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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설교 더 나은 생명의 삶을 위하여 요한복음 20장 31절

필명 이일기 2021. 5. 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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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설교

더 나은 생명의 삶을 위하여

요한복음 2031

 

1. 믿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신약성경 말씀 핵심 내용을 살핀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시대 사회적으로 코로나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하여 반기독교적 분위기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래야 하는지에 대하여 재고해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자신들의 신앙도 희미해져 있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의 사명

하나님에 의해 나신 예수님

신약성경은 세상 기원 시점에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하여 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서 1:5] 하나님께서 천사들 가운데서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히브리서 5:5]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여서 대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목적

히브리서는 예수님에 대해 논하는 기독론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내용을 볼 때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 전통을 잘 알고 있고, 편지를 받은 수신자들이 예수 믿는 신앙으로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핍박으로 인하여 전통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히브리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신앙적 확신 가운데 핍박을 견디며 복음을 굳게 하고자 한 목적으로 써졌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전통 유대교가 신봉해온 예언자들, 천사들, 모세, 대제사장 보다 우월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 한 번으로 인간 죄를 대속하는 희생제사였다.

그러므로 배교하지 말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바라며, 현실의 고난을 견디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또한, 같은 의미로, 사람들이 의심하긴 했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신약성경 전반에 여러 사람을 동원하여 증언하고 있다.

시험하는 자 악마조차도 [마태복음서 4:1-11], 귀신 들린 사람도 [마태복음서 8:29], 배 안에 있던 사람들도 [마태복음서 14:33], 시몬 베드로도 [마태복음서 16:16], 불신 속 심문하던 대제사장도 [마태복음서 26:63], 십자가 처형 시 지나가는 사람들도 [마태복음서 27:40],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는 사람들도 [마태복음서 27:54] 수태고지 천사도 [누가복음서 1:35], 세례 요한도 [요한복음서 1:34], 나다나엘도 [요한복음서 1:49], 예수님 자신도[요한복음서 5:25][요한복음서 10:36][요한복음서 11:4], 마르다도 [요한복음서 11:27], 유대 사람들도 [요한복음서 19:7], 바울 되기 전 사울도 [사도행전 9:20], 바울도 [로마서 1:4], [갈라디아서 2:20], [에베소서 4:13], [로마서 5:10], [히브리서 6:6], [히브리서 7:3],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도 [고린도후서 1:19], 요한도 [요한11:7], [요한13:8], [요한14:15], [요한15:1-21], [요한계시록 2:18]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의 사명

그러나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성부 하나님은 아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려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려고,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왔다.

 

더 나은 사람이란

더 나은 사람이란 프리드리히 니체(1844. 10. 15 ~ 1900. 8. 25) 철학의 근본 개념인, 독일어 위버멘쉬 Übermensch. 우리말로 번역하면 초인?이다.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사람?이다. 영어 번역은 Overman 또는 Superman이다. 니체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모두를 위한, 그러나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Also sprach Zarathustra: Ein Buch für Alle und Keinen)”에 나온 말이다.

짜라투스트라는 페르시아의 예언자이자 종교창시자 조로아스터다. 부처, 노자, 장자, 소크라테스, 헤라클레이토스 등과 같은 시대이며 기축시대인 기원전 6세기 사람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스트라우스의 교향곡으로도, 영화로도, 수많은 해석책으로도 만들어졌다. 대지에 충실하라는, 현실에 충실하고 긍정하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사는 사람으로 인류는 변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니체는 6대째의 목사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36살 때 니체 나이 6살에 죽었다. 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았고 사랑했다고 했다. 다음 해 남동생도 죽는다. 그래서 어린 시절 할머니, 어머니, 여동생과 결혼하지 않는 아버지의 두 여동생 고모와 두 여자 하녀 함께 살았다.

소년기 음악과 언어에 특출했다. 라이프츠대학에서 신학과 고대철학을 한 학기 공부하고 데이빗 스트라우스의 예수의 생애라는 책 영향 등으로 자퇴했다.

군 복무 후 신학 교수 리츨의 영향으로 26살에 바젤 대학 고전문헌학 교수로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될 정도로 인정받는 천재였다.) 10여 년을 봉직하다 건강 문제로 36세에 퇴직한다.

그 후 많은 곳을 여행하고 10여 년간 스위스의 높은 알프스산에서 요양과 저술을 하며 지내다 병으로 10여 년간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돌봄 가운데 190057세에 죽어 아버지 묘 곁에 안장된다.

그의 비극의 탄생”, “안티 그리스도”, 신약성경 복음서를 모사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권력에의 의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 사람을 보라등등 저술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니체가 당시까지의 전통적인 기독교의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인간이 만든) 신은 죽었다고 했기 때문에 오해하여 반기독교주의자라 평가하는 부류들이 있다. 그러나 니체는 문제가 있는 당시 가치관을, 현실을 긍정하고 창조적으로 살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대안 삼아 정립하여 모색했다. 사실 깊이 살펴보면, 니체가 하나님 존재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 한 분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철저한 신앙을 요구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니체를 부정적이고 문제가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니체는 그의 마지막 책, “이 사람을 보라에서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 했을 정도로 모든 것을 긍정한 철학자였다.)

 

예수님 사명의 방법

예수님은 사람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고치시며, 사람들 대신 속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여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주었다. 자신의 그런 사명대로 개성 있는 삶을 살았다.

 

예수님 사명 한 문장으로 요약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했다.

 

3. 바울과 복음서 기자들의 사명

바울의 사명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듯 바울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여 사람들을 구원하지는 않았다.

기원후 40~60년대에 바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의미 뜻을 비유대인에게 전했다.

[고린도전서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믿어 율법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라고 했다.

 

복음서 기자들의 사명

기원후 70~90년대에 복음서 기자들은 바울의 사명과 다른 삶을 살았다. 복음서 기자들 간에도 달랐다. 따라서 복음서 기자들의 복음서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서로 다르다. 각각의 역할과 사명이 달랐다. 모두 다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과 이적과 치유를 증언했으나, 마태는 유대인에게, 누가는 이방인들에게, 요한은 그의 공동체에, 마가는 이방의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구세주라고 전한 것이다. 예수님에 관한 복음, 유앙겔리온, 새로운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한 것이다.

[마가복음서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를 따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한 것이다.

 

4. 하나님의 아들, 자녀들 삶

성경은 인류,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누가복음서 3:38] 에노스, , 아담에게 이르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3:26]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에베소서 1:5]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요한13: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자녀라 일컬어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15:20]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그 참되신 분을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이해력을 주신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 참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분이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주체적인 하나님 자녀들 삶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이 아니듯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이 되라고 하지 않았다. 될 수도 없다. 바울도 아니다. 성경 기자도 아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나 열심당이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리,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산다.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주체다. 세상 누구도 아닌, 유일한 자신, 남과 비교할 것이 없는, 존귀한 존재다. 자신의 경험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신의 가치관으로, 자신의 타고난 성정대로 사는 존재다.

요한복음 기록목적과 같은 삶을 사는 존재다.

[요한복음서 20:31]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더 나은 생명의 삶을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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