로 웃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라를 보고 하나님은 나를 못 믿는단 말이냐? 하며 웃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는 사라에게 너는 웃었다고 사실을 말한다. 창세기 21장을 보면 사라는 이삭을 낳고 나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웃음을 주었다고 하며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나이에 아이를 낳다니 하며 웃지 않을 수 없겠지 하고 말한다. 이삭은 웃다는 의미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살에 이삭을 얻은 것이다.

 

성경은 물리 생물적 실체인 인간의 육체나 태어난 실체 이삭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삭은 웃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의미를 해석하며 행복해한다. 생물 물리적 실체도 중요하지만, 세상 모든 생물 물리적 실체는 뜻이 있고 역할이 있다. 사람들은 그 뜻과 의미대로 산다. 감정이고 기억이며 이성이다.

 

4. 왜 사는가? 의미가 있어서 산다. 그냥 육체만으로 살지 않는다. 그 의미를, 그 역할을 생각해야 한다. 사는 이유, 사는 뜻과 의미, 그에 따르는 행동과 인생이 행복이다. 육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과 기억도 중요하다. 판단도 중요하다. 하나님이 주신 타고난 실체를 보고 의미를 알며 감사하며 행복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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