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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설교 고난에도 확실한 증거 히브리서 2장 1-4절 본문
20201213설교
고난에도 확실한 증거
히브리서 2장 1-4절
1. 코로나 대유행 위기에 있다. 전주는 그래도 좀 낮다. 개인 방역을 더 철저히 해야겠다. 마스크 철저히 하고 가급적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지내자.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방역에 최선을 다하며 마스크 제대로 쓰고 오늘 교회서 예배를 드린다.
특별히 변경될 상황이 없으면 다음 주일은 성탄 예배로 드린다.
혹 비대면 예배를 위하여 줌 앱을 사용할수도 있게 준비하자.
2. 욥기 1-7장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자.
1장 1절-2장 10절은 욥이 고난당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2장 11절-3장은 친구들이 찾아오고 욥은 하나님께 자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불평을 한다.
4-5장은 친구 엘리바스가 욥에게 위로하며 자신이 문제가 없는지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6-7장에서 욥은 자신을 이해하지 않고 뜬금없는 말을 하는 친구에게 자신의 잘못 없음을 말한다. 오히려 자신을 책망하는듯한 친구들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하는 말로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며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며 괴로움을 쏟아 놓는다.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이렇게 괴롭게 하느냐고 한다. 코로나 확진자의 심정일 거다.
욥은 자신의 고난에 대한 상황을 이해하고자 했다. 왜 자신에게 고난이 있는지? 종국에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한 것이다.
3. 어떤 것을 알고자 한, 종래 인생을 알고자 하는 데에 대한 철학
데카르트는 1637년 쓴 “방법서설-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에서, 세상 모든 지식은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고 했다. 어떤 지식이나 사물 등을 알아보려면 방법적으로 회의(의심)를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유명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프랑스어 je pense, donc je suis<라틴어 Cogito, ergo sum>)는 생각하는 나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고 때문에 직관적으로 나는 살아있으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는 것이다. 신이 부여한 인간 능력인 생각으로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확실하다고 한 것은 신이 완전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생각을 준 신이 불완전하면 생각 자체가 불완전하여 그러면 생각을 할수없는 것이니 신이 불완전한 생각을 인간에게 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생각 자체는 명백히 완전하다는 것이며 그 완전한 생각으로 인하여 생각하고 있는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데카르트는 그리스도교 라틴어 학교에서 신앙을 이성적으로 가르친 스콜라철학 영향을 받았다. 스콜라철학은 신을 가르치는 철학이다. 신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신을 믿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합리주의자 라이프니츠는 사람에게 본래 있는 본유의 이성만 확실한 것이라고 했다. 합리주의는 교조주의, 깡보수주의, 문자주의다. 경험주의자 데이비드 흄은 경험한 것만이 진실이라고 했다. 경험주의는 회의주의, 자유주의다.
어떤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이성인가 경험인가 논쟁 가운데 이들을 통합하려 했던 칸트는 1787년 출간한 “순수이성비판”에서,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잘 연구해보면 인간 이성이 알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세상은 인간이 경험하여 알기 전 이미 신으로부터 주어진 선험적인 것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신은 있다고 한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한다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있는 도덕률(양심)은 완전한 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 책 끝에 “내 위에는 반짝이는 하늘(신)이 있고, 내 안엔 (신이 준 양심)도덕률(인간)이 있다”(Der gestrinte Himmel ueber mir und das moralische Prinzip in mir)고 썼다.
신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말을 위하여 철학을 언급했다.
욥의 의문에 대한 답은 뜬금없는 친구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밖에 없다.
3.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신이 없다면 내가, 자연이, 우주가 우리 눈에 보일 수 있을까? 알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있는 것은 다 신이 없다면 없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볼 때, 돌아가는 원리를 볼 때 신은 있어야 한다. 신이 없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살아야 할 목적이, 의미가 없다. 신이 없다면 세상 모든 것은 없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없다면 우리 인간도 아무 의미가 없다. 신을 인식해야 세상과 우리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인생이 의미가 있다.
시편 144편 3-4절, 3 주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생각하여 주십니까? 인생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하여 주십니까? 4 사람은 한낱 숨결과 같고, 그의 일생은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비슷한 말씀이 시편 8편에 나온다. 3-4절에서는, 3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라고 고백하며 찬양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교회서나, 세상 크고 거대한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과 그 반대 등등을 볼 때 하나님을 느낀다. 그런데 일상에서 생활하다 보면 뭔 하나님? 또는 그냥 살다가 죽는 거지 뭐 하면서 하나님을 잊고 산다. 그러다가 또 혼자 곰곰 생각하거나 위험이나 질병이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하나님 하는 것이 인간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 때 생동감이 있고 신선하며 활력이 넘치고 희망이 있으며 의미가 있고 위대한 존재가 된다. 고귀한 존재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불쌍하고 하찮으며 부질없고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존재를 인정하면 사는 재미가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 쓸데없다.
4. 히브리서 2장 1-4절은 고난에도 우리가 확증하여 행해야 할 바를 말씀한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바를 더욱 굳게 간직하여,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일이 없어야 마땅하겠습니다.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효력을 내어, 모든 범행과 불순종하는 행위가 공정한 갚음을 받았거든,
3 하물며 우리가 이렇게도 귀중한 구원을 소홀히 하고서야, 어떻게 그 갚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 구원은 주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것이요,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확증하여 준 것입니다.
4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표징과 기이한 일과 여러 가지 기적을 보이시고, 또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의 선물을 나누어주심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여 주셨습니다.
8절에서 마지막 절까지 읽는다.
8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사람에게 복종시키심으로써,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기로는, 아직도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9 예수께서 다만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셔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아쓰신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를 영광에 이끌어들이실 때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으로써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분이신 아버지께 속합니다. 그러하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12 그리하여 그분은 "내가 주님의 이름을 내 형제자매들에게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서 주님을 찬미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13 또 "나는 그를 신뢰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보십시오,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4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15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6 사실,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도와주십니다.
17 그러므로 그는 모든 점에서 형제자매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18 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5. 이해하기 어려운 인생이지만 하나님을 이해하자.
있는 것은 있다고 하자. 신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살면 인생이 활기가 있다.
고난에도 하나님을 믿고 인생을 즐거워하며 기뻐하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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