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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설교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로마서 5장 9-11절

필명 이일기 2021. 5. 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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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설교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로마서 59-11

 

1. 코로나 백신 예방주사 예약하고 맞아야 하는 분들은 별별 부정적인 말들이 있지만 걱정할 것 없이 맞아야 한다. 그래서 코로나 걸릴 염려에서 벗어나자.

 

지난 주일에는 기독교 핵심 교리가 종합 정리된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신약 전반에서 예수님에 대한 증언의 말씀을 바울과 복음서 기자 입장에서 좀 더 나은 삶이라는 관점에서 말씀 나눴다.

 

5월 가정의 달에 관련된 말씀을 나눠야 하지만, 우리의 믿음 점검을 위하여, 그리고 현재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 신앙 기독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계속하여 살핀다.

 

굳이 뭐하러 이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분들도 있다. 대부분 믿는 사람들과 목사는 그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단순히 믿음으로 살라고 반복한다.

 

하지만 믿음이 희미해지고 세상 가치관이 우리를 덮치고 있는 이때는 처음으로 돌아가 믿음생활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2, 기원후 30년경 예수님이 이 세상에 실질적으로 등장하여 사람들을 가르치고 고치시며 하나님 말씀을 선포한 것은 정형화된 유대 사회와 로마에 의하여 무력으로 지배된 세상을 흔들었다.

 

예수님 이후 최소 10년에서 30년이 지난 대략 20년 후 기원후 40-60년대 대략 50년대 바울은 아시아와 유럽 교회들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밝혀 기독교 초석을 놓는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십자가의 대속을 받고 부활과 영생의 삶을 살자고 한 기독교 교리를 확립한 것이다.

 

구체적인 바울의 그리스도교 교리

로마서 4-6장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과 약속에 따라 사람들의 문제(원죄와 본죄?), 한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했다.

고린도전서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골로새서 21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바울의 확고한 신념과 사명

어떻게 그렇게 위대하신 그리스도 메시아 예수님이 그 젊은 나이에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었어야 했냐는 정통 유대교의 반기독교에서 전향한 바울 입장에서는 심각한 고민이었다.

그 해답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사람들을 위한 제물로 죽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울의 확고한 신념이었고 사명의 기반이었다.

고린도전서 118, 22-23

십자가의 말씀(십자가의 도)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후대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여 신봉하였고, 오늘날도 이러한 입장에 있는 이들이 그리스도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바울 해석 진위 판단 선택과 책임

그렇다면 과연 그 핵심 교리 내용,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문제를 대신하여 죽었는가? 그래서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았는가? 그러나 그것은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일 수밖에 없으므로 각자 신념으로 남을 뿐이다. 받아들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다.

물론 회색 지대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올바른 것인지 분류와 구분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래서 파스칼은 내기 게임을 하자고 한다. 믿음의 확실성을 가질 것인지 입장을 정하면 된다. 각자가 내린 결정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다.

에베소서 28절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요한복음서 318절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3. 한편 복음서 저자들은 바울 이후 20~30년 후인 기원후 70-100, 마가 70년대, 마태와 누가 80년대, 요한 90년대에 예수님의 생애, 특히 십자가에서 죽기 전 3여 년 기간을 중심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어떻게 삶을 살았는지 추적하여 기록한다.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부차적이다. 또한 십자가와 부활을 다루기는 하지만 더 중점적인 부분은 역시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이다.

다시 말하면, 많은 사람이 나서서 예수님 생애의 삶을 기록하는 가운데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삶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떻게 살았는지를 책으로 남긴 것이다.

마태의 유대인들에게서, 누가의 이방인에게서, 요한의 공동체에게서, 마가의 고난받는 사람들에게서 예수는 구세주라는 것이 받아들여져서 그들의 신념이 되고 신앙이 된 것이고 그들로 인하여 교회공동체가 생성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바울 서신과 4 복음에서 그리고 몇몇 사도들의 서신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의하여 인정되고 받아들여져 채택되어 그리스도교 경전 신약으로 공인되었다.

 

4. 이후 교부들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에 관한 논쟁을 거쳐 그리스도교에 관한 교리를 확정한다. 바울이나 복음서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신념은 받아들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별되었다.

 

그런데도 문제들은 남아 논란은 계속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정체성과 영향은 전 유럽 사회 문화를 만들고 서구 문명을 낳았다.

 

언젠가 언급했지만 급기야 중세 보편 논쟁에서 볼 수 있어서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보편적으로 어디에서나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인 것처럼, 하나님은 볼 수 없고 그릴 수 없어 보편적이나 사람은 볼 수 있고 그릴 수 있어 개별적이다. 그러니까 현실에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인간의 인식과 사고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실재론과 개별 보이는 것과 달리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고 그리지 못하는 것은 이름만 있다는 유명론이 대립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온건 실재론으로 완성하는 듯했지만,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하는 과학적 발전에 연결된, 이름만 있을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명론자들에 따라 신은 실제 존재한다는 실재론은 신학에 머물고 철학은 신학에서 분리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 교리와 사상을 그리스 철학적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라틴어 학교라는 뜻의 스콜라 철학은 교회공동체 안에서만 존속하게 된다.

 

오늘날은 진화론, 상대성이론과 빅뱅 이론에 따라 원자론에 기반한 천체 물리 뇌과학으로 그리스도교는 자체 안에 위축되어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이 등장한 시대에서도 그리스도교는 계속하여 존속하고 있다. 숭배나 제의 요소를 탈색하고 교리, 계시와 섭리를 유전과 환경 영향으로 재해석하여 합리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믿음의 문제다. 믿고 안 믿고는 각자가 결단하는 것이다. 그 책임도 각자가 하는 것이다.

 

5.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믿든지 안 믿든지 할 수밖에 없다. 회색 지대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확신하여 믿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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