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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 #골로새서 3장 16-17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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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 #골로새서 3장 16-17절

필명 이일기 2022. 11. 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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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
골로새서 3장 16-17절

 다른 생각과 가치관에 의한 다른 행동과 예절
 믿음과 종교가 다르면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다른 가치관에는 다른 말이나 행동이나 예절이 있다.
 여러분이 저에게 향년 65세라고 하면 잘못된 말이다. 저희 아버님이 살아생전 91살까지 사셨기 때문에 향년 91세로 돌아가셨다고 하면 옳은 표현이다. 그러니까 향년은 죽은 사람이 이 세상 살았던 기간이므로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 표현하는 것이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사용하면 잘못이다. 유교 한문 문화에서 나온 말이다.
 저희 아버님이 운명을 달리 했다와 유명을 달리했다 중 어느 말이 맞는 말일까? 유는 저 세상, 명은 이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달리했다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유명을 달리 했다가 맞다. 운명은 옮길 운 목숨 명이고, 이 세상 삶을 마치고 저 세상으로 옮겨갔다고 하는 말이므로 운명하셨다는 맞지만 '운명을 달리 했다'고 하면 옮겨가신 것을 달리 했다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말이 안된다. 유교 한문 문화에서 나온 말이다.
 소천(召天)은 부를 소 하늘 천이니 하늘이 불렀다는 것인데, '소천하였다’고 하면 내가 하늘을 불렀음을 하였다가 되어 내가 하늘을 불렀다는 말이니 하늘이 나를 불렀다는 말과는 전혀 반대의 잘못된 사용이다. 내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고 하는 “소천을 받았다”고 해야 옳다. ‘소명(召命)’을 받았다고 하지 소명하였다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스스로 하는 능동과 남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은 구분해야 한다. 어법상 수동형 쓰는 것이 맞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냐 내가 한 것이냐에 따라 다르다. 죽는 것은 하나님이 부른 것이지 내가 부른 것은 아니다. 내가 스스로 죽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오늘날 존엄사에 대한 논쟁이 있기는 하다. 존엄사를 인정하면 소천하였다고 할 수도 있다. 기독교 문화에서 나온 말이다.
 ‘고인의 명복(冥福)을 빕니다.’는 죽은 뒤에 저승에서 행복하기를 빈다는 말이고, 무간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에게 기도를 하는, 곧 죽은 사람을 저승에서 천국으로 보낼 때 행하는 천도(薦度) 의식에서 하는 발원(發願)을 의미하기 때문에 불교에서 행하는 일 불사(佛事)이므로 기독교인들에게 사용하는 것은 결례다. 불교 가치관이 반영된 말이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안 맞는다. 기독교인들에게는 ‘고인의 영면을, 또는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고 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와 여러 말들과 행동과 책임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는 10월 31일이다. 가톨릭 모든 성인의 날(All Hallows(=Saint) Day) 11월 1일의 eve 전야다. 실제는 켈트족 전통에서 나온 것으로, 이승과 저승이 연결되는 겨울에 나오는 유령에 대항하는 날이다. 이러한 유래의 할로윈 축제를 즐기던 젊은이들이 이태원에서 참사를 당했다. 현 정권은 이 참사를 적절하게 대비하지 못했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사망자 156명 부상자 187명, 총 사상자 343명이 발생했다. 참사를 당한 20대 젊은 이들 세대는 8년 전 세월호 참사 때 10대였는데, 이번 참사에도 사망자 156명 중 2/3인 104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20대들을 큰 상실과 좌절에 빠지게 만들고, 사상자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를 눈물 머금고 애통하게 했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초기 '근조' 써 있는 리본이 아닌 글씨 없는 리본을 달라고 하며 자신들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려 했다. 참사를 사고라고 하고 피해자를 사망자라고 하며 가급적 축소하려 했다. 매뉴얼이 없었다고 했으나 있었고, 행사 주최자가 없어서 통제하지 않았다 했다. 자신들 잘못이 없다고, 오히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잘못이라고 한 것이었다. 현재는 경찰에 그 책임을 몰아가는 분위기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외래 문화에 휩쓸릴 수 밖에 없었던 젊은 사람들 문화, 비좁고 낙후한 길거리, 현 정권의 부실한 대응 등등이다.
 정부는 사고 원인을 어떤 사람이 밀기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했다고 하면서 그런 방향에서 수사하려 했다. 어떤 종교인은 그런 문화에 빠진 젊은이들을 탓했다. 경중을 따지면 정부 책임이 가장 크다.
 그럼에도 세세히 따져 보면 모든 사람들이 다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잘못이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신과 관계에서 신도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논리적으로 신은 잘못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심판할 뿐이다.

