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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설교 역할, 임무, 할 일의 변화 사도행전 14장 8-17절 본문
20211031설교
역할, 임무, 할 일의 변화
사도행전 14장 8-17절
1. 도심 가로수에도 단풍이 물들고 있다. 자연이 계절에 따라 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10월 31일, 10월 마지막 날 주일이다. 특별히 이날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종교개혁 기념 주일 지킨다.
"개혁된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라틴어 에클레시아 리포르마타 젬페르 리포르만다 에스트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영어 the reformed church should always be reformed, 짧게 에클레시아 젬페르 리포르만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영어 the church reformed, always reforming)는 말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Αυγουστίνος Ιππώνος), 영어 표현 어거스틴이 말한 이래,
루터, 깔뱅 등 종교개혁가들에게는 하나의 기치(旗幟)였다.
현재에 머물지 말고 항상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Facebook) 회사 대표 저커버그(37살)는 페이스북 회사 이름을 메타(Meta)로, 상징 로고는 무한대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메타(Meta)는 "사이에, 뒤에, 넘어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메타(μετά)에서 유래한 영어 표현이다. 메타피직스(Metaphysics), 메타유니버스(Metauniverse)와 같이 어떤 단어 앞에 붙이는 접두어다. 그러면 그 단어 이상을 의미하거나 그 단어를 넘어서거나 초월한다는 뜻이다.
우주 또는 현실을 뛰어넘는, 초월하는 가상공간이나 증강 현실인 메타유니버스(Metauniverse)는 메타버스(Metaverse)로 축약하여 사용된다고 지난번 말씀에서 설명했다.
그리스어 메타푸지카(metafusika, Μεταφυσικα?)에서 나온 메타피직스(Metaphysics)는 플라톤(Platon, BC 427-347)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의 자연학 책, 그 다음이라는 책 제목으로부터 유래한다. 제1철학이라 부르거나, 또는 우리말로 형이상학(形而上學)으로 번역되었다. 피직스(Physics)라는 말에 접두어 메타를 붙인 말이다. 형이하학(形而下學)인 피직스(Physics) 자연학 또는 물리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에 있는, 보이는 것과 관련된 학문이다. 그러니까 메타피직스(Metaphysics)는 있는 그것을 뛰어넘는, 초월하는, 그 이상의 것, 보이는 세상 것을 넘어서는, 그 배경에 있는, 그 기저에 있는, 그 근본에 관한 학문이다. 사전적으로 존재로서 존재를 연구하는, "존재의 실체와 궁극적인 원리를 감각이 아닌 순수한 사고를 통해 알고자 하는 학문"이다.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신은 존재하는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의 물음을 통해, 우주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체계로 파악하려 하며, 사물의 배후에 있는 구조와 본질을 밝히고자 함"이다. 포괄적으로는 세상의 근본적인 것, 곧 신으로 표현되는 것과 관련된 학문이기 때문에 일부분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메타로 바꾼 배경은 그 페이스북 회사 내부 고발자에 의하여 페이스북이 증오를 유발하고, 허위 정보를 드러내고, 극단주의적 사상을 유포하며, 10대들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폭로하여 회사의 이미지가 안 좋아졌기 때문에 쇄신하고자 함이다. 이름 하나 바꾼다고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하겠지만 이름은 이미지를, 인상을 사람들에게 남긴다. 페이스북은 사람들과의 관계 소통을 위한 도구인데, 그 고유한 역할을 계속 수행하면서도 가상과 증강 현실을 포함한 초 우주 플랫폼(platform) 차원으로 발전하고자 한 계획이다. 해야 할 일을 확장시키겠다는 것이다. 회사 이미지 제고를 통하여 고유한 사람들 간의 관계 연결 역할을 넘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카톡과 같이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SNS(Social Network Service, 사회, 곧 사람 사이의 관계 연결 서비스)는 차치하고, 쉽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 이혼을 했다면, 사람들은 그를 이혼한 사람이라고 꼬리표를 달아 인식하며 말을 한다. 그런 선입견을 갖는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하여 이름 변경 개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개명은 한편으로 보면 지난 삶을 바꿔 변신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렇듯 세상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자연에서, 세상에서, 사회에서, 체제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동료와 친구들과 관계에서, 사람들과 자연 각각의 관계에서 그 존재의 목적, 역할, 사명, 소명, 임무, 할 일 등을 바꾸어 변화하며 적응한다. 변신을 통한 자신의 역할 변화를 추구하며 세상을 사는 것이다.
2. 사도행전 14장 8-17절, 18-28절, 변화된 바울, 그의 역할, 임무, 해야 할 일, 소명, 사명, 책임, 목적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되어서, 걸어본 적이 없었다.
9 이 사람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바울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알고는,
10 큰 소리로 "그대의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벌떡 일어나서, 걷기 시작하였다.
11 무리가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서, 루가오니아 말로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리고 그들은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부르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바울이 말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기 때문이다.
13 성 바깥에 있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성문 앞에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두 사람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였다.
