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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5 #동류 공감 의식 #마가복음 9장 38-41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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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5 #동류 공감 의식 #마가복음 9장 38-41절

필명 이일기 2023. 3. 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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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5
동류 공감 의식
마가복음 9장 38-41절

 오늘은 마가복음 9장이다.

 1-13절 산상 변모와 고난과 부활 예고(마 17:1-13; 눅 9:28-36)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보는 가운데 타보르산에서 모습이 변화된 예수님이 영적인 존재 또는 환영 같은 엘리야와 모세와 대화한다.
 겁에 질린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지어 모시겠다고 한다.
 야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구름 속에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다고 하고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는 음성이 들린다.
 산에서 내려와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 할 때까지 그 장면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한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간직하지만 부활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서로에게 묻는다. 또 왜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한다. 예수님은 엘리야가 먼저 와 고난을 당한 것처럼 자신이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을 말한다.
 
 정리하면 마가 저자는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이고, 세례 요한이 고난 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고난당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은 로마의 성도들이 고난 당한 것처럼 예수님도 고난당했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 네가 아픈 것처럼 나도 아프니 너만 아픈 것 아니다 하는 동류의식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고통 해소 약이니 그를 따라 염려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것이다. 고난당하신 후 부활하신 예수님께 희망을 걸라는 말이다. 
 인생 살이는 누구나 다 겪는 일이다. 남에 비해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다.

1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와 있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
2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타보르산, 헬몬산?, 변화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3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이라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말을 주고받았다.
5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6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제자들이 겁에 질렸기 때문이다.
7   그런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났을 때와 같은 상황 표현)
8   그들이 문득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고,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명하시어,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서로 물었다.
11   그들이 예수께 묻기를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하니,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확실히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 그런데,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찌 된 일이냐?
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세례자 요한?)는 이미 왔다. 그런데, 그를 두고 기록한 대로,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14-29절 귀신 들린 아이에 대한 율법학자들과 논쟁과 치유(마 17:14-20; 눅 9:37-43상반)
 산에서 내려온 예수님은 남은 제자들이 말 못 하게 하는 귀신 들린 아이에 대하여 율법학자들과 논쟁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이 아버지의 아이에 대한 증세를 듣는다.
 예수님은 믿음 없는 율법학자 같은 사람들을 한탄한다.
 아이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말 못 하고 벙어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아이를 할 수 있으면 낫게 해달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믿음이 있으면 나을 수 있다고 하고 귀신을 내쫓아 낫게 한다.
 제자들이 왜 자신들은 귀신을 내쫓지 못했느냐고 하니 예수님은 기도로만 내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정리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불신하는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은 귀신 들린 아이를 낫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믿음과 기도로 축귀 하여 아이를 낫게 한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낸 축귀 치유 기사다.
 마가는 고난 받는 신자들을 귀신 들려 말 못 하고 벙어리인 아이와 그 아버지와 견주고 있다. 예수님의 동류 공감 의식이 있는 분임을 말한 것이다. 아이를 낫게 한 것처럼 신자들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현실의 고난을 이겨내라고 한 것이다. 


14   그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 제자들을 둘러싸고 있고, 율법학자들이 그들과 논쟁을 하고 있었다.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서는 몹시 놀라, 달려와서 인사하였다.
16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그들과 무슨 논쟁을 하고 있느냐?"
17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려 있습니다.
18   어디서나 귀신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아이를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그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했으나, 그들은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20   그래서 그들이 아이를 예수께 데려왔다. 귀신이 예수를 보자, 아이에게 즉시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아이는 땅에 넘어져서, 거품을 흘리면서 뒹굴었다.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셨다.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때부터입니다.
22   귀신이 그 아이를 죽이려고, 여러 번, 불 속에도 던지고, 물 속에도 던졌습니다.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2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24   그 아이 아버지는 큰소리로 외쳐 말했다.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25   예수께서 무리가 어울려 달려오는 것을 보시고, 악한 귀신을 꾸짖어 말씀하셨다.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되게 하는 귀신아, 내가 너에게 명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말아라."
26   그러자 귀신은 소리를 지르고서, 아이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켜 놓고 나갔다. 아이는 죽은 것과 같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아이가 죽었다" 하였다.
27   그런데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서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섰다.
28   예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따로 그에게 물어 보았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

 
수난과 부활 두 번째로 예고(마 17:22-23; 눅 9:43하반-45)

30   그들은 거기에서 나와서, 갈릴리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남들이 알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31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고,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 그가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예수께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앞의 기사(변화산, 귀신 들린 아이 축귀 치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축귀 치유 등등의 모든 활동은 자신이 고난 받고 부활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가 아닌 미래에 이뤄질 일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고난 받는다는 것으로 두려워했다는 마가 저자는 철저하게 현실 극복 의지를 드러낸 것이고, 동류, 공감의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크냐(마 18:1-5; 눅 9:46-48)

33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예수께서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34   제자들은 잠잠하였다.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것으로 서로 다투었던 것이다.
35   예수께서 앉으신 다음에, 열두 제자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36   그리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신 다음에, 그를 껴안아 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자신을 낮춰 어린 아이와 같아지는 것으로 동류 공감 의식의 발현이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남을 섬기는 종교다. 남을 나보다 높게 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추어 모든 사람을 높인다, 살린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눅 9:49-50)

38   요한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39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쉬이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4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해서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상대가 적인지를 손해 여부로 판단했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한 것이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이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다. 그와 물 한잔이라도 하는 마음의 교류를 하는 것, 동류 공감하는 것이다.
동류 공감 의식은 같은 편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 됨이다. 함께 한다는 말이다. 친하고 좋아한다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범죄(마 18:6-9; 눅 17:1-2)

42   "또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려라. 네가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곧 그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한 손을 잃은 채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44절 없음)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려라. 네가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한 발은 잃었으나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46절 없음)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버려라. 네가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들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든 사람이 다 소금에 절이듯 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쳐 두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범죄 하면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죄지으면 구더기가 있고 불이 꺼지지 않는 지옥에 들어가게 되니 죄짓지 말라는 것이다. 죄 짓지 않는, 썩지 않은 소금으로 맛을 내라, 선을 행하라는 말이다. 소금이 되어 동류, 공감하라는, 화목하라는 말이다.

 
 남을 비난하면 서로 안 좋아진다. 관계가 좋을 수 없다. 동류 공감 의식을 갖자.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해서 좋은 관계 유지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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