 예수의 죽음에 그 가족들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반면 선동에 의해 그를 죽이라는 사람들은 조소하고 있었다. 예수는 이태원 참사처럼 사고가 아니라 사람들이 죽이라고 하여 죽은 것이다. 정권의 권력자 빌라도는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했다.
 예수와 이태원 참사자들은 죄도 없는데 잘못도 없는데 죽었다는 것과 슬퍼하고 애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나? 단지 축제에 참여하고자 한 것이 잘못? 사람 많은 곳 내리막 길을 갔다는 잘못? 그것이 무슨 잘못인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필 그 시각에 그곳에서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참사를 당했다. 그 유족들 얼마나 황망했나? 예수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는가? 그 유족들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왜 황망해야 했는가? 이해하기 어렵다.

숙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마리아 클레오파), 사도 요한, 어머니 마리아, 이모 살로메(세베대의 아내이자 큰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죽은 예수, 아리마대 요셉과 시종, 니고데모와 시종, 제자 막달라 마리아

 그림에서 예수의 어머니는 이태원 참사 당한 사람들의 어머니, 주위 친족은 유가족, 그외 사람들은 예수를 따르는 우리들 모습일 것이다. 각 사람을 잘 살펴보면 각각의 심경이 읽혀진다. 특별히 마리아의 주저 앉는 것보다 심한 넘어지는 모습을 보라. 예수의 모습과 같이 대각선으로 넘어지는 모습을 화가는 그렸다. 그 어떤 심경이었겠는가? 예수는 왜 죽었는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 예수님의 죽음을 살펴보자.
 요한복음 18-19장
 배반당하고 잡히시다(마 26:47-56; 막 14:43-50; 눅 22:47-53)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가셨다. 거기에는 동산이 하나 있었는데, 예수와 그 제자들이 거기에 들어가셨다.
2 예수가 그 제자들과 함께 거기서 여러 번 모이셨으므로, 예수를 넘겨줄 유다도 그 곳을 알고 있었다.
3 유다는 로마 군대 병정들과,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 그들은 등불과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있었다.
4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닥쳐올 일을 모두 아시고, 앞으로 나서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5 그들이 대답하였다. "나사렛 사람 예수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 사람이다." 예수를 넘겨줄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시니, 그들은 뒤로 물러나서 땅에 쓰러졌다.
7 다시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나사렛 사람 예수요."
8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 사람이라고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다. 너희가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은(제자들) 물러가게 하여라."(자신이 책임자고 책임 있으니 잡아가지 말라는 말이다. )
9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께서 전에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나는 한 사람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신 그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0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쪽 귀를 잘라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고였다.
11 그 때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대제사장 앞에 서시다(마 26:57-58; 막 14:53-54; 눅 22:54)
12 로마 군대 병정들과 그 부대장과 유대 사람들의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를 잡아 묶어서
13 먼저 안나스(전 대제사장, 실질 실력자)에게로 끌고 갔다.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인데,
14 가야바는 '한 사람이 온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유대 사람에게 조언한 사람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하다(마 26:69-70; 막 14:66-68; 눅 22:55-57)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요한)이 예수를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제사장(안나스)과 잘 아는 사이라서,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까지 들어갔다.
16 그러나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고,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17 그 때에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는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모른다고 한 것은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고 자기가 책임이 없다고 한 것이다)
18 날이 추워서, 종들과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서서 불을 쬐고 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대제사장이 예수를 신문하다(마 26:59-66; 막 14:55-64; 눅 22:66-71)
19 대제사장은 예수께 그의 제자들과 그의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2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소. 나는 언제나 모든 유대 사람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으며, 아무것도 숨어서 말한 것이 없소.
21 그런데 어찌하여 나에게 묻소?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를,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오.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소."
22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경비병 한 사람이 곁에 서 있다가 "대제사장에게 그게 무슨 대답이냐?" 하면서, 손바닥으로 예수를 때렸다.
23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으면, 잘못되었다는 증거를 대시오. 그러나 내가 한 말이 옳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시오?"(예수님 자신이 자신의 무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24 안나스는 예수를 묶은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보냈다.

 다시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마 26:71-75; 막 14:69-72; 눅 22:58-62)
25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가 부인하여 "나는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26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말고)의 친척으로서, 대제사장의 종 가운데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러시오?"
27 베드로가 다시 부인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요한은 자신이 목격한 대로 예수의 베드로에 대한 예언 실현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빌라도 앞에 서시다(마 27:1-2;11-14; 막 15:1-5; 눅 23:1-5)
28 사람들이 가야바의 집에서 총독 관저로 예수를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관저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유월절 규례 율법에 어긋난 것이다)
29 빌라도가 그들에게 나와서 "당신들은 이 사람을 무슨 일로 고발하는 거요?" 하고 물었다.
30 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님께 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31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를 데리고 가서, 당신들의 법대로 재판하시오." 유대 사람들이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2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로마의 형법에 의한 십자가 형)으로 죽을 것인가를 암시하여 주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33 빌라도가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내서 물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3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오?"(사람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을 들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
35 빌라도가 말하였다. "내가 유대 사람이란 말이오? 당신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겨주었소.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3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37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38 빌라도가 예수께 "진리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사형 선고를 받으시다(마 27:15-31; 막 15:6-20; 눅 23:13-25)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 사람들에게로 나아와서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소.

