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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9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 #마가복음 7장 14-16절 본문
20230219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
마가복음 7장 14-16절
오늘은 마가복음 7장 말씀이다.
7장 1-23절 장로들의 전통(마 15:1-20) 비판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비판한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 계명 모세 율법이 장로=사람 전통(음식 먹기 전 손 씻기 등)이 되어버려 심지어 고르반이라고 하며 겉치레만 남았다고 한다. 무리들에게 입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깨끗하나 사람 속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생각은 악하고 사람을 더럽힌다고 가르친다. 6-8절에서 이사야가 한 말을 인용하여 위선자인 이 백성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멀리 떠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하나님을 헛되이 예배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너희들이나 하나님 계명을 올바로 실천하라고 하고, 무리들에게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한 것이다. 본래 하나님의 계명이었던 율법이 형식만 남아 사람들의 전통이 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본래 유교 문화의 중심사상은 나라에 충 하고 부모에 효 하는 것이었는데 형식화되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으나 묘지, 제사와 관련된 것들은 현재도 남아 있다.
본래 유교 전통에서 비석과 신위는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기념, 기억 하기 위한 것이었다. 묘지 비석은 고인의 생애를 기록하고,
묘 표지석과 상석은 보통 관직과 성과 이름을 새겼다.
참고) 기독교 묘 표지석
신위 중 신주나 위패도 돌아가신 분 이름을 새긴 나무 패로 위쪽은 둥글게 아래쪽은 각지게 깎아 사당 제실이나 집안에 두고 모셨다.
또 다른 신위 중 지방은 제사 때 대략 6*25cm 한지에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높을 현, 상고할 고, 배울 학, 날 생, 마을 부, 임금 군, 신 신, 임할 위 )'라고 써서 제상에 모셨다. '현'은 존경한다는 의미고, '고'는 제사를 지내는 주관자와 아버지 관계(조고는 할아버지와 관계, 증조고는 증조할아버지 관계, 고조고는 고조할아버지 관계)를 뜻하며 현고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학생'은 관직 없는 경우 쓰고, 있으면 직위를 썼다. 부군은 돌아가신 아버지나 남자 조상을 높여 이르는 말이고 제주보다 윗사람일 때 높여서 이름 대신 부군을 썼고, 아랫사람은 부군 이 아닌 이름을 쓴다. 마지막 글자 '신위'는 돌아가신 사람의 영혼이 의지하는 자리 또는 신주를 모셔 두는 자리로 돌아가신 분 혼의 자리를 의미한다. 풀어보면 존경하는 아버지 관직(또는 학생) 이름 혼의 자리다는 것이다. 배우는 학생으로 인생을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신령이시여 나타나서 자리에 임하소서라는 의미도 있다. 고인이 여성인 경우 '顯妣孺人淸州金氏神位'(현비유인전주이씨신위) 현은 존경, 비는 제주의 어머니, 유인은 아버지 관직에 따라 주어졌던 부인의 직을 쓰나 그렇지 않은 경우 높여서 그와 동격으로 사용, 본과 성과 이름을 쓰고, 신위는 돌아가신 분 혼의 자리라는 것이다.
정리하면 돌아가신 분 이름을 높여 쓰고 그것에 그분이 영혼으로 임재 또는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돌아가신 분을 기념하기 위한 본 뜻에 반해 형식이 의미를 삼켜버린 것이다. 본래의 취지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지방 자체는 돌아가신 분이 아니다. 돌아가신 분을 기념 기억 하기 위한 표시일 뿐이다. 영혼이 깃들여 있다고 인식하면 안 된다. 사실이 아니다. 제사도 본래는 기억하고 돌아보기 위한 의식이었다.
예수님은 사람 마음 씀씀이를 중요하게 여겼다. 음식 먹기 전 손을 씻는 것은 위생적이다. 그런데도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주장을 나무란 것은 더 중요한 것이 외형적인데 있지 않고 마음 자세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봉양할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라고 하면서 봉양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 자세가 문제였던 것이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이었다. 저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면 현실 부모를 제대로 봉양하게 된다. 마음 생각의 문제였다.
1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수께로 몰려왔다.
2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바리새파 사람과 모든 유대 사람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켜, 규례대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 그 밖에도 그들이 전해 받아 지키는 규례가 많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대를 씻는 일이다.-
5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하여 준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너희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8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9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가 말하기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11 그러나 너희는 말한다.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게서 받으실 것이 고르반(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그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너희가 물려받은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며, 또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한다."
14 예수께서 다시 무리를 가까이 부르시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6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힌다."
17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 비유를 두고 물었다.
1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9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뱃속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여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하셨다.
20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나쁜 생각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데, 곧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다.
23 이런 악한 것이 모두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힌다."
24-30절 이방인 시페니키아 여자의 딸(마 15:21-28) 축귀
예수님이 두로지역 어느 집에 가셨을 때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시로페니키아 여인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녀는 자기 딸에게서 축귀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녀인 이스라엘백성에게 줄 빵을 개인 이방인에게 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예수님도 팔이 안으로 굽었다. 그것이 현실이다. 여인은 개도 자녀에게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했다. 그에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아준다. 여인의 마음 자세를 보고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 현실을 제대로 보는 눈, 자존심에 가려지지 않은, 내세우지 않은 지혜로운 사람, 겉보다 속이 중요함을 본 것이다.
이방인도 구원받는 한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로마의 이방인 믿는 사람들에게도 구원받는다고 한 것이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이 말씀 장면은 기독교가 한 말에 유행하던 사해동포주의 인류애를 내포하고 있다는 기초다. 배타적이 아니다는 말이다. 타 종교를 포괄해야지 배타하면 안 된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 믿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산다. 그렇다고 타 종교를 무시할 필요는 없다. 그 종교의 나름의 의미는 있기 때문이다.
티레(두로)와 시돈 지역, 곧 시리아와 페니키아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그리스계 카나나이아=가나안 사람이다. 노아의 손자 가나안의 11부족 중 시돈족 후예다. 페니키아는 현 레바논 해안평야다. 예루살렘 위 사마리아 위 갈릴리 위 페니키아다.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로 명칭을 바꿨다. 그러니까 가나안 사람, 시돈 사람, 페니키아인 다 같은 말이다 이들은 해상무역에 능했다. 바알을 섬겼다. 다신 숭배했다.
24 예수께서 거기에서 일어나셔서, 두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에 들어가셨는데, 아무도 그것을 모르기를 바라셨으나,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자가 곧바로 예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여자는 그리스 사람으로서, 시로페니키아 출생인데,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27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28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29 그래서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서 보니, 아이는 침대에 누워 있고, 귀신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31-37절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 고친 치유 기적
예수님은 두로 시돈 데가볼리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에게 열리라는 에바다라고 말하여 고쳐준다. 고치는 과정에서 손가락을 귀 속에 넣고 침을 뱉어 그 혀에 손을 대는 기괴한 모습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소문을 내고 놀란다. 반복되는 치유 기적 기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현실 어느 권력이라 할지라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32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33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 (그것은 열리라는 뜻이다.)
35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36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으나,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37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였다.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예수님은 바리새파나 율법학자가 말하는 사람의 생각과는 달랐다. 이방인의 딸도 축귀 해주며,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치유했다. 그런 예수님이라면 인류를 괴롭히는 악마적인 로마 정부나 네로 같은 통치자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니 이러한 사실을 믿고 용기를 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복음이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어 현실의 어떤 문제도 별 것 아니라 여기며 그것들은 도구나 형식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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