14 이 말을 듣고서, 바나바와 바울 두 사도는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서 외치면서,
15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들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하나님께서는 지나간 세대에는 이방 민족들이 자기네 방식대로 살아가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17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고, 먹을거리를 주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18 두 사도는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사하지 못하게 겨우 말렸다.
19 그런데 유대 사람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거기로 몰려와서 군중을 설득하고, 바울을 돌로 쳤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다.
20 그러나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섰을 때에, 그는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났다.
바울의 삶은 목적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오다
21 바울과 바나바는 그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를 얻은 뒤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23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한 뒤에,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고,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맡겼다.
24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비시디아 지방을 거쳐서 밤빌리아 지방에 이르렀다.
25 그들은 버가에서 말씀을 전한 뒤에,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향하여 갔다. 이 안디옥은, 그들이 선교 활동을 하려고, 하나님의 은혜에 몸을 내맡기고 나선 곳이다. 이제 그들은 그 일을 다 이루었다.
27 그 곳에 이르러서 그들은 교회 회중을 불러모으고서,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28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지냈다.
이방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바울의 사명은, 삶은,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수행되었다. 그것은 이미 율법적 가치관이 믿음의 가치관으로 변화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을 보면, 바울은 순전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자신의 삶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 입장에서 경직된 모세의 율법 전통에서 벗어나 사람은 누구나 차별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습이 여러분의 눈 앞에 선한데, 누가 여러분을 홀렸습니까?
2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을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믿음의 소식을 들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와서는 육체로 끝마치려고 합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은, 다 허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참말로 허사였습니까?
5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율법을 행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믿음의 소식을 듣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6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운 일로 여겨 주셨다"는 것과 같습니다.
7 그러므로 믿음에서 난 사람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여러분은 아십시오.
8 또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을 믿음에 근거하여 의롭다고 여겨 주신다는 것을 성경은 미리 알고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미리 전하였습니다.
9 그러므로 믿음에서 난 사람들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10 율법의 행위에 근거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기록된 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하여 행하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 아래에 있다" 하였습니다.
11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그러나 율법은 믿음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의 일을 행하는 사람은 그 일로 살 것이다" 하였습니다.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는 모두 저주를 받은 자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4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율법과 약속
15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사람의 관례를 예로 들어서 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적법하게 유언을 작성해 놓으면, 아무도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거기에다가 어떤 것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
16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을 말씀하실 때에, 마치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것처럼 '후손들에게'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단 한 사람을 가리키는 뜻으로 '너의 후손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사람은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17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맺으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이를 무효로 하여 그 약속을 폐하지 못합니다.
18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그것은 절대로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유업을 거저 주셨습니다.
19 그러면 율법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율법은 약속을 받으신 그 후손이 오실 때까지 범죄들 때문에 덧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개자의 손으로 제정되었습니다.
20 그런데 그 중개자는 한쪽에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종과 아들
21 그렇다면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반대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중개자가 준 율법이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의롭게 됨은 분명히 율법에서 생겼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이 죄 아래에 갇혔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약속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24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25 그런데 그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우리가 이제는 개인교사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27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8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를 언약으로 해석한다. 그 하나님의 언약이 율법에서 복음(믿음)으로 넘어가는 다리에 그리스도의 사명이 수행되었다는 것을 언급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은 그러한 일을 위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명대로 하나님 복을 받게 하는 일이 바울의 일, 역할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바울은 자신의 임무의 변화를 겪은 사람이다. 청년까지는 율법의 실천을 위하여 반 율법적인 자들을 적대했지만, 예수를 환상 가운데 체험하고 난 뒤에는 예수를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선교하는 자신으로 바꾼 것이다.
바울과 예수님의 소명과 사명, 할 일을 말했지만, 모두가 형이상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사는 것이 복이라는 근본 취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인생에 즐거움을 주고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여기에 유대인으로 대표되는 자국인이나, 외국인이라고 볼 수 있는 이방인이나, 주객의 입장에서 주인이나 노예나, 기타 장애인이나, 어느 누구나 모든 사람이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 사실에는 사람들은 다 구별된다. 차이가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 로마인과 유대인 다 다르다. 역할면에서도 그렇다. 그것이 각 사람의 이 세상에서의 삶이다. 개성 있는 삶이다.
3. 페르소나는 이성적인 본성(本性)을 가진 개별적 존재자다. 인간, 천사, 신 등도 페르소나로 부른다.
인간 라틴어 페르소나는 본래는 어릿광대가 쓰는 가면이었으나, 다른 사람에게 인식되는 외적인 인격, 개성, 성격, 캐릭터다. 본모습이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꿈의 해석을 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제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의 잠재적인 무의식 상태의 특성을 말했다. 인간 자신을 나타내는 특성이다. 인간에게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잠재되어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체제, 사회, 사람들 사이에 해야 할 일이 각 사람 안에 새겨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각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개성대로 산다. 그러나 자각하면 그때부터는 바뀌어 변화된 삶을 산다.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다. 인권이다. 그래서 인간은 존중되어야 한다. 존중받았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세상도 그와 같이 되도록 변화되어야 한다.
선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도구로 사용한다.
내 삶이, 내 임무가,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수행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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