39 유월절에는 내가 여러분에게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가 있소. 그러니 유대 사람들의 왕을 놓아주는 것이 어떻겠소?"
40 그들은 다시 큰 소리로 "그 사람이 아니오. 바라바를 놓아주시오" 하고 외쳤다. 바라바는 강도였다.

제 19 장
1 그 때에 빌라도는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으로 쳤다.
2 병정들은 가시나무로 왕관을 엮어서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뒤에,
3 예수 앞으로 나와서 "유대인의 왕 만세!" 하고 소리치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렸다.
4 그 때에 빌라도가 다시 바깥으로 나와서, 유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내가 그 사람을 당신들 앞에 데려 오겠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오."
5 예수가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으신 채로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시오, 이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6 대제사장들과 경비병들이 예수를 보고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이 사람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하고 말하였다.
7 유대 사람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는데 그 율법을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가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8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서
9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예수께서는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에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1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나를 당신에게 넘겨준 사람(유다, 대제사장 등등)의 죄는 더 크다 할 것이오."
12 이 말을 듣고서,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힘썼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이 사람을 놓아주면, 총독님은 황제 폐하의 충신이 아닙니다. 자기를 가리켜서 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황제 폐하를 반역하는 자입니다" 하고 외쳤다.
13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데리고 나와서, 리토스트론이라고 부르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론은 히브리 말로 가바다인데, '돌을 박은 자리'라는 뜻이다.)
14 그 날은 유월절 준비일이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당신들의 왕이오."
15 그들이 외쳤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란 말이오?" 대제사장들이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16 이리하여 이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십자가에 못박히시다(
마 27:32-44; 막 15:21-32; 눅 23:26-43)
 그들은 예수를 넘겨받았다.

17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 하는 데로 가셨다. 그 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다라고 하였다.
18 거기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아서, 예수를 가운데로 하고, 좌우에 세웠다.
19 빌라도는 또한 명패도 써서, 십자가에 붙였다. 그 명패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 라고 썼다.
20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은 도성에서 가까우므로, 많은 유대 사람이 이 명패를 읽었다. 그것은, 히브리 말과 로마 말과 그리스 말로 적혀 있었다.
21 유대 사람들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십시오" 하였으나,
22 빌라도는 "나는 쓸 것을 썼다" 하고 대답하였다.
23 병정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뒤에, 그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서, 한 사람이 한 몫씩 차지하였다. 그리고 속옷은 이음새 없이 위에서 아래까지 통째로 짠 것이므로
24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이것은 찢지 말고, 누가 차지할지 제비를 뽑자" 하였다. 이는 '그들이 나의 겉옷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다' 하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병정들이 이런 일을 하였다.
25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서 있었다.
26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27 그 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후에 유대 반란으로 로마군이 유대 사람들을 전세계에 흩어버릴 때 요한은 마리아를 데리고 터키 에베소로 옮겨 살았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다(마 27:45-56; 막 15:33-41; 눅 23:44-49)
28 그 뒤에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해면을 그 신 포도주에 듬뿍 적셔서, 우슬초 대에다가 꿰어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서,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다.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다
31 유대 사람들은 그 날이 유월절 준비일이므로,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으려고, 그 시체의 다리를 꺾어서 치워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그 안식일은 큰 날이었기 때문이다.
32 그래서 병사들이 가서, 먼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사람의 다리와 또 다른 한 사람의 다리를 꺾고 나서,
33 예수께 와서는, 그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서, 다리를 꺾지 않았다.
34 그러나 병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것은 목격자(요한 자신)가 증언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는 자기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여러분들도 믿게 하려고 증언한 것이다.)
36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37 또 성경에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쳐다볼 것이다' 한 말씀도 있다.

 무덤에 묻다(마 27:57-61; 막 15:42-47; 눅 23:50-56)
38 그 뒤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거두게 하여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의 제자인데,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니, 그는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렸다.
39 또 전에 예수를 밤중에 찾아갔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근쯤 가지고 왔다.
40 그들은 예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대 사람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와 함께 삼베로 감았다.
41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곳에, 동산이 있었는데, 그 동산에는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42 그 날은 유대 사람이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이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

 이태원 참사가 왜 일어났는가에 대하여는 현실적인 이유로부터 영적인 이유까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다만 죽은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살아 있는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정부의 무책임이 가장 큰 문제지만 한편 우리 각자를 돌아봐야 한다.

 골로새서 3장 16-17절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17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세상 일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만 이해하려고 하면 답이 없다. 그러나 각자가 그 속에서 우리 자신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자 하면 각자에게는 답이 있다. 저는 이 참사 속에 우리가 믿고 의지하며 위로 받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다 같은 것이 아니다. 각자가 삶을 돌이켜 본다면 답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 답을 따라, 하나님을 따라 사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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