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블로그

20201220설교 포로와 외로움 시편 137편 1-4절 본문

설교

20201220설교 포로와 외로움 시편 137편 1-4절

필명 이일기 2020. 12. 20. 12:52
반응형

20201220설교

포로와 외로움

시편 1371-4

 

1. 오늘은 코로나가 극성인 지금임에도 성탄 및 성찬 예배를 드린다.

 고기도 에르고 숨과 데우스 시트

 지난 주일 데카르트는 그의 책 방법서설에서, 뭔가를 알려면 모든 것에 방법적 회의, 의심을 하고 명석한 판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생각하는 존재(라틴어 cogito, ergo sum)이기에 내가 있는 것은 확실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은 완전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스콜라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있어야 한다(라틴어 dues sit)고 했다. 확실한 고기토 에르고 숨은 완전한 데우스 시트에 의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있어야 한다에 근거해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존재 증명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 연관한 그의 저서 성찰에서, 사물을 아는데, 인식하는 데 감각은 오류가 있고, 신체 이해는 꿈의 원리에 의하면 문제가 있으며, 수학 이해는 유한 지성(정신, 영혼)을 아는 데는 악마의 원리에 의하면 문제가 있다 했다. 무한 영혼(지성, 정신)인 신만이 완전하고 필연적이어서 알수 있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하나님의 존재 증명을 한다.

 결론적으로 인생(사물, 인간, 영혼)은 온전한 하나님 안에서만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나?

 

2. 이스라엘 포로생활과 외로움

 먼저 본문 시편 137편을 보자.

1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2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3 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하는구나.

4 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조국 이스라엘에서 사람들과 이별하며 포로로 잡혀 와 바빌론에 살고있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가끔씩 바빌론 강변 자연으로 가 자신들의 외로움을 자신들에게, 곧 하나님께 토로하는 모습이다. 조국 땅에서 하나님을 노래하며 살았던 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들을 한탄한 것이다. 자신들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코로나에 포로로 붙잡힌 지금, 많은 사람이 활동을 못 해서 답답해하고, 사람들을 못 만나 외로워한다. 죽고싶다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죽음을 의식하기 때문에 가장 심한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은 홀로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3. 외로움과 고독과 사랑

 최근에 돌아가신, 돌아가시기 전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시고, 젊었을 때 신을 궁극적 관심 또는 존재라 한 현대 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을 두 가지 영어 단어로 표현했다. 홀로 있는 것이 고통스러워 도피하고자 하는 부정적인 외로움(loneliness)이 있고, 홀로 있어서 오히려 영예로운 긍정적 고독(solitude)이 있다고 했다. 둘 다 홀로 외로이 지내는 상태지만 다르다.

 

 틸리히는 자연의 침묵을 조용히 즐기는, 나뭇잎의 바스락거림, 구름의 움직임, 바다의 출렁거림을 지켜보고 귀를 기울이며 자기의 영혼을 정화하고, 그리고 다시 세상에 돌아와 일상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 일상으로 돌아가 평온히 삶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외로움을 고독으로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고독한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사랑은 외로움을 극복하게 한다.

 

4. 예수님의 고독과 십자가, 성탄 의미

 하나님은 때로 마치 코로나에 붙잡혀 있는 것과 같이 우리를 철저히 분리하고 이별하게 하여 고독하게도 하신다.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그의 사역 시작에 앞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악마의 시험을 받는다. 악마에 포로된 것이다. 고독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과 대면, 시험받는 것이다.

 그런데 13절 표현을 보자. 악마는 모든 시험을 마치고 물러가서 어느 때가 되기까지 예수님에게서 떠나 있었다고 했다. 십자가에 달릴 때까지였을 것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외로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십자가를 기꺼이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한편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으나 외로웠다. 마태복음 1423절에서 보듯 자주 홀로 산을 찾았다. 산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의미가 있는 장소였을 것이다. 외로움을 견뎌내며 고독하게 십자가의 길을 당당히 선택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자신이 탄생한 뜻을 이룬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산 것이다. 오늘 우리는 그를 기념하며 그 의미를 새기고 있다.

 

5. 결론

 반복하는 말씀이지만 인생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면 외롭다.

 그러나 인생을 긍정하고 이해하면, 하나님을 시인하면 희망이 있다.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외로움을 극복하자.

 사